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싫은 길도 같이 가던 사이

고마워요, 나의 뮤직스타 4

by 단짠

숨어 버림을 어떻게 그녀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은 필요하지만 할 수 없다. 그녀들과 나의 삶이 굽이쳐 흐르고 흐르며 그려 간 수많은 점, 그 점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돼버렸어."

이 말밖에는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경숙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들 때, 미경이가 예전과 달라진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희야, 경숙아, 우리 술 한잔 해야 쟤?"

"술 마실 줄 아나?"


나이 마흔인데 술을 마실 줄 아느냐는 경숙의 질문에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이없어하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까르르까르르.


수다쟁이 미경이는 수다쟁이가 아니고, 키 큰 경숙이도 단호한 인상이 아니고, 눈이 작은 나도 사투리를 섞어 쓰지 않지만, 우린 다시 여중생이 되어 버렸다. 한참을 이유 없이 서로를 툭 툭 쳐가며 웃어대던 우리.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어느 순간 울음소리로 들린 건, 나의 지나친 착각일 거다. 다시 만난 지 한 시간밖에 안 된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알 수 없어서 슬퍼할 수도 없으니까. 그저 그날의 내 감정이 울음 섞였나 보다.


"미경아, 넌 달라졌어. 그 하이톤 목소리는 어딜 갔어?"

"야가 보험 영업하다, 다단계 하다, 몇 번 사기당하고 지 신랑한테 쫓겨난 뒤로 목소리가 저음이 됐다. 아이가, 사람이 변하면 죽는 기다. 니 꼴대로 해라 마."

"사기를 당해? 그럼 사기 때문에 이혼도 한 거야?"

"응, 얼마 안 됐다. 하도 치여 샀더니만 목소리가 줄어들었어. 아아~~ 아아~~."


고음과 저음을 번갈아 내며 예전 목소리와 지금 목소리를 흉내 내는 미경은 순간 하이톤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까르르까르르.


"가시나야, 닌 이게 낫다. 폼 잡지 마라."

'맞아. 넌 하이톤이야."

미경의 실룩거리는 표정에 우린 다시 까르르 웃었다. 경숙은 프랜차이즈 꼬치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가게는 습한 냄새가 쾨쾨하고 어수선해 보였다. 경숙이랑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곳곳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데 통일감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이 가게를 오랫동안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마시자, 경숙아 꼬치 뭐가 맛있어?"

"모둠이지."

모둠이라는 소리에 우린 또 신나게 웃었다.


"그래, 모둠으로 푸짐히 가져와라. 오늘 우리 25년 만에 실컷 얘기도 하고 신나게 마시자."

"떡볶이가 꼬치랑 소주가 됐다. 마."


경숙이 주방으로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겨진 미경과 나는 셋에서 둘이 되자 잠시 어색해졌다. 먼저 말을 건넨 건 미경이다.


"야, 내가 그때 좀 심했재."

"뭐?"

"시치미 떼기는 가시나 여전히 얄밉다. 니는."

"아, 카세트."

나는 웃으며 이제야 기억나는 척했다.


"그게 늘 맘이 불편했다."

"다 지나간 일이잖아. 덕분에 난 팝송 원 없이 들었다. 올드팝."

"거 봐라. 내가 다 닐 위한 거라 했재."


그래, 우리 사이에 악의는 없었다. 중학교 3학년에게 월 10,000원이 부담스러웠지만 난 그녀의 카세트테이프 덕분에 안전한 내 방에서 음악을 누렸으니까. 바깥세상을 궁금해하거나 욕심내지 않아도 충분했던 나의 방, 나의 카세트테이프. 날마다 내 방은 콘서트홀이었다.


경숙의 모둠꼬치는 푸짐했다. 구겨진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짧게 자른 머리가 무뚝뚝한 그녀 말투만큼이나 무뚝뚝했지만, 그녀의 꼬치는 다정다감했다. 그녀의 가게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유는 그녀의 꼬치가 맛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셋은 살아온 이야기보단 중학교 때 추억을 나누느라 바빴다. 가수 조용필이 부산 왔을 때, 셋이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찾아갔던 이야기에서 가기 싫은 길도 함께 가던 우정이 기특해서 건배해야 했다.


"경숙이가 조용필 왕 팬이었잖아. 이용이 멋있다, 조용필이 더 멋있다. 예지랑 말다툼하다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 거 대박이지 난 둘 다 아저씨 같았어. 015B와 신승훈이 있는데 니들 웃겼다니까."

"가시나야, 머리 끄집어 댕겨 볼래?"


경숙의 눈이 커지며 얼굴을 붉게 물들일 듯이 언성을 높였다.


"너 아직도 좋아해?

경숙인 말 없이 끄덕였다.


그래 조용필이 그때의 그녀에겐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경숙의 가게에 그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난 그녀의 끄덕임 후에야 노래가 귀에 들려왔다.

https://youtu.be/BDV0PQp5Ius


친구여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조용필-



사진© pen_ash,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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