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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Jun 01. 2020

엄마의 설거지가 내게 전해준 힘

일요일 저녁을 먹고 싱크대에 가만히 서서

푸짐한 저녁을 담았던 그릇들을 보고 있자니 안도의 한숨이 난다.


이번 주말도 잘 보냈다.

월요일, 다음 한주, 6월도 화이팅이야!!


천성이 그닥 깔끔하지 못한 나지만

그릇에 남겨진 세제가 입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는 아이들 그릇은 '애써서' 한번 더 헹군다는 모토를 가지고 뽀득뽀득 그릇의 감촉을 느껴본다.


척척

상추쌈도, 된장도 먹어주는 첫째와는 달리

김치 몰래 넣었다고 꽥~

밥 좀 많이 넣었다고 꽥~

뱉어내는 둘째.


그리고 이 아이들이 미처 다 먹어내지 못한 국물의 건더기와 반찬까지 싱크대에 탈탈 털어 넣고 어느새 음식물로 소복해진 배수구를 정리하려 거름망을 치켜들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이것들을 넣고 나면

나의 설거지는 끝~이다.


어?

그런데 좀 낯설다.

왠지 깨끗하다.


거름망을 들어내면 늘 있던 물때가 오늘은 없다.


아~

어제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었지


그리고 굳이 놔두라 말씀드려도 본인이 6남매 중 막내인 아빠의 와이프라서, 즉 막내며느리라서 설거지를 아주 잘한다고 하시면서 설거지를 하셨다.


설거지하는 방식에도 그 사람의 냄새가 묻어 있다.

어머님이 하신 뒤에는 그릇 정리대가 아주 가지런하다.

남편이 할 때는 왠지 한번 더 헹궈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을 존중하기에ㅋ 다시 헹구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님과 남편의 중간쯤?


우리 엄마가 설거지하시고 난 뒤 그릇 정리대는 좀 엉망이다^^ 컵과 아이들 그릇 어른 그릇이 한데 엉켜져 있다.

그렇지만 배수구만큼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결혼식날을 받아놓고

신혼살림 준비할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집은 계속 닦아줘야 해, 밥솥도 전자레인지도 잘 닦아야 해."

그러면서 싱크대 배수구도 정기적으로 닦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었다.


엄마도 댁에서

자주 닦지는 않으시는 것 같지만..


우리 집에 오실 때면 늘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닦아놓고 가신다.


결혼하기 전에는,

밥도 국도 늘  내가 원하는 곳에 있었고

집안 곳곳의 먼지도 늘 적당량  있었다.

뽀송뽀송한 옷들도 늘 옷장에 당연한 듯 걸려 있었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 된 후에 깨달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과 사랑과 관심과 애씀이 있었음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는 감수성이 더 풍부해진 것인지..

이상하게도 그런 깨달음이 가슴을 더 크게 울리는데,


2020년 5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일요일 저녁, 싱크대 앞에서 한참 동안 그 울림에 귀 기울인 채 서 있었다.


내일을,

조금 울적한 월요일을

다가오는 한주를

6월의 첫날을

더 기운차게 준비할 힘을 실어주는 그 울림 덕에 

오늘 밤은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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