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씽큐베이션)
천재로 추앙받는 한 남자가 있었다. 4살에 회로 기판을 조립했다. 6살에 엔진을 만들었다. 17살에 MIT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21살에 한 회사의 CEO를 맡았다. 부모에게 부와 재능을 물려받고, 그 능력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지각은 일상다반사였고, 자신이 벌려 놓은 일도 친구가 해결해야 하는 무책임의 대명사였다. 그 남자의 회사는 스마트 무기, 첨단 로봇공학, 위성 등의 군수산업을 베이스로 했다. 그 남자는 신상 미사일 쇼케이스를 위해 아프카니스탄을 방문했다. 그 남자는 성공적인 쇼케이스를 선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만든 무기를 앞세운 폭도들에게 피랍되었다. 그 남자는 명석한 두뇌로 최악의 상황을 뒤집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 남자의 눈에 젊은 미국인이 자신이 만든 제품에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기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다고 깨달았다. 그 남자는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무기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토니 스타크. 우리에게 아이언맨으로 더 익숙한 사람이다.
철부지로 보이는 한 소년이 있다. DVD 플레이어와 컴퓨터를 주워, 고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집안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다. 이 소년은 한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신체조건을 뛰어넘는 능력을 갔게 된다. 이 소년은 수학을 만점 받을 만큼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이 소년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삼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자책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삼촌의 말을 되새기며 정의 구현을 한다. 이 소년은 토니 스타크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며,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평범함 10대 학생이다. 이 소년의 이름은 피터 파커.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청소년이다.
우리는 흔히 히어로(영웅)를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의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고, 악당을 때려잡는 영화 속 모습에 환희와 희열을 느낀다. 성선설의 꼭대기에 있는 그들은, 나약한 인간이 지닌 사소한 걱정거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글쓴이에게 MCU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Captain America: Civil War, 2016)>는 충격이었다. 글쓴이가 마블 영화에 빠진 건 '시빌 워'를 본 이후였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MCU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었다.
히어로 영화에서 착한 놈끼리 싸우는 경우는 희박하다. 대부분 히어로 영화는 '외부에서 침략한 외계인 또는 나쁜 놈을 때려잡기 위해 힘을 합쳐 싸운다.'가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내부 갈등이 없진 않지만, 팀을 강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한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착쁜놈이 되었다 해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는 모든 갈등을 해소한다. 하지만 '시빌 워'는 최절정 갈등상태에서 약간의 떡밥을 쥐여주고 영화가 끝난다. '시나리오'에 없던 경험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카오스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고자 모든 MCU 영화를 찾아봤고, 12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MCU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줄임말이다. 현재 존재하는 지구와 다른 개념으로 '마블 영화의 가상 세계관'이다. 아이언맨 1편을 시작으로 현재 2019년까지 22편의 영화를 개봉했으며, 글쓴이가 주로 다루는 내용은 2016년에 개봉한 'Captain America: Civil War'이다. 시빌 워는 어벤저스의 수장급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입장 차이로 내부 갈등이 벌어지는 스토리다.
누군가가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어떤 책인지 묻는다면, "극장에서 시빌 워를 처음 본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기분이야."라고 답할 것이다. MCU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사람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MCU 영화를 봐야 할 거 같아"고 생각할 것이다. 바로 그 기분이다. 그 기분이 글쓴이가 이 책을 한 번 읽은 후 소감이다.
그동안 글쓴이에게 선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 되는 착한 행위'이었다. 우연히 TV에서 물이 부족한 아이의 모습을 보았고, 전화를 걸었다. 계좌이체로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선행'을 위해 사용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은 글쓴이의 행동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단지 TV에 나오는 흑인 아이, 이미지 좋은 유명 배우, 심금을 울리는 말 한마디가 믿음이 되었다. 기부하는데 열정과 냉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영상미로 범벅이 된, 호소력 깊은 목소리에 열정이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5만 원이 이체되었다는 알림에 '착한 일을 했다'고 우쭐 되며, '나는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다'라고 위안 받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소식지와 후원 내역이 적힌 종이 쪼가리가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반증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일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역효과가 발생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글쓴이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모든 맥락에 적용되는 지론은 아니지만 좋은 과정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때로는 좋은 과정이 나쁜 결말을 낳기도 한다. 히어로(영웅)는 언제나 좋은 과정 속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가 바탕이다. 어벤저스는 히어로가 모여있는 팀 이름이다. 강철 슈트로 지구를 지키는 아이언맨, 신념을 중요시하며 자기효능감이 높은 캡틴 아메리카, 러시아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블랙 위도우, 최고의 궁수 호크아이, 염력을 사용하는 사기 캐릭터 스칼렛 위치, 언제나 화나 있는 헐크 등 다양한 히어로가 소속되어 있다. 지구를 구하고자 했던 선한 과정에서 뉴욕이 파괴되고, 워싱턴 DC에 함선이 추락하며 폭발하고, 심지어 합동작전 중인 라고스에서 스칼렛 위치의 실수(?)로 건물이 폭발되며 사상자가 발생한다.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던 피터 파커는 생계형 빌런 벌처에 맞서 무기 밀매를 저지하려 한다. 불행히도 밀매는 여객선에서 이뤄졌고, 피터 파커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배가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만다. 때마침 도착한 토니 스타크가 아니었다면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수 있다. 울트론이 지구를 종말 시키려 했던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The Avengers: Age of Ultron, 2015)>에서 토니 스타크는 시스템을 통해 지구를 지키고자 했던 선한 의도가 '울트론'이라는 빌런을 만들어내는 과실을 불러온다. 인명피해는 미비했지만 소코비아 도시의 절반이 날아가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좋은 과정이 아이러니하게 나쁜 결과를 만들었고, 결국 '초인 등록법'이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찬성하는 아이언맨의 갈등을 <시빌 워>에서 그리고 있다.
한 단체는 5만 원씩 1년이면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 3천 명에게 1주 일치 항생제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1,450억 원 후원을 받은 '공신 유엔산하 아동구호기관'이라고 부르는 '유니세프 국내 사단 법인'이다. 글쓴이가 기부하는 업체이자, 검색창에 '유니세프'를 검색하면 '유니세프 후원 취소'가 연관 검색어로 따라오는 그 업체이다. 후원금을 낭비한다며 내부 비리를 폭로한 직원을 해고시키고, 성추행 사건에 중심에 있고, 사무총장의 비리가 난문한 곳이다.
"따뜻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결합시켜야, 다시 말해 이타적 행위에 데이터와 이성을 적용할 때라야 비로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선의가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부작용 없이 최대한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다."라고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말한다. 이미지 좋은 연예인이 꿀 보이스로 현혹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는 영상을 흘려보낸다. '나에게는 굳이 없어도 되는 돈이, 250명에게 1주 일치 항생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순간의 깨달음이 무의식에 자리 잡는다. 이는 감성을 자극하며 충동적으로 전화번호를 누르게 만든다. 이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저렴한 가전제품 하나 살 때도 유튜브, 블로그에 리뷰를 보고 제품을 선택한다. 꼼꼼히 기능과 가격을 따져보고 최상의 제품을 선택하는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기부를 하면서 각종 단체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객관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제품은 눈에 보이지만, 기부는 보이지 않는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았던가. 감정에 휘둘려 정신승리를 하는 대신 가성비 좋은, 가장 큰 보탬이 되는 곳에 기부해야 한다.
MCU(마블 세계관)에서 히어로들은 자신들이 지닌 능력으로 지구를 구한다. 히어로를 본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고, 부업(?)인 이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스칼렛 위치는 어벤저스에 전속되어 있는 히어로다. 반면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는 본업은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고, 부업이 히어로라고 볼 수 있다.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본업은 학생이다. 이들 중 과연 세계에 큰 이바지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며 세계 구호의 최전선에 있는 본업 히어로일까?
이 5가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우리가 남을 도울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을 피할 수 있다.
1.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2.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3.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4.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5.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남을 돕겠다는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윌리엄 맥어스킬이 제시한 효율적 이타주의의 핵심 질문 5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에 한 명의 의사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그레그 루이스이다. 그레그가 부유한 나라에서 의사가 된다면, 평생 동안 2명의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선행을 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면 1년에 4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복리로 쌓여 40년이 지나면 16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반면 부유한 나라에서 종양전문의가 되어 소득의 50%를 기부하면, 매년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2014년, 그레그는 10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돈을 기부하고 있다. 그에게는 3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부유한 나라에서 의사가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 가난한 나라에서 의사가 되어 목숨을 구하는 것. 부유한 나라에서 의사가 되어 기부를 하는 것. 열정에 휩싸여 냉정하지 못했다면 두 번째를 선택할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어벤저스에 전속되어있는 히어로는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자신의 능력을 세계 구호에 힘을 쏟는다. 피터 파커(스파이더맨)는 학교가 끝나면 '히어로 재능기부'를 한다. 길 잃은 할머니를 도와주고, 자전거 절도범을 잡으며 친절한 이웃으로 살아간다.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은 업보를 짊어지고 사업으로 번 돈을 대학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스타크구호제단을 만들어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고, 결정적으로 어벤저스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자본을 투입한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시스템으로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사이보그를 만들고, 아이언맨 슈트를 50여 개나 제작했다.
우리는 태양에 맞서 안락한 그늘을 만드는 사람을 영웅으로 기억한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백범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를 유독 더 많이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고 후방에서 든든한 원조를 하며 한글을 지켰던 이들이 독립운동에 큰 보탬이 되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출처 : 매직캣 커뮤니케이션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magicatcommunication)>
※ '씽큐베이션 2기'에서 함께 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