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y Oct 24. 2021

괜찮다고 해도 다시 확인할걸

Revised on Oct 24, 2021



아름다웠고 향기로웠던 나의 틸란드시아 스트라미네아(Tillandsia Straminea)



식물을 키우다 보면 화분이 처음엔 하나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간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희귀 식물 같은 구하기 어렵고 값비싼 식물에 눈이 간다. 나 또한 한창 희귀 식물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틸란드시아 종류 중 하나인 스트라미네아(Tillandsia Straminea)는 나의 희귀 식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식물이었고, 당시에는 내가 가진 식물 중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했으며, 가장 쓸쓸하게 보낸 식물 중 하나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가던 식물 판매 사이트에서 틸란드시아 스트라미네아를 판매할 예정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당연히 한정 수량에, 판매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 식물계의 티켓팅 같은 순간이었다. 판매 당일에는 판매 창 오픈 시간까지 알람을 맞춰놓고 손을 덜덜 떨며 겨우 결제에 성공하여 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나의 첫 스트라미네아를 만날 수 있었다.


소중하게 포장되어 도착한 스트라미네아는 내 방에서 식물이 가장 자라기 좋은 상석(바람이 잘 통하고 해가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하였고, 매일 눈뜨자마자 보이는 나의 스트라미네아는 말 그대로 행복이자 위안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분홍색의 스트라미네아 꽃들은 세상 그 어떤 향기보다 아름다운 꽃향기를 선물해 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의 작은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퍼지는 스트라미네아 향기는 향기롭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머리맡에 두었던 스트라미네아 꽃향기는 여름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밤바람을 타고 들어와 지독한 불면증을 겪는 나에게 마치 부드러운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함께해 준 식물이었고, 아침이면 도시 한복판에서 꽃향기로 잠을 깨워주는 동화 같은 식물이었다.  


동화는 역시 동화일 뿐이었을까? 나의 아름다운 식물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꽃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속이 타서 스트라미네아를 판매한 판매자님께 연락을 하니, 아래 사진을 보시고는 꽃이 피고 진 후 자연스럽게 시드는 현상이라 답변해 주셨다. 나는 두 번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고 판매자님의 답변만 굳게 믿었다.


아름다운 색을 잃어가는 스트라미네아. 이때 라도 아픈 걸 알았으면 좋았을 걸


거기서 나는 다시 물어봤어야 했다. 꽃이 피지 않고 봉우리만 지었는데도 시드냐고 따져 물었어야 했다. 나의 경험과 의심을 다시 한번 밀고 나갔어야 했다. 


이후 꽃대마저 마르기에, 식물 본체에 영향을 줄까 봐 그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꽃대를 내손으로 잘라냈다. 어찌 됐던 나는 스트라미네아를 살려야 했으니까. 속상한 마음으로 하엽을 정리하며 잎 한 줄이라도 살려보려 끝까지 뜯어보고, 그 속에서 자리 잡고 곧 태어날 새끼 자구까지도 뜯어봤지만 겉은 멀쩡해 보이던 스트라미네아의 속은 이미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꽃은 시들어 보였지만 잎은 괜찮았었는데 속은 저렇게 썩어가고 있었다니. 아팠을까? 식물은 아픔을 못 느낀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죽었다고 생각한 식물들도 꾸준한 관심과 충분한 햇빛, 물만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잎을 보여준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스트라미네아에게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속까지 썩어버려 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절망했다.


짧지만 나에게 잊지 못할 행복과 평안을 주었던 스트라미네아를 가슴 아프게 보냈다. 마치 그 모습이 나와 같아 보였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가도 괜찮아 괜찮아했던 나. 혹은 나처럼 참고 참았을 내 주위 사람들. 괜찮다고 해도 다시 한번 확인할 걸, 괜찮아 보여도 다시 한번 확인할걸.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감정을 남겨준 스트레미네아는 결국 그렇게 내 손을 떠나버렸다.


이후 나는 스스로 나를 속여가며 말하는 '괜찮아'라는 위로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를 살게 하는 내 주위 사람들의 '괜찮아'를 이젠 더 이상 흘려듣지 않는다.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모든 걸 지워버릴 것만 같은 단어 '괜찮아'는 오히려 '괜찮지 않을 때' 더 많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전 02화 식물을 선물한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