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거야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시린 계절을 지나니 우울감이 더해졌다.
아들과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이 집은 두 식구가 살기엔 너무 넓고 휑했다.
남편이 떠난 지 2년 차가 되어간다.
친정 엄마는 진작부터 함께 살자고 했지만, 혼자 버텨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계속 싫다고 했었다.
누군가에게 또다시 기대어 산다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를 의지하며 살다가 또다시 잃게 된다면, 그 상실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남편이 갑자기 떠나고 난 뒤부터, 나는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던 대상들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는 마음의 습관이 생겨 버린 것 같다.
부모도, 자식도 언젠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날 것만 같다. 온전히 사랑을 쏟아붓지만, 사라짐을 전제한 까닭에 그 밑바탕에는 슬픔의 빛깔이 서려있다.
밤마다 밀려오는 적막감과 공허함, 우울감 같은 것들을, 아직 어린 이 아이와 홀로 버텨내기엔 내 자신이 너무 무력했다.
그렇게 나는 집을 정리하고 아이와 친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친정으로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내 삶의 무게를 홀로 버텨내지 못하고 실패한 것 같은 생각, 다시 부모님을 의지하며 살다가 갑자기 부모님도 내 곁을 훅 떠나버릴 것 같은 생각, 여러 생각들이 나를 밤마다 못 살게 굴곤 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람과 부대껴야 하는 것이 맞는가 보다. 친정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내가 다시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살게 될 줄이야...!)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시시콜콜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이 있는 이곳의 온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나를 살게 하고, 나를 회복시키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라는 그림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네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 도와줘라는 말.”
요즘 유독 더 생각나는 문장이다.
그렇구나, 도와달라는 말이 이렇게도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구나.
삶으로 다시 한번 곱씹게 된 이 문장.
그래, 예준아. 엄마는 실패한 게 아니었네.
용기 있던 거였네, 그치? 우린 용기 있던 거야.
친정 부모님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한 번 더 되뇌었던 것 같다.
이제 기운을 차리고, 새 직장에 적응해야 한다.
내가 살던 지역 만기가 차서 올해부터 시외로 출근을 하고 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
또다시 나는 “결혼은 했어요?” “애기는 있어요?”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질문 세례 속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겠지.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예전 직장이 벌써 그립다.
둥지같이 편안했고, 따뜻했고, 안전한 곳이었는데.
그래도 기운을 내본다.
힘들 때 언제든지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도록, 또다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