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성과 멍에
( 여러나라의 비참과 치욕 https://brunch.co.kr/@sonsson/27 )
오랜기간 제대로 통합된 국가를 구성하지 못하고, 게르만족으로 구성된 수 십개의 중소 영지의 느슨한 결합체로만 존재한 것이 독일이다. 그나마 게르만 족의 가장 동쪽이라 이름지어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에 의해 어느 정도 위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유럽 근세 이전의 역사 대부분을 통틀어 특별히 자신의 위상이라며 내세울만한 꺼리도 독일에게는 별로 없었다.
스페인과 영국이 식민지 경영으로 횡재를 하고 있을 때도 대부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고, 프랑스군 혹은 다른 나라의 군대들이 한 번씩 독일의 중소영지들을 휘젓고 다니며 약탈을 할 때도 고스란히 견디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근세 이전 오랜 기간 로마와 프랑스의 압도적인 문화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던 후진국이었다.
히틀러가 제 3제국을 외치면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다닌 것도 그런 상실감의 반작용 때문일지 모른다.
독일은 1차대전과 2차대전에서 처참하게 부서졌고, 굶주림 속에 성냥 한 개비도 나눠쓰는 가난을 겪었다. 승전국들에 의해서는 또다시 힘을 키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라가 2개로 쪼개지는 경험을 당하기도 했다.
게르만 민족의 단일성을 분쇄하기 위해, 민족과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다른 터키인들을 저임금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수입하는 정책이 암묵적으로 집행되는 경험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 현재 독일 전체인구가 약 8000만명인데 비해 독일거주 터키인의 인구가 400만명이나 되고, 이는 왠만한 북유럽 국가들의 인구수와 맞먹는 정도가 된다. 문화적 및 가치관의 갈등이 언제든 돌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노르만족에 의한 슬라브족의 정복으로부터 러시아는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슬라브족은 로마와 바이킹과 서유럽 정복자들에 의해 백인 노예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모든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키에프는 1240년 몽골족의 원정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다.
제베와 수보타이의 군대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던 대부분의 공국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운 좋게 파괴를 면한 몇몇 도시들은 몽골에 상납금을 바쳐야 목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는 몽골에 수완좋게 아부를 잘하였고, 이웃 공국들의 상납금을 수금해서 칸에게 바치는 마름 역할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1500년경이 되어서야 몽골의 방임아래 성장할 수 있던 모스크바공국의 주도로 킵차크 칸국의 억압적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몽골-타타르의 멍에는 러시아 민족에게 250년 이상 씌워져 있었으며, 이후에도 치욕스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유럽의 국가들로부터 아시아적이며 봉건적이며 비문명의 대명사로 여겨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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