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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Oct 01. 2024

로또번호, 0926

0926의 미션




“야이, 미친년아, 내가 번 돈으로 너랑 얘랑 호의호식하면 됐지, 내가 밖에서 누굴 만나고 다니든지, 네 년이 무슨 상관이야.” 남자는 여자를 향해서 손을 날렸다. 


‘짝’ 귓방망이질을 당하자 소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이혼을 당했다. 간통죄도 사라진 지금 소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간자 소송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하면 이 폭력남편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봐야해서 그것도 싫었다. 하루라도 빨리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함바집 아줌마와 눈이 맞은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전세금도 빼서 나가버렸다. 소희는 3살배기 얘기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다행히,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6개월 기한으로 임시로 대학로 근처에 살 거처를 얻었다. 


소희의 아버지 찬주는 천국에서 그걸 다 보고 있었다. 평생 선하게 살다가 암이 걸린 줄도 모르고 치매 할머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던 소희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되지 않아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원래는 안되지만 아버지 찬주의 근심이 항상 지상의 딸에게 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천국의 문지기는 비번일때마다 아버지에게 지상의 소식을 알려주곤 했다. 가끔은 몰래 불러서 재판시에 틀어놓고 끄지 않은 채널라인을 통해서 딸의 근황이 담긴 압축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루는 천국의 문지기가 재판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우연히 알게 된 다음 주에 곧 있을 로또번호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번호를 기억했다가 그 영상을 찬주에게 알려주었다. 문지기 자신도 지상에 있을때 그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번이 찬주라는 사람을 도와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지기는 오래전에 이곳으로 올라왔기에 자신이 가진 비밀소통 채널이 4바이트 밖에 되지 않았다. 문지기가 자신의 채널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문지기는 천국에서 가장 낮은 직급이라 지구와의 비밀 소통 채널이 4바이트 밖에 안된다. 그러니 전체 번호를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곳에서는 직급마다 비밀소통 채널을 가지고 있다. 채널별로 사이즈도 다르고 크기도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정보를 후손에게 줄 수도 없다. 반드시 꿈채널방을 통해서만 자식이나 정해진 사람에게 정보전달이 가능한데 워낙 대기자가 많아서 몇 달을 기다리거나 그나마 방에 들어가도 주어지는 시간은 보통 몇 분 정도가 최대 시간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찬주에게 드디어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주에 있을 로또 번호를 딸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알려줄 수 있는 번호는 단, 숫자 2개라는 것이 제약이라면 제약이었다.  


찬주는 천국의 문지기가 자신에게 보여준 전체 번호를 한참동안 보았다. 햐, 하나님도 이걸 어떻게 6자리를 숫자2개로 퉁쳐서 알려주라니 이걸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긴 이건 하나님이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문지기가 자신을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다. 


하긴 소문나면 다들 자신의 아들 딸에게 로또번호, 금고 비밀번호, 못가지고 온 금괴 주소 등 지구가 난리도 아닐 것이었다. 그래서 천국에서 알게 된 정보를 지구로 유출하는 자체를 이런 식으로 막아 놓은 것이다. 


그 위 천사장인 가브리엘 급만 되어도 메가나 기가단위로 전달이 가능한데...쩝. 


“저 생각 좀 오래 해도 되나요?”


문지기가 알려 준 번호가 눈 앞에 떴다. 그걸 보면서 찬주는 암담했다. 6개 번호를 단 2개 번호로 말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시'도 아니고 단순한 숫자인데 이걸 어떻게 압축해서 알려줘야 하는지 눈 앞이 캄캄했다. 


딸에게 로또번호의 정보를 알려주게 된 것은 좋지만 잘못하면 평생 회한과 후회같은 괜한 시비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럼요, 생각은 천천히 하세요. 하루 정도 푹 생각하시고 내일 정도에는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꿈연결방 예약해 두었어요. 저 이거 소문나면 짤려요. 그러니 절대 비밀아시죠?”


“아휴, 문지기님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비밀은 끝까지.” 찬주는 고개를 구십도로 조아렸다. 


“로또 당첨금이 많이 쌓였어요. 이게 섭리에 들어가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70억 정도 되니까. 세금 내고도 따님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겁니다. 근데 제가 소통채널이 짧아서 정보 전달이 따님께 될지 그게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영상은 정상으로 나가니 걱정마십시요. 절대 영상으로 딸을 만나는 자리, 즉 오픈상황에서는 절대 전체 숫자를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제안드린 십의 자리까지 숫자2개만 비밀채널로 보호가 가능해요. 전체 숫자를 말씀하시면 찬주씨도 욕심을 부렸다고 저 바닥으로 떨어질지 몰라요. 저도 징계를 먹어요. “


“네 문지기님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찬주는 숫자를 마음에 또 새기고 새겼다. 어떻게 소희에게 전달을 해야 할까.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조용히 아름다운 계곡에서 폭포수 소리를 들으면서 연습을 했다. 

주어진 기회는 딱 한번, 딱 한번이었다. 이 안에 소희가 숫자를 이해해야 했다. 


6개 번호를 다시 한번 머리속으로 되뇌였다. 


좋아, 소희는 똑똑한 아이야. 아주 수학을 잘 했지. 이건 수학도 아니고 산수야.

무엇보다도 센스가 필요한 것이었다.  

틀림없이 똑똑한 내 딸은 잘 이해할거야. 내 뜻을 말이야. 


그렇게 정한 번호가 09번과 26번이었다. 0926번이다. 

6개의 로또번호를 딱 두 개로 압축해서 만든 번호였다. 


하루가 지났다. 


“자 찬주씨 오늘 저녁이에요.” 문지기가 지상 꿈연결방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고 말했다. 


시간대가 새벽 4시 반이다. 그 시간에는 딸이 가장 깊은 꿈을 꾸는 시간이다. 그리고 보통 일찍 일어나니까 바로 기억을 할 것이 분명했다. 


한편, 이혼을 한 지 얼마 안되는 소희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편 모습을 한 괴물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찬주는 꿈연결방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찬주는 연결되었다는 신호로 방 안에 ‘ON Air’ 불이 켜지자마자, 제일 먼저 도끼를 꺼내서 괴물의 대갈빡을 쳤다. 괴물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사라졌다. 

괴물이 사라지자마자 찬주는 딸의 꿈 속을 아주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평화로운 공원 배경으로 바꿨다. 이 꿈은 꿈연결방에 연결된 이상 찬주의 마음대로 꾸밀수가 있었다. 그건 천국 꿈연결방의 특권이자 힘이었다. 


“혹시 아빠?” 찬주의 딸 소희가 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 아빠야.” 찬주의 옷과 얼굴은 빛을 머금은 듯이 움직일때마다 빛났다. 


“왜 한번도 안 나타나고....” 소희의 볼에서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아빠는 천국에서 항상 널 지켜보고 있었단다.” 찬주가 딸을 꼭 안아주었다. 


한참 동안이나 소희는 울었다. 


“저기 잠깐 앉을까?”


찬주가 나무벤치를 가리켰다. 거기엔 소희가 좋아하는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딸기 생크림 케익이 놓여 있었다. 


소희는 허겁지겁 그걸 먹었다. 찬주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 보았다. 


“잘 헤어졌어. 오서방하고는. 그놈 아주 못쓰겠더라. 여기서 그놈의 만행을 사이사이 보았어.”


“그래? 아빠가 그렇게 판단을 확실히 해 주니 난 좋으네.” 소희가 웃었다. 


“소희야 아빠 말 잘 들어. 아빠가 오늘 너 보러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왔어.”


“무슨이유?”


“아빠가 전체 번호를 다 말하지는 못해. 그게 여기 원칙이야. 최소한의 힌트도 줄 수가 없어.”


“어 정말? 이번 주 로또라도 사라는 말이야?”


“맞아. 로또를 꼭 사야 해. 알겠지?”


“힌트라도 줘야 사지. 아빠.”


“자, 그러니까 아빠 말을 잘 들어. 절대 잊으면 안돼. “ 소희의 아빠는 소희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알았어. 아빠.”


“아빠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번이야. 그리고 아빠가 이 숫자들을 불러주는데는 이유가 있어. 그건 지금은 말 못해. 여기 원칙이니까. 하지만 넌 똑똑한 아이니까. “ 찬주는 소희를 믿어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아빠의 진지한 모습에 소희가 집중했다. 


“공구번과 이십육번이야.” 아빠는 조용히 또박또박 숫자를 말했다. 


“아빠 로또번호는 6자리잖아.”


“그러니까 소희야 아빠 말을 잘 들어봐. 09번과 26번이야.” 찬주의 모습이 조금흐려졌다. 


소희는 바로 아빠가 꿈에서 곧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빠, 알았어. 아빠 오늘은 봤으니까 좋은데 아빠 꼭 다시 내 꿈에 나타나야해. 알겠지? 아빠? 아빠 약속해. 빨리 아빠. 약속하라고.” 소희가 소리를 질렀다. 


“약.속.할.께.” 찬주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졌다. 



“소희씨? 소희씨 괜찮아요?” 옆에서 누가 소희를 흔들어 깨웠다. 


소희는 자신의 눈에 눈물이 아직 맺혀 있다는 사실에 울음이 나왔다. 아빠를 봐서 반가움 마음과 이혼을 한 서러움 그리고 집도 없이 미혼모 보호시설에 얹혀 사는 것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나와서 한동안 무릎을 굽히고 울음을 삼켰다. 임시 공동시설이니 큰 소리로 울어선 안된다. 


“실장님, 고마워요. 모처럼 아빠의 꿈을 꾸었어요.”


“휴, 나는 가위라도 눌린 줄 알고.”


“아니에요. 어서 더 주무세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꿈이 너무나 현실처럼 생생했다. 


소희는 얼른 핸드폰을 켜서 메모장에 9번과 26번을 적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웠다. 아빠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아 맞다. 그냥 9번이 아니었지. 아빠가 구번이라고 하지 않고 공구번과 이십육번이라고 했어. 소희는 메모장을 열고 지금의 감정까지 적었다. 구번 옆에 아빠는 09번과 26번이라고 말했음. 여기 이유가 있을 듯 참고로 로또번호는 6자리임. 이렇게 고쳐 적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았다. 자원봉사들이 3살 딸과 교대로 놀아주고 있어서 여유가 있었다. 


“실장님, 죄송하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목요일요.”


“여기 근처에 로또 파는 곳이 있나요?”


“밑에 내려가서 대각선 골목 나가면 큰길쪽으로 편의점이 있어요. 거기서 팔아요. 소희씨 좋은 꿈 꾸었나 보네요. 대박나세요. 호호호.” 실장이 가는 눈을 하고 웃었다. 


보호시설을 담당하는 실장님은 외부 행사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자원봉사자들이 막 출산을 했거나 아직 어린 아기들을 돌보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2층 제 사무실에서 작업하세요. 종이도 맘대로 쓰셔도 됩니다. 대신 책 나오면 한 부 기증하는 조건입니다. 호호호”


실장이 사무실을 나가기전에 소희에게 사무실 키를 내밀었다. 

입소할 때 직업란에 ‘작가지망생’이라고 힘든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하니 내 준 사무실이었다.


A4지를 한장 꺼내놓고 아빠가 꿈에서 알려준 숫자를 적었다. 0926.

이번 주 로또번호라고 아빠가 말했던 번호다. 


사실 소희는 로또번호보다도 아빠가 천국에 가 계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고 기뻤다. 


그래, 아빠는 나를 다 보고 있었어. 

천국에서 내려다 보시면서 얼마나 내 걱정을 했을까. 

아까 오서방 얘기도 했었다. 울컥 다시 한번 눈물이 솟았지만 참았다. 

아빠는 틀림없이 내가 꿋꿋하게 잘 살기를 바랬기에 위험을 부담하면서 숫자를 전달하러 온거야. 


소희는 그 번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로또번호가 6자리라는 것은 나도 알고 평소 꼼꼼했던 아빠는 더 잘 알 터였다. 

그런데 왜 09와 26번, 2자리만 가지고 온걸까. 흠.....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한참을 아빠가 자신에게 로또를 사라고 하면서 두 개 번호만 전달한 것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던 소희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아빠는 다 6개 로또번호를 전달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어떤 제약에 막혀서 못한거야. 그건 지상과 천국의 어떤 묵계같은 것이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저 숫자에 압축을 시켜 놓은거지. 자 그럼 생각을 집중해야 해. 일단 아빠는 어떤 계기로 이번 주에 있을 로또번호 전체 숫자를 다 알게 된거야. 그럼 아빠도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꺼야. 2개의 숫자로 전달해야 하니까 말이지.


일단은 아빠도 틀림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적었을거야.

그게 실마리의 시작일터였다. 


어디보자. 언뜻 바로 봐도 보이는 것은 로또에 0번은 없어. 일단 바로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보이는 숫자들이 있어. 소희는 로또번호가 몇 번까지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번호는 1번부터 45번까지였다. 


0926 숫자를 똑똑히 노려보았다. 

이 안에 아빠가 소희에게 전달하려고 한 행운이 들어있다. 


직관적으로 일단 생각해 보자. 그럼 바로 보이는 숫자는 9번과 26번이었다. 그리고 26번은 2번과 6번도 가능해. 어쩌면 26번은 실제 로또 번호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자 후보군을 적어보자. 2번 6번 9번 그리고 26번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 그냥 9번이라고 하면 되지 왜 공구번이라고 했을까. 혹시 9번과 다른 번호를 같이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아빠는 틀림없이 전체 번호를 봤다. 그리고 그 번호를 딱 두개의 번호 4자리의 번호에 넣어서 전달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두 마디의 번호일 수도 있다. 뭐가 중요한 것인가. 지금은 아빠가 자신에게 본 전체 6자리의 로또 번호, 그것도 이번주 로또번호를 알려주려고 한다는 사실이고, 그 번호를 자신이 일부이지만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09와 26 만으로는 전체 번호를 유추하기란 쉽지 않았다. 

2번 6번은 확실히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전에 생각한 전부였다. 너무 오래 집중을 해서 보니 머리속이 다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소희는 1층으로 내려가서 아기를 보고 왔다. 이제 3살이 된 아이는 이것저것 질문이 많았다. 오후 5시까지는 자원봉사자들이 다른 아이들까지 함께 케어를 해 준다. 너무 편한 시스템이었다. 보호소에서 나와서 인근 커피샵을 향했다. 


머리 한쪽에서는 자꾸 왜 9번이 아니고 09라는 표현을 썼을까에 온 신경이 쏠렸다. 

왜 그냥 9번이 아닌거야. 왜.

왜 구번이 아니고 공구번이라니까. 

소희는 답답했다. 이 놈의 돌머리를 좀깨고 싶었다. 

이 비밀을 풀면 당장 이 지긋지긋한 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나 단번에 쾌적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으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될 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빠가 그녀를 위해서 자신은 알수 없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전달한 정보였다. 그 해답을 알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번호일까. 소희가 사물을 보아도 사물이 아니라 그건 번호의 풀리지 않는 실마리였다. 도대체 아빠가 본 번호는 뭐야? 뭐길래, 단순한 구번도 아니고 공구번라고 한거야? 어쩌면 아빠가 알려줄 수 있는 인간의 정보는 딱 4자리 였을 것이다. 정확히는 십의 단위로 2자리다. 그러니 그렇게 표현을 한거다. 그럼 눈앞에서 본 6개 자리의 압축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걸 다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다. 보호소로 가는 길 옆에 길게 붙은 마로니에 공원의 나무들이 정오의 햇살을 절반이나마 막아주었다. 공원 안쪽으로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오륜기 들이 수십개의 줄을 연결해서 공중에 걸려있고, 노란색 복장을 한 유치원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 틈에서 줄을 서 있었다. 그 가운데는 울릉도 호박엿을 두툼한 쇠가위로 툭툭깨서 파는 품바 복장을 한 남자가 어떤 아이에게 엿을 잘라서 나눠주고 있었다. 아마도 무슨 어린이 관련 행사같아 보였다. 어른들도 사이사이 서서 나눠준 엿을 받아서 웃으면서 먹고 있었다. 학부모들 같아 보였다.  


나.눠.준.다?


살아있을 때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 뭐든지 나눠먹는 것이에요.

소희가 어릴 적 기억이었다. 아빠는 뭐든지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공공재(公共財) 할때 공(公)자는 공평할 공자야. 알겠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눠 쓰는 것이지. 우리 예쁜 딸.” 마치 아빠의 말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구번은 나누라는 뜻이네. 공평할 공자잖아. 공구라는 것은 9번과 26번을 공평하게 나눠서 쓰라는 것이 아닐까?


소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1층 주방으로 내려가서 큰 플라스틱 컵을 꺼내서 정수기에서 가득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어린 산모들이 있는 방 앞에 구구단이 코팅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길이 구구단을 향했다. 

다시 서둘러 올라갔다. 

그래, 구구단에 넣어둔거네. 어렵게 만들지는 않았어. 아빠는 항상 날 배려하니까. 

자 그럼 앞에 ‘공’자를 넣어야 하는거다. 


9번을 나눌 수 있는 것은 2개 밖에 없었다. 9 나누기 9는 1이다. 즉. 1이 나온다. 그리고 3으로 나누면 3이 나온다. 즉 후보 번호는 1과 3 그리고 9번이다. 


그럼 여기서 나온 후보를 다 적어보자.


1번과 3번 9번. 그리고 2번과 6번 그리고 26번이 아닐까?

아니 만약 아빠가 본 번호가 


A4지에 숫자를 적었다. 


1, 2 , 3 , 6, 9, 26


좋아 한장에 천원이니까 10개 번호를 투자해서 사 보자. 혹시 모르니 공구이니,9번도 나누고 26번도 공평하게 나누는 경우의 수도 사자. 그래서 선택한 번호는  


1, 2 , 3, 6 , 9 ,13 였다. 


그리고 나머지 번호들로 채웠다. 


일요일 로또추첨이 벌어지는데 거실에 있는 TV를 누가 틀어두었다. 


소희는 복권을 고이 지갑에 넣어둔 상태였다. 


[ 네, 지금부터 000회 로또복권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주까지 쌓인 상금 주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현재 1등 당첨금은 72억입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첫 숫자는 1번. 네 일번 입니다.

두번째 숫자는 2번 네 이번입니다.

세번째 숫자는 3번 네 삼번입니다. ]


소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와, 뭔 로또번호가 123이고 웃기네.” 누군가 자원봉사자가 한마디 하자 다들 웃었다. 


“나도 살걸 일이삼을 누가 못 맞추나. 호호호.”


[ 말씀드리는 순간 다음번호는 6번, 네 육번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번호가 다 밑으로 기네요. 지난주는 너무 높았는데 말이죠. 이제 남은 번호는 단 2개입니다. 자 72억의 주인공이 과연 누가 될지 너무 궁금한 상황입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네. 나왔습니다. 9번 구번입니다. ]


소희는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아빠는 숫자에 의미를 넣은 것이고 자신이 그 비밀을 풀었다는 뜻일터였다. 자신의 예측이 맞다면 다음 번호는 맞췄다. 


[네, 마지막 번호는 26번...이...]

[나오려다가 아 13번 이네요. 13번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


소희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소희씨? 왜 그래요? 뭐 누가 로또를 맞기라도 했어요?” 실장이 세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소희는 놀라서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


 [ 네, 축하드립니다. 72억의 주인공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자 감사합니다. ]


TV로또복권 추첨은 끝이 났다. 


일주일후 거실.


“난리도 아냐, 이번에 팔린 1등 먹은 번호도 딱 한 명이라고 하더라고, 이번에는 한 명이 사갔다고 하던데 우리동네라고 하던데. 누군지 몰라도 복도 많지 호호호.” 실장이 웃었다. 


“참, 소희씨는 아직도 아파요? 음식도 저렇게 안 먹고 말이죠.”


“네, 지금 2층 방에 누워 있어요. 병원가자고 해도 괜찮다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기다려달라고 하네요.”


그날 밤, 소희의 꿈에 아빠가 다시 나타났다.


“소희야, 축하해. 1등 되었더구나.”


“아빠 덕분이지 뭐.....으앙....” 소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희의 아빠 찬주는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이제 딸은 전처럼 고생만 하지 않을터였다. 

무엇보다도 여자 혼자서 딸을 키우는데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제서야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제 어디 이상한 놈 만나서 이혼당하지도 말고, 사기당하지도 말고 잘 살아. 알겠지? 아빠의 암호를 잘 알아줘서 너무 고맙다. 이제 아빠는 바로 또 가봐야 해. 여기 꿈연결방이 몇 백개 있지만 그래도 꼭 써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른 양보해야 해 ” 아빠가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소희에겐 보이지 않는 줄이다. 소희의 아빠가 다시 소희를 보면서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이젠 가야겠다. 여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잘 살아야 해. 알겠지? “


“네 아빠. 나 한 번만 안아주고 가요.” 소희가 울음을 참아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는 하얀 흰 옷에서 다이아몬드가 박힌 듯이 빛이 나고, 얼굴빛은 환하게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아빠 너무 멋있는것 아냐?” 아빠라는 존재, 그 이름만으로 소희는 앙탈스런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허허, 천국에 오면 지상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절대 혼자 다 쓰려고 하지 말고 사이사이 어려운 사람 도우면서 사는 것 잊지 말고 알겠지?” 아빠의 모습이 천천히 흐려졌다. 


“네 명심할께요.”


“사랑한다. 우리딸. 이제 아빠 왔으니까 일어나서 밥 먹어. 너 보러 금방은 못 와요.” 라는 말만 남기고 아빠는 사라졌다. 


“아빠, 고마워요. 따랑해요.” 빈 허공에 대고 소희가 소리쳤다. 


아빠 찬주는 막 자신을 향해 외친 딸의 목소리를 다 들었다. 


‘0926’의 비밀을 알아낸 딸이 기특했다. 


처음 문지기가 자신에게 이번 주 로또 복권번호이라면서 보여준 1, 2 , 3 , 6 , 9, 13이 보여줬을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찬주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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