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이 글짓기대회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1학년 때부터인가 교내외 글짓기대회를 웬만하면 하나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출전해 왔던 나로서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음에 틀림없었다. 거기에는 나보다 세 살 위의 범띠 큰누나도 한몫을 했다. 큰누나가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글짓기도 곧잘 가끔 교내 글짓기대회에서 상도 받고 하는 통에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름 꽤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심지어 그 세 살 어린 남동생 역시 누나 닮아서 1학년 때부터 공부 잘 한다는 소리가 들리니 선생님들 귀에 안 들어갈 리가 있나. 그 남동생은 게다가 다른 남자애들과 달리 책 읽는 걸 좋아해서 1주일에 한번 있는 특활(특별활동)시간에 여자애들만 지원하는 문예반에 들어갔다더라 금새 소문이 커진 것이다. 결국 학교의 명예를 대표하기 위해 교장 선생님의 특명을 받들어 공식적으로 결성된 "특별 문예반" 모집에 특채합격하는 영광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특별 문예반" 이란 것이 무엇인고 하니... 교내 각종 백일장 (충무공 탄신기념 백일장, 광복절 기념 백일장, 625 사변 백일장, 한글날 기념 백일장, 어버이날 기념 백일장... 뭔 백일장이 그리 많았는지 거의 매월 일년내내 크고 작은 교내외 백일장 홍수였던 거 같다.)에서 단 한번이라도 상위 입상을 해 본 학생들을 전부 모아다가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교내 백일장에서 1차적으로 검증된 글 쫌 쓴다는 학생들 중에서 희망자를 받은 뒤 담당 선생님들 몇 분이서 쓸만한 재목들을 선별해 내셨다. 그리고는 1주일에 최소 두세번 방과 후에 따로 한 반에 모아다가 (학년 구분 없이) 교외용 즉 대외 글짓기대회용 학교 대표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번 파리 하계올림픽대회를 위해 국대들이 합숙훈련하는 태릉선수촌 같은 시스템이었다. 나는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 이미 교내 백일장에서 저학년부 장원인가 차석인가를 한번 했었기에 이미 최소한의 자격은 갖춰진 데다가, 앞서 얘기한 큰누나 혈연관계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나 보다. 덜컥 특별 문예반의 단둘셋 밖에 안 되는 남학생 정예멤버가 되고 말았다. 아 생각보다 부담되네...
참고로, 돈 드는 것에는 절대 투자 안 하시는 짠돌이 나의 어머니도 당시 그나마 돈이 거의 안 드는 나의 특기를 반대하실 리 만무했다. 막내 아들에게는 오직 "원고지 한 묶음" 만 사 주면 그걸로 물질적인 투자는 그만이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