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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해도 다시 확인할걸

Revised on Oct 24, 2021

by choy



아름다웠고 향기로웠던 나의 틸란드시아 스트라미네아(Tillandsia Straminea)



식물을 키우다 보면 화분이 처음엔 하나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간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희귀 식물 같은 구하기 어렵고 값비싼 식물에 눈이 간다. 나 또한 한창 희귀 식물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틸란드시아 종류 중 하나인 스트라미네아(Tillandsia Straminea)는 나의 희귀 식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식물이었고, 당시에는 내가 가진 식물 중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했으며, 가장 쓸쓸하게 보낸 식물 중 하나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가던 식물 판매 사이트에서 틸란드시아 스트라미네아를 판매할 예정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당연히 한정 수량에, 판매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 식물계의 티켓팅 같은 순간이었다. 판매 당일에는 판매 창 오픈 시간까지 알람을 맞춰놓고 손을 덜덜 떨며 겨우 결제에 성공하여 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나의 첫 스트라미네아를 만날 수 있었다.


소중하게 포장되어 도착한 스트라미네아는 내 방에서 식물이 가장 자라기 좋은 상석(바람이 잘 통하고 해가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하였고, 매일 눈뜨자마자 보이는 나의 스트라미네아는 말 그대로 행복이자 위안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분홍색의 스트라미네아 꽃들은 세상 그 어떤 향기보다 아름다운 꽃향기를 선물해 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의 작은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퍼지는 스트라미네아 향기는 향기롭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머리맡에 두었던 스트라미네아 꽃향기는 여름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밤바람을 타고 들어와 지독한 불면증을 겪는 나에게 마치 부드러운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함께해 준 식물이었고, 아침이면 도시 한복판에서 꽃향기로 잠을 깨워주는 동화 같은 식물이었다.


동화는 역시 동화일 뿐이었을까? 나의 아름다운 식물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꽃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속이 타서 스트라미네아를 판매한 판매자님께 연락을 하니, 아래 사진을 보시고는 꽃이 피고 진 후 자연스럽게 시드는 현상이라 답변해 주셨다. 나는 두 번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고 판매자님의 답변만 굳게 믿었다.


아름다운 색을 잃어가는 스트라미네아. 이때 라도 아픈 걸 알았으면 좋았을 걸


거기서 나는 다시 물어봤어야 했다. 꽃이 피지 않고 봉우리만 지었는데도 시드냐고 따져 물었어야 했다. 나의 경험과 의심을 다시 한번 밀고 나갔어야 했다.


이후 꽃대마저 마르기에, 식물 본체에 영향을 줄까 봐 그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꽃대를 내손으로 잘라냈다. 어찌 됐던 나는 스트라미네아를 살려야 했으니까. 속상한 마음으로 하엽을 정리하며 잎 한 줄이라도 살려보려 끝까지 뜯어보고, 그 속에서 자리 잡고 곧 태어날 새끼 자구까지도 뜯어봤지만 겉은 멀쩡해 보이던 스트라미네아의 속은 이미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꽃은 시들어 보였지만 잎은 괜찮았었는데 속은 저렇게 썩어가고 있었다니. 아팠을까? 식물은 아픔을 못 느낀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죽었다고 생각한 식물들도 꾸준한 관심과 충분한 햇빛, 물만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잎을 보여준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스트라미네아에게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속까지 썩어버려 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절망했다.


짧지만 나에게 잊지 못할 행복과 평안을 주었던 스트라미네아를 가슴 아프게 보냈다. 마치 그 모습이 나와 같아 보였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가도 괜찮아 괜찮아했던 나. 혹은 나처럼 참고 참았을 내 주위 사람들. 괜찮다고 해도 다시 한번 확인할 걸, 괜찮아 보여도 다시 한번 확인할걸.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감정을 남겨준 스트레미네아는 결국 그렇게 내 손을 떠나버렸다.


이후 나는 스스로 나를 속여가며 말하는 '괜찮아'라는 위로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를 살게 하는 내 주위 사람들의 '괜찮아'를 이젠 더 이상 흘려듣지 않는다.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모든 걸 지워버릴 것만 같은 단어 '괜찮아'는 오히려 '괜찮지 않을 때' 더 많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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