요즘 나는 커피를 통해 성공하는 꿈을 그리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꿈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강박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커피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소식은 매일같이 들려온다. 최근 커피 선물 차트가 300달러를 돌파했다는 인스타 스토리를 자주 접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커피 가격이 어느때보다 상승했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쩌면 국제 경제 상황에 따라서 이런 변화가 있는걸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런 현실속에서 자영업이 어려움에 겪는다는 소식을 자주 본다. 얼마 전에는 유튜버 쯔양이 운영하던 식당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카페 브이로그 유튜브 계정은 폐업과정을 브이로그로 담아내었다. 중심상권에서 디저트카페 창업과정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브이로그 형태로 담아오셨던 분이다. 이제는 창업을 해서 성공하는 상상조차 무겁게 다가온다. 객단가가 높지 않은 커피 한 잔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너무 순진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난 1년간 커피를 내리는 모습만 그려오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우리는 종종 목표가 삶의 지향점을 만들어준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그 목표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일 때도 있다. 특히 불확실성이 짙게 깔린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목표 없이 떠밀리듯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목표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다. 단순한 바람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이런 강박은 과거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목표 없이 흘러가는 날들을 돌이키고 보내면서. 그떄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성취를 이루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조차 두려웠다. 목표를 세우는 순간,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의 실패감이 너무나 선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목표가 무겁고 두려워도, 그것 없이는 더 막막한 공허 속에 갇힌 채 살아가게 될 뿐이라는 것을.
결국 목표는 내게 생존을 위한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는 일이 나를 더 괴롭히기도 한다. 목표라는 것은 항상 나를 압박한다. 마치 완벽한 구도를 잡으려 강박적으로 지우개질을 반복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상을 그리려고 스스로를 압박한다. 구체적일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지 않은가. 1979년 하버드 MBA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목표를 명확히 글로 적은 사람들은 10년 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훨씬 높은 성과를 냈다는 결과가 있다. 스케치북에 밑그림이라도 그리는 게 무의미하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첫 선을 긋는 일이 어렵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나는 장벽만 자꾸 발견한다. 그중 가장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는 건 대인관계다. 어릴 때부터 관계를 맺는 일은 나에게 유독 험난한 과제였다. 아주 가끔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 만남이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연락은 점차 끊기고, 관계는 그렇게 끝나버린다. 지난 몇 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글로 적지는 않았지만, 이 기억이 내 마음속에서 흉터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자신과 함께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기를 원했다. 마치 잘못 그린 선을 지우개로 지워내듯이. 나의 말투는 캔버스 위에 삐뚤어진 선처럼 어딘가 엉성했고, 상황에 맞는 완급조절은 마치 농도 조절을 실패한 물감처럼 번져버렸다. 결국 나는 또 하나의 실패작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말하고 행동했던 방식이 충분히 불편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말투는 어딘가 엉성했고, 상황에 맞는 완급조절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외모에 대한 불안감도 떠오른다. 내가 정말 그렇게 싫을 정도로 못생겼을까? 솔직히 맞긴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왜 나는 이런 관계 속에서 자꾸만 벽을 느끼는 걸까? 이걸 극복할 방법은 전혀 없는걸까? 마치 인간관계라는 영역에서 발달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제한을 걸어둔 상태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영화 ‘노트북’을 봤다. 최근에 재개봉 소식을 들어서 궁금함에 가볍게 집에서 보았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본 적이 별로 없네.’ 요즘의 트렌드 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외국 영화를 보더라도 로맨틱하게 이어지는 흐름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간 글로 적어왔던 사랑에 대한 갈증과는 다르게, 무의식 중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포기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마인드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기는 하다. 올해 초만해도 돈을 벌고 사람들을 알게 되는 일이 없었겠지. 주말동안은 커피 대회를 보았다. 수십명에 불과한 조그만 대회의 풍경 속에서, 내가 모르는 분들의 얼굴도 있었지만 반대로 내가 아는 분들의 얼굴도 많았다. 그사람들도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결국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선을 긋고 색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림의 구도조차 상상할 수 없다. 마침내 그려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늘 앉은 자리에서 글을 쓰는 것조차 어렵다. 지난 세달간 거의 백 편에 가까운 글을 썼지만 여전히 빈 문서를 앞에 두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 사람들과의 관계, 사랑, 창업, 그리고 삶. 모든 것이 막연하게 얽혀 있고, 나는 어디서부터 선을 그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도 글을 올려야 한다는 것.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이 브런치 업로드 일정은 내가 스스로 정한 유일한 규칙이다. 그마저도 지키지 않으면 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릴 것만 같다.
사실 이걸 한다고 해서 대단한 성취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솔직히 구독자보다 글이 더 많은 공간은 가끔 부끄럽기도 하다. 내 글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울림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니까. 하지만 어쨌든 살아있다는 걸 증명할 작은 시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글을 쓰는 일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빈 문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내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실감한다. 과연 이런 성과 없는 일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오늘도 마찬가지다. 목표 없이 막연한 생각들을 끌어모아 대충 글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내용이 괜찮은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무언가를 채운다는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이 나에게 어떤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고,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는 희망조차 희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대충이라도 채우지 않으면 텅 빈 화면 앞에서 내가 더 텅 빈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 비참함이라도 오늘을 견디게 하는 나의 유일한 이유다.
결국 나는 다시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여전히 비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