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회에 받은 트로피
뭘 준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으나 짐 가방도 미리 싸 놓고, 알람도 몇 번씩 확인했다.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주차를 못 할까 봐 한 두 시간 더 일찍 출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이러저러 한 상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도 염치는 있어 가장 작은 거리인 '5km'를 신청해놓은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완주는 할 수 있을지, 중간에 갑자기 배나 다리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옷은 반팔이 나을지 긴팔이 나을지, 많은 생각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다행히 제시간에 일어나 후딱 준비를 하고 남편과 함께 대회장으로 갔다. 아직 해도 뜨기 전에 오랜만에 둘이서만 어디론가 떠나는 상황이, 대회에 참가한다기보다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정말 일찍 왔는지, 텅텅 비어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리는 번호표를 티셔츠에 붙이며 이래저래 몸을 풀어 보았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들자 그들을 따라 집결지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러너인 우리는 그때부터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대회장의 구성, 러너들의 복장, 단체들이 모여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준비하는 모습까지 말이다.
모든 운동은 장비빨이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문적인 스포츠의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예쁜 디자인의 운동복과, 보기만 해도 잘 달려지게 생긴 날렵한 운동화들을 보다 보니, 그냥 집에 있는 추리닝 긴바지에 대회 신청으로 제공받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온 우리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졌다. 그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다행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라며, 우리도 다음엔 멋진 모습으로 오자며, 서로 킥킥 웃으며 다독거리는 게 꽤 힘이 되었다. 어떻게든 첫 대회에 완주만 하면 우리는 성공이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풀코스, 하프, 10km에 이어 어느덧 5km 참가자들이 출발할 시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많은 인파 속을 이리저리 헤쳐나아 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직 러닝의 기술도 대회에서의 페이스 조절도 잘 모르는 초짜는 그냥 냅다 있는 힘껏 달렸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치고 지나갈 때마다 쾌감이 느껴져서였을까? 우리끼리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어디 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3km를 넘어가면서부터 숨도 차고 다리도 묵직해졌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속도는 점점 늦어졌지만 애 둘을 나은 엄마의 깡으로 끝까지 무거운 다리를 끌고 나갔다.
어디선가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며 내 다리를 자꾸만 잡아 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멀리 결승점이 보이자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되었다. 내 앞의 한 명이라도 더 앞서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나와 남편은 모두 완주에 성공했다. 드디어 첫 대회 공식 기록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언가에 이렇게도 최선을 다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고 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선수들이 왜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완주 매달과 간식을 받으러 갔다. 첫 매달을 사진에 남기고 맛있게 냠냠 당 충전도 하면서 앱으로 나의 기록을 조회하던 중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여자 4위였다!! 근소한 차이라서 조금만 더 힘을 내었다면 3위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아니 첫 출전에 이 정도면 대성공이 아닌가? 참가에 의의를 두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의외의 성적을 얻고 시상대까지 올라가 트로피와 상장을 받아왔다. 비록 건강 달리기에서 얻은 성적이라 다른 러너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상이라 나는 너무 기뻤다. 내가 '달리기'를 앞으로의 취미로 굳히게 만든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가슴속에도 아직 이런 아이들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도전
욕심
성취감
그리고 그동안 잠들어 있던 이 아이들이 깨어나 꿈틀대게 되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