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 기념일

울트라 현실주의자도 가끔은 달콤하다

by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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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과 함께 광교 불꽃놀이 축제를 갔다.


검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이 정말 근사했다.

캔버스 위에 온갖 색들이 피어올라 꽃봉우리가 터지는것 같은 장관에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다.


“와~ 너무 멋지다. 정말 꽃같어. 이래서 불꽃축제 보러 오는구나. 예술이야 정말!”

감탄을 연발하던 그때, 옆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세금이 날아가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감성파괴자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대문자 T, 현실주의자 남편의 돌직구 발언은

오늘도 나의 낭만을 산산이 부쉈다.


이게 바로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차이일까?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늘 부탁한다.


“제발, 거짓말도 좀 해줘.”


다른 사람들은 의아해하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맞춰주는 작은 거짓말은
현실주의자 남편이 ‘꼰대’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갱년기 증세로 며칠째 잠을 설친 탓인지

얼굴이 푸석하고 주름이 자글거렸다.


“나도 이제 늙었나 봐… 완전 할머니 다 됐네.”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던 내게 감성파괴자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이뻐요, 우리 마눌님. 여전히 이뻐요.”


헉. 이게 웬일인가!

‘나이가 반백인데 안 늙으면 이상하지’라며

현실 직구를 날릴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야들야들한 거짓말로 변화구를 던지다니.


하얀 거짓말을 해달라던 나의 학습 효과가 드디어 빛을 발한 걸까?


안되겠다.

오늘 저녁은 남편의 ‘하얀 거짓말 기념일’ 이다.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고,
꼰대 아저씨에서 말랑이 아저씨로 데뷔한

그의 변신을 축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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