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이런 거였어?
우리 집은 무교 집안이기 때문에 종교적 의미가 담긴 날은 내게 그냥 쉬는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가서 경험한 첫 크리스마스는 평생 잊지 못할 인상을 내게 남겨주었다.
9월 ~ 10월이었던 것 같다. 12월 25일인 크리스마스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Linda는 이것저것 적어나가며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를 계획하는 모습을 보며 벌써부터 계획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에 Linda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준비할게 많아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라고 했다. 2~3개월 뒤 연휴를 벌써 준비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에 무엇을 하는지 하나도 몰랐던 나로서는 그때 당시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10월부터는 점점 동네에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놀라웠던 점은, 다운타운뿐만 아니라 가정 주택도 집 외부와 내부를 꾸미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크리스마스트리를 두고 트리를 장식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집 전체를 전구로 뒤덮고 장식을 하는가 하면, 집 앞마당에 산타 등 굉장히 큰 장식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장식을 시작하더니 밤이 되면 수많은 장식에 영화에 나오는 엘프의 나라가 되는 것 같았다.
장식의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위와 같이 어마어마하게 본인의 집을 꾸미는 집들은 몇 군데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마을마다 가장 잘 집을 꾸민 사람에게 주는 상 (Award 개념) 이 있다고 한다.
내가 홈스테이를 하던 집은 위 사진만큼은 아니었으나 아래 사진과 비슷하게 기본적인 장식만 했다. 이 역시도 정말 전기세가 걱정되게 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집 거실에도 거실 천장 크기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왔다.
흔히 내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영화 '나 혼자 산다'에서의 모습이 전부였다. 거실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선물이 쌓여 있고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아이들이 거실로 뛰어나가 선물을 뜯는 모습은 영화이니까 당연히 실제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와 정말 똑같았다. 화려함의 정도 차이는 있었으나, 거실의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점점 선물 박스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물들은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기 전까지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친척 등 온 가족이 내가 지내던 집으로 모였고 모두 함께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은 정말 하루종일 너무나도 바빴다. 오랜만에 모두 모여서 그런지 다들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나는 점점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겉으로 계속 웃으면서도 점점 그 사이에 있던 유일한 검은 머리라는 소외감이 들기 시작했다. (오랜 미국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어렸고, 익숙하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소외되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면, 호스트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같이 준비를 하거나 호스트 아저씨가 나를 챙기면서 이것저것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시간이 되어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이후,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았다. 드디어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쌓여 있던 선물을 개봉하는 순간이었다. 선물 박스에는 선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호스트 아주머니의 첫째 아들이 마치 사회자인 것처럼 선물을 한 개씩 집어 들어 적혀있는 이름을 호명하였다. 그 많은 선물을 한 개씩 열어보면서 어떤 선물인지 다 함께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챈 순간, '와 오늘 밤새서 계속 선물 개봉식 하고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그 사람은 선물을 뜯어 개봉하고 선물을 확인한 후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선물이 한 개씩 개봉될 때마다 그 선물에 대한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또한, 한 가지 더 깜짝 놀랐던 것은 집의 막내아들 이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의 규모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새로운 bmx 자전거 (묘기용 자전거)와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이 두 가지 선물만 해도 100만 원 이상은 될 텐데 이 외에도 온 가족들에게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내 이름도 몇 번 불렸는데 첫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는 옷, 신발, 예정된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필요한 것들 등을 받았던 것 같다. 실제 가족도 아닌 내가 가족끼리 모이는 가장 중요한 연휴에 함께하며 내 선물도 챙겨주는 호스트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심지어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얘기만 호스트 아주머니를 통해 들은 친척 분들 역시 내 선물을 챙겨 가져왔었는데, 그때에는 표현이 어색해서 Thank you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론 정말 너무나도 감동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미국 가정집에 어떤 의미인지 함께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왜 3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느라 계획을 세우고 바쁜지 겪어보고 나니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종교적 의미가 아니었다. 종교를 떠나서 (실제로 내가 지내던 호스트가정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명절이었다. 특히 국토가 매우 넓어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을 보기 힘든 미국의 구조로 인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과 같은 연휴는 그들에겐 반드시 가족끼리 보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연휴였다. 미국에서 바로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이 있는 화목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한 것은 정말 너무나도 천운이자 다행이었다.
Ch.1 은 미국에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내용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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