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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yton Feb 07. 2024

뛰어야 사는 러너의 숙명

러너는 날씨를 가리지 않는다. 추워도 뛴다. 더워도 뛴다. 비가 와도 뛴다. 진정한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듯, 러너는 날씨를 탓하지 않는다. 요즘은 비닐하우스 트랙도 곳곳에 생기고 있다고 하니 악천후는 더 이상 러너에게 핑곗거리가 되지 않는다.


날씨마저 도와준다면 뛰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에도 가끔 따뜻한 날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러너에게는 놓칠 수 없는 날이다. 그런 날 뛰지 않고 지나친다면 묘한 죄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이다.



러너는 거리를 재는 방법이 남다르다. 대중교통으로 몇 분, 도보로 몇 분이 아니다. 러너의 기준은 뛰어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와 소요시간이다. 가끔 자신의 속도를 과신하여 시간 약속에 늦을 때도 있다. 러너들의 모임에 늦었다면 면죄부 역시 뛰어왔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약속은 못 지켰어도 정상참작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러너들은 뛰어다니는 종합병동이다. 저마다의 취약부위가 있고 저마다의 통증에 시달린다. 가끔 러너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각자의 아픈 부위를 신나게 털어놓는다. 각 증상에 맞는 치료법과 병원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증상도 다양하고 아픈 부위도 참 다양하다. 아프다고 해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또 아니다. 아픈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음에도 분위기는 사뭇 밝다.


의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환자가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러너도 물론 포함이다. 뛰지 말라고 해도 또 뛸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러고서는 또 아파서 찾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익'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환자가 계속 병원에 찾아오는 게 의사가 그리 싫어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아프면 안 뛸 만도 한데 왜 러너들은 뛰는 걸까. 뛰어야 사는 러너의 숙명 때문이다. 아프다고 러닝을 거르게 되면 안아플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음이 답답할뿐더러 몸도 아프다. 뛰어도 몸이 아프고 안 뛰어도 몸이 아프다. 그렇다면 안 뛰고 몸이 아플 바에 차라리 뛰고 나서 아픈 걸 택하는 것이다. 그래야 아프더라도 후회가 덜하다.



길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러너에게 최고의 계절인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 러닝의 묘미는 역시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함께하는 벚꽃런이다. 각종 마라톤 대회들도 본격적으로 개최되어 겨우내 움츠렸던 러너들의 몸과 마음을 설레게 한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럼 올해도 한번 신나게 뛰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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