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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들이 명절 음식을 못해야 하는 이유

동물행동학으로 며느라기 탈피하기



시외가 쪽 큰 이모님께서 물어보신다.


"음식 솜씨는 좀 늘었니?" 

옛날 부엌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더 숙여서 일해야 한다.


결혼 11년 차.

나는 아직도 반찬 만드는데 서투르고 요리도 잘 못한다는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종갓집 며느리가 아닌 나, 노예원으로 살 수가 있다.


82년생 김지영 세대들 전후로는 대부분은 남녀평등이 온당한 생각이라 배웠고, 대학 졸업 후 본인의 직업을 가져본 사람들이다.


자아실현이란 단어가 배고팠던 시절에는 김밥 옆구리 터지는 꿈같은 소리였을지는 몰라도.. 7,80년 대생들부턴 삶의 이유와도 같은 말이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갑자기 나는 없어지고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로만 살아가기를 종용받곤 한다.

(우리 밑에 세대들일수록 바이러스, 경기 침체, 물가 상승 등의 요인으로 인해 더 자유로워지는 분위기라 그것만큼은 참 반갑다.)


남편과 나의 행복을 위해 결혼이란 걸 선택한 것이 결국엔 시댁 어른들께 반찬 솜씨에 대한 타박이나 출산 압박으로 끝내고 싶진 않다는 결심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 11년이 지난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나도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며느리들처럼 초반엔 어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부엌에서 전전긍긍하며 종일 음식 재료들과 씨름한 적이 있다.


- 난생처음 만들어보는 달걀찜 하나에 3시간이,

- 비빔밥과 잡채를 만드는 데 각 4시간이,

- 남편을 위해 삼계탕 만드는 데 5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그 결과는..


- 달걀찜을 드셔보신 시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고..

- 비빔밥엔 야채 종류를 너무 많이 넣었다는 소리를,

- 잡채는 그럭저럭 먹을만하다는 평을,

- 그리고 삼계탕은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고 혼이 났다.


축구로 따지면 4경기 1 무 3패.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그날 과자와 초콜릿으로라도 나의 노력에 보상을 주어야 했다.

더불어 허무하게 시간을 날렸다는 원망과 스트레스는 남편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바로 달콤한 신혼시절이 다툼으로 얼룩지곤 한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자. 이제 나의 본업을 살릴 때가 왔다. 내 전공은 반려동물행동복지학이다.


동물의 행동심리는 인간 심리학의 가장 근본이자 토대가 된 분야로 인간 본성을 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는 학문이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강의한다는 사람도 대한민국 며느리 타이틀만 달게 되면 어찌 그리도 위축이 되는지 참..


쩔쩔매고, 더 잘하려다 실수해서 결국엔 더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그런 바보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조리학과 출신도 아니고, 결혼도 처음이고, 거기다 핵가족화된 가정에서 자랐다 보니 옛날 어른들이 원하는 종부 스타일도 아닌데 말이다.


시골 빨래터에 두꺼운 솜이불 들고 가서 방망이로 두드리던 그 시대..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많이 고생하셨다.


산에 음식을 이고 지고 가서 제사를 해야 하지 않나..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남편 형제들까지 다 먹여 키워야 하질 않나..

가족 모두 화목하게 먹고 노는 제사가 마냥 신이 났던 남편님


그럼 행동학을 접목해서 며느리들이 명절 음식으로 평생 스트레스받지 않으려면?


동물행동학에서 개에게 적용시키고, 심리학에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교육기법 중 하나는 스키너 상자 실험으로 유명한 Operant Conditioning, 즉 조작적 조건화가 있다.


그럼 이걸 적용해서 반찬을 못했을 때 칭찬을 받아야 하고 잘하면 혼나야 하나? 그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상대가 내 맘대로 될 거면 하지도 않을 고민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음식 솜씨 늘리자고 부엌에 살고픈 생각은 없고.. 이 이론을 적용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행동학 이론을 총동원해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파블로프? 정적 강화? 부적 처벌?

머리가 복잡하다.


아차!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막힌 아이디어!

Wow. 나는 이제 해방이다.


바로 반찬을 못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미지만 주는 것이다. 실제 실력과는 상관없는.

어차피 음식은 할수록 실력은 는다. 어른들이 원하는 만큼 빨리 안 늘어서 그렇지..




콩나물은 머리를 떼야지~!

시금치는 밑동을 자르면 안 되는데~!


어차피 며느리가 음식 못하면 애가 타는 쪽은 시댁 어른이다.


이 문제는 내가. 강아지의 입장이 되면.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아무 데나 오줌 싸는 강아지(음식 못하는 며느리)는 답답할 게 없다. 자기는 크게 불편할 게 없고 오히려 편하다.


하지만 그 강아지를 키우는 반려자(시댁 어른)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혹여 종손 굶겨 죽이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쪽은 시댁 어른이다.


그러니 내가 음식을 못하면 처음엔 어른들이 나무라지만 나중에는 나무라시면서도 국과 반찬 챙겨주시는 빈도수는 늘어난다.


나는 잠깐만 참으면 집에 갈 땐 음식 보따리를 두 손 가득 들고 갈 수 있다. 


오줌 싸는 강아지에게 간식 교육하려는 반려자들 덕분에 강아지는 오줌 늦게 가릴수록 간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아무 데서나 오줌 싸는 강아지는 편하다! 하하


그리고 계-속 오줌을 못 가리면 사람들은 혼내는 것도 지쳐한다. 그래서 결국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 강아지에게 기저귀를 채운다거나,

- 처음처럼 혼내기만 하는 대신 어르고 달래는 횟수를 늘려가며

- 맛난 간식도 더 많이 주면서 교육을 시켜준다.




나도 끝까지 오줌 못 가리는 강아지가 되어보기로 했다.


음식을 못하면 못할수록(못하는 연기도 필요) 시어른들은 처음엔 나무라시지만 나중엔 요리 비법도 알려주시고 마지막엔 각종 반찬과 국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 주신다.


오줌 못 가리는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는 반려자분들처럼 말이다! 


요리 못하는 큰며느리 때문에 혹여 귀하디 귀한 종손이 굶을까 봐 걱정이 되시나 보다.

정작 우리들은 너무 잘 먹어서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하하




이 방법으로 나는.. 현재 11년째 김장 김치 한번 담가본 일 없는 한량 종부 생활을 하고 있다. ^^


김장 때 돕는다고 나서면 다들 말리신다. 일 더 만들지 말라시며.. ^^;


덕분에 앉아서 김치도 얻어먹고 송중기 씨가 나오는 드라마도 실컷 볼 수 있다.


스스로 김치 해 먹고 싶으면 시댁의 입맛이 아닌. 내 입맛에 맞게 유튜브 레시피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늘. 음식을 잘은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오줌 싸고도 간식 얻어먹는 팔자 좋은 강아지가 되려면 말이다.


이 전략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는 감사하게도 솜씨 좋은 시어른들의 반찬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리고 생선을 대차게 태워먹고 전도 자꾸 실패하다 보니.. 명절 음식? 이제는 필요하면 몇 종류는 사서 쓰라고 하신다.




우리 대한민국 며느리들에게 필요한 건 음식 솜씨가 아니라 "음식을 못하는 연기 솜씨"라고 본다.


열심히. 애는 쓰지만. 그냥 타고난 게 저 모양이라 어쩔 수 없구나..라는 이미지를 줘서 일은 편하고 소득은 많게.


평소 식사는 남편과 내 입맛에 맞게 알콩달콩 잘해 먹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음식 솜씨가 세계 최고 셰프라고 해도..

시댁 어른들의 지적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 편에 계속^^




봉사일기


음식 잘해도 소용없는 며느라기 팔자


며느리의 시부모님 간병일기


개 같은 남편


종갓집 며느리의 생각 한 자락 (사람 노예원 칼럼)


동물변호사



저와 남편은 사람의 근본적인 심리를 알고자 둘 다 동물 심리부터 공부하기 시작했고, 같은 대학원 같은 학과에서 부부가 함께 박사 수료를 했습니다.


그리고 심리 상담 센터를 오픈하고 전국의 수많은 아내분들과 남편분들을 상담해 드리고, 세미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부 및 시댁과의 갈등 관련 상담 및 세미나. 출판. 방송 촬영 등이 필요하시면 아래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Contact: animalsoul@naver.com (종갓집 며느리 노예원)

각 지차제 강의 및 다문화가정 어린이 봉사활동
방송활동 및 교육부 학점은행제 강의


하단 링크에 아래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요. 관심 있는 분들만 참고하시면 됩니다~^^


2. 봉사활동

2-1. 1365 소개 (정부산하기관) - 개별 봉사

2-2. 세사모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함께 봉사

2-3. 세사모 봉사 분야, 참여방법


3. 브런치 응원금

3-1. 내역 공개

3-2. 정산 방법

3-2. 사용처


다문화 가정 어린이 교육 봉사활동


환경보호를 위한 플로깅 봉사활동



동물복지 실현을 위한 방송활동
동물보호 봉사활동
환경정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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