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원

by 훈자까

난 당신을 사랑해야만 했다.


꽃잎이 검게 물든다. 방금 태어났지만 소속감은 가득하다. 눈을 비비니 많이도 피었다, 같은 예쁜 것들이. 똑같아 보이기는 하나, 그래도 조금은 다르다. 향기나, 모양이. 물론 같은 색의 흐릿한 모양새이지만.


우리는 흑장미라고 하더라. 꽃말은 찬란하게도. 영원한 사랑, 당신은 나의. 소유나 구속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단다. 슬프기도 하지.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름다움을 논한다면 그게 밝기만 하다는 전제는 아닐 것이니. 매료되기에 어둠인 걸까, 어둠이 고혹적인 것일까.


당신은 빛이었던가. 언제부턴가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정말로 밝고, 또 밝은. 내 잎사귀의 태가 희미한 건지. 이리저리 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기도 하고. 혹은 저 친구의 하늘한 드레스가 너무 길었던 탓인가 반짝이는 재봉가위로 잘라주기도 하고.


단색의 세상은 눈이 감긴다. 눈이 부시든, 깜깜하든 간에. 결국 보이지 않아서. 단순한 검정이라는 말도 부여받지 못할 세상을 유일하게 깨워주는 건. 너였으니까.


유일한 아름다움도. 낯부끄러운 아픔도. 보여져야만 하다가, 언제든 보여줄 수가 있어서.


사랑하는 당신을 계속 보고만 싶어져. 눈 뜨니 존재해야만 하는 이 검정의 장소에서. 희귀한 백색을 찾아줄 수 있는 것도, 반투명에 반사되어 모든 색으로 세상을 유랑할 수 있는 것도. 당신뿐이니.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