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첫 인생 뉴욕 마라톤 완주 메달
뉴욕 마라톤 스웨그 백 (Swag Bag) 이 도착했다. 스웨그, SWAG = Stuff We All Get, 구디 백 (Goodie bag)이나, 기프트 백 (Gift bag), 생일 파티, 베이비 샤워, 결혼식 어떤 행사에 참여하고 주고받는 답례품이 들어 있는 선물 가방이다. 뭔가 있어 보인다... 이거지... 입꼬리가 올라가고, 찐 눈웃음이 나오며, 미국 리액쎤이 잔뜩 나오는 순간이다.
2020년의 첫 번째 달이 마무리 지어지려고 하던 그날, 내 첫 인생 마라톤을 뛰어 보겠다는 창대한 꿈을 안고 50주년을 맞이한 뉴욕 마라톤에 신청을 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쯤, 2020년의 두 번째 장 끄트머리에서 소식이 들렸다. "Unfortunately, you were not the one of the runner selected for this year's race." 안타깝게도 당신은 올해의 경주에 선발된 주자가 아닙니다. 안타깝게 하지 말지, 이 소식이 무척 안타까웠지만 2019년 보다 50%나 높은 185,000 지원자들 중에 4,262 (2%)만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소식에 그리 상심하지 않았다. 언제나 길은 있다.
2021년 첫 번째 달을 시작하는 지금, 나는 첫 인생 뉴욕 마라톤을 완주하고 받은 스웨그 백 안에 들어 있던 완주자 메달을 목에 걸고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2020년 1월 10일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꿈이었던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2021년 1월 10일에 나에게는 현실이 되어있는 꿈보다 더 꿈같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뉴욕 마라톤을 달려 보겠다는 생각이 2020년 우리를 마비시켰던 코로나를 만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말도 안 되는 것 같던 아이디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두려울 것도 없다. 하프 마라톤을 한번 뛰어 보고 겁도 없이 마라톤을 뛰어 보겠다는 나의 행동의 원동력은 무지함이 아닌 호기심 (Curiosity)이었다. 달리고 싶은데, 달릴 수 있을까? 달려보려고 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호기심 이 코로나 때문에 당연하지 않게 변해버린 우리의 일상을 만났다. 변화를 마주해야 했던 우리, 달리기를 포함한 모든 삶의 일정이 연기되거나 캔슬되고, 모든 것이 멈춰 버리는 것 같아서 굳어져 버릴 것만 같던 내 몸과 마음을 이겨낼 수 있던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인내심 (Perseverance)이었다. 오늘만 살았고 오늘만 달렸다. 오늘을 살아서 오늘을 달려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매 순간 선택했다. 내 일상의 리듬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나의 건강한 루틴이 나의 하루를 지켜주는 면역력을 키워 주고 있었다.
Run, Read, Reflect, Rest and Repeat, 달리고, 읽고, 돌아보고 기록하고, 쉬고, 반복하면서 너무도 빠르게 변해버렸던 2020년을 변하면 안 되는 것들을 더 꼭 잡았다.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뉴욕 마라톤 신청에 떨어졌던 것,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다 떨어졌던 것 , 2020년 내 맘대로 안된 것만으로 잔뜩 기억되는 한 해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끝이 바뀌어 버렸다. 우리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이 중요한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을 지금이 아닌 결국 이루어 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처음부터 쉬운 건 없었고, 처음부터 잘하는 건 없었다. 못할 거다, 안될 거다, 그런 건 왜 하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지금 까지 그랬고 아마도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천천히 꾸준히 한다. 못하는 걸 잘해보려고, 안 되는 걸 되게 해 보려고, 왜라는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매일 조금씩 한다. 조금씩 해야 지치지 않고 매일 할 수 있다. 지금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부터 해본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이루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이루어 내면 되는 것이다.
결국 뉴욕 마라톤도 완주했고, 브런치 작가도 되었고, 달리면서 썼던 글들로 브런치 북도 발간하였다.
뉴욕 마라톤 완주자에게 주어진 스웨그 백 안에 메달보다 더 큰 것이 들어있었나 보다, 모든 것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 (Hope)이다. 2021년 1월, 너무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많이 힘들고 아플 전망이다. 좋은 약과 백신을 계속 연구하고 개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호기심, 인내심, 희망을 가지고 나 혼자서만 잘살아지는 세상이 아닌, 같이 잘살아야 할 세상에 필요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2021년을 만들어 봐야겠다. 그래서, 나는 나를 하기 위해 오늘도 달리고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