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첫눈 내릴 때 만난 사람

by 꿈꾸는 리얼리스트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지금은 초겨울의 알싸함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겨울은 추워도 입김을 호호 불며 다니는 사람들이 귀여워 보이고, 온기를 찾아 난로 앞에 모이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불가에 모여드는 그런 온정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 사람이 그때 눈에 들어왔는지, 그도 나도 한눈에 이끌렸던 사람. 그는 성당 오빠였다.

감자탕 집에 신부님과 우르르 몰려가 밥을 먹고 헤어질 무렵이었다. "안젤라, 우리 홍대 가서 맥주 한 잔 더 할까?"


그날 이후, 특별한 사정이 있는 날을 빼고 우리는 3년을 매일 만났다. 지나고 들은 얘긴데 그는 기도했다고 한다. "하느님, 우리가 사랑에 빠지지 말게 해 주세요."라고. 나도 기도했었다.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라고.. 그는 환자였고,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다. 나도 처음에 우리 사이가 남. 녀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젤라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 안젤라와 가끔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정말이지 나는 무슨 상담가인 양 그 형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아쉬울 것 없이 자랐으나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에 못 미쳐 나약한 장남으로 자랐고 아버지에 대한 반발인지 부모님이 볼 때 조건이 안 좋은 연상녀와 연애를 해서 아버지가 호적까지 판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호적을 파는 게 가능한 일인가? 끝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해 겨울부터 3년 간 아주 힘겨웠지만 뜨겁다면 뜨거운 열애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이 연애라고 말하는 연애를 이 한 사람과만 해봤다. 내겐 사랑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게 해 준 단 한 사람.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아름답지도, 추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흔한 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겐 거의 70% 그 형과의 만남과 장면들이 뚜렷이 기억날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사랑일까, 연민일까. 처음부터 다가가기를 주저했으나 나도 모르게 가까워졌던 우리의 만남, 사랑과 우정, 인연, 연애.. 한 때는 악연으로 여겨져 내 인생에서 도려내야 할 부분이 아닌가까지 생각하기도 했으나 어쩌겠는가 삶은 때로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그 사람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고, 때때로 나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코 미화하려는 건 아니고, 내게 '이성애'에 대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르쳐준 단 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첫눈' 하면 이 사람 생각이 난다. 첫눈 내리면 만나야 할 것 같은 사람, 내 손을 잡아 자기 주머니에 넣어주던 사람, 우유갑까지 따주던 사람.. 그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겨울을 좋아했지만 그 사람을 만난 계절이 겨울이어서 나는 계속 겨울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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