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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Feb 20. 2022

미스 반 데 로에의 IIT 대학 크라운 홀

미스 반 데 로에의 제자 건축가 김종성의 남산 힐튼호텔

남산 서울 힐튼 호텔이 닫는단다.

대우 그룹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그 기세를 펼칠 때, 그 크라운 같은 결정체가 남산 힐튼호텔이다.


나 대학생 때 관광과 친구 따라 남산 서울 힐튼호텔 연회장에서 알바 꽤나 했더랬다.

요리조리 직원용 지하통로를 지나 거센 증기가 가득한 세탁실에서 갓 다려진 알바용 무릎 기장 검은 치마를 받아 입고서. 연회장에서 둥근 테이블도 굴려보고, 테이블 세팅하고, 음료 트레이 들고 대연회장에서도 꼿꼿이 서 있었다.


그날 일한 돈을 당일 현금으로 바로 지급하는 힐튼 호텔 알바는 90년대 당시 인기가 높았다. 새벽에 선착순으로 줄 서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숨 가쁘게 뛰어 올라가던 여름 새벽. 어스름 속 남산 힐튼호텔의 거대함이란. 

그때에도 이건 왜 이렇게 생겼을까 했다. 머릿속 특급호텔의 이미지는 하얀 대리석에 서양 꼬불꼬불한 장식이 기둥이나 문 앞에 한가득인데, 남산 힐튼의 검고 차가운 유리 글라스와 수직선은 사실 사무용 건물처럼 보였거든.


남산 힐튼이 미스 반 데 로에의 제자인 건축가 김종성 님의 작품인 건 나중에야 알았다.

학교서 미스 반 데 로에의 수업 하나 들었던 제자가 아니다. 그분의 직원수 32~3명이던 도제식 회사에서 11년을 일하며, 고령이던 그분의 걸음을 부축하던 분이다. 미스 반 데 로에의 IIT 대학 건축과 학장이던 자리에도 나중엔 오르셨다.


김종성 님은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어 고모였던 의친왕비가 거주하던 사동궁내 한옥에서 오 년간 산 경험이 있다. 한국전 후 서울대 건축과에 입학하고 우연히 본 미국 서적에서 미스 반 데 로에의 작품을 접했다. 한옥의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고 벽을 채우는 방식이, 미스 반 데 로에의 철골로 기둥을 얹고 보를 얹는 방식과 유사하게 여겨 그가 있는 IIT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단다.  


그리고 미국 시카고에 막 도착해서 이후 우리나라 사람 그 누가 찍어도 이에 필적할 수 없는 크라운 홀 사진을 1956년에  한 장 남기셨는데, 이게 바로 이거다.

당시 갓 완공되어 학생을 맞을 채비로 형광등 환하게 밝혀진 크라운 홀을 보고 전율이 일었다고.  


이 깎은 밤톨 같은 소년 인상의 청년은 지금 87세로 한국 건축계의 중후한 거장이 되셨다.



네. 윗 사진 이후 63년 지나 찍었습니다. 별 차이 없는 건물의 상태. 좋은 재료와 바른 시공의 힘.



건물 위 툭 튀어나온 구조물 4개가 이 전체를 들고 있는 종루 같은 구조. 한국전쟁 후의 소년이 이걸 봤으니 전율할 수 밖에


근접하면 금속에서 녹물이 약간은 배어 나왔지만, 아주 관리가 잘 된 상태. 우리네 땅에서 금속 건물이 이 정도로 외부에 비를 맞았으면 이미 삭아 없어졌을 듯.



당시에 정말 획기적이었던 공중부양 계단
미스 반 데 로에가 즐겨 쓰는 재료인 구멍 많은 하얀 대리석, 트래버틴이 조금 풍화되었지만 이 정도야..
안에 들어가서 밖을 본 전경. 건축과 학생들의 작품이 보인다.
크라운 홀 일층으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학생들의 작업 전경. 외부 건축 투어객이 많아서 학생들은 전혀 신경 안 씀.


건물 안에 기둥이 없다.


반층 내려가면 있는 건축 도서관 책장 위에는 유명한 디자인 의자들을 전시해 두었다. 사진 오른편 하단의 학생들이 책 읽는 의자는 미스 반 데 로에의 1929년 디자인 브르노 체어



미스 반 데 로에가 1929년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체어는 학교 곳곳에서 꽤나 보인다.


IIT 학교 배너. IIT는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의 준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만든 캠퍼스라 내세운다.



크라운 홀 입구에 있는 미스 반 데 로에의 반추상 흉상. 세월에 건물은 안 녹았으나 본인이 대신 녹아 내리셨네.



미스 반 데 로에의 1955년작 크라운 홀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제자 김종성 님의 그로부터 30여 년 후에 지은 힐튼호텔은 지금 우리 손으로 헌다고 한다.

1980~90년대의 남산 힐튼은 우리나라 최고급이었으나, 이후 다른 초고급 호텔들이 많이 생겼다.

거기에 코로나로 국내 호텔업이 다들 많이 힘들어진 상태.


그래서 이 건물은 국내 자산운용 회사 1위인 이지스 자산운용에 넘어갔다.

이 회사는 인사동 쌈지길이나 신사동 가로 골목처럼 재미난 곳도 운영하지만

김수근 건축가의 유작인 르네상스 호텔도 단숨에 허물어, 대형 오피스텔 두동을 지었다.

돈 벌자고 하는 것이 회사의 설립 목적인지라 당연하다.

누군가의 펀드도 누군가의 기금도 누군가의 미래도 몽땅 들어가 있는 자산운용회사 아닌가.  


힐튼 호텔은 1984년 건설 당시 허용용적률 600% 중 350%를 썼고, 완화 용적률 800%를 쓰면 더 큰 건물을 지어 매우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수직 수평 증개축을 생각해 봐도.

수직 증개축은 이 건물이 남산 자락에 있는지라 힘들다. 높이면 남산의 뷰를 더 크게 가리게 되는지라.

수평 증개축을 얼추 한다 치면 건물의 입면이 심히 뚱뚱하게 불어나면서 이 미스 반 데 로에 직계의 검정 유리와 철골들은 다 덮이게 될 확률이 높다.

 

미스 반 데 로에의 구 IBM 빌딩이 더 랭햄 호텔로 바뀐 것을 노 건축가 김종성 님은 인지하고 계셔서.

황망한 마음으로 국내에 들어오셔서 한 인터뷰를 보니 내부 리노베이션을 해 객실 사이즈를 크게 만들어 우리나라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초고급 호텔 브랜드 더 랭햄 같은걸 붙이면 어떨까 하시더라.

객실가가 대략 미국제 힐튼은 30~40만 원대, 런던제 더 랭햄은 80~100만 원대라고 보면 된다....


으으음... 큰 땅덩이에 큰 단차로 설계의 묘미가 있으니, 노 건축가 살아계실 때 같이 협업하면 어떨까.

이 힐튼 땅은 아무리 서울역 뒤라고는 해도 급 언덕배기라서 접근성이...

허물고 짓는다는 대형 주상복합에 어차피 호텔 넣을 거라면 말이다.


시카고와 미스 반 데 로에를 쓰다가 김종성 님과 힐튼까지 넘어가다 보니 마음이 안타까워져서.

어쨌든 올해 안에, 내 이십 대 즐거웠던 알바 장소 남산 힐튼 꼭 묵어 봐야지.

힐튼 지하의 나은 크라프트 가서 자개 수다도 왕창 떨어야지.


내 안타까운 마음은 여기까지.




참고, 옛 사진 두개 출처

https://blog.naver.com/designpress2016/22259016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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