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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Oct 25. 2022

무조 이야기 3. 치환의 동물

시 열일곱.

무조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마침 지도로는 우물의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문득

세상을 납작하게 누른 지도만 믿고 눈이 감긴 채로 월요일을 걷던 누군가가

우물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여기에 미소를 떨어뜨려 잃어버린 걸까 생각했다.


지도에 비하면 거미는 감사한 발견이다.

거미는 지도와는 반대되는 일을 업으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거미가 뒤통수를 기어 다니니 간지러워 몸이 뒤틀렸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으

어느 순간 거미의 발재간을 마사지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무조는 그 순간에 집중했다.

그러면 좀 참을 만했다.


날개 없이도 허공을 개의치 않는 거미는 가끔 무조의 뒤통수를 점프로 벗어났다가 돌아왔다.

무조는 긴장과 희망으로 몸을 굳혔다.

우물 벽 어딘가에 닿았다 온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거미가 점프를 할 때마다 무조는 굳어갔다.


워낙 깊은 우물 바닥에서 한참을 굶은 거미가

가끔 자신의 뒤통수 두피를 뜯어먹는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무조는 갑자기 이러다 자신의 뇌가 삐져나와 흘러내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어찌 되었든 거미는 무조를 맛있게 먹으며 자신의 다리가 닿은 무조 뒤통수와 우물 벽을 3차원으로 연결한다.


2차원과 3차원을 연결하는 문.

바닥에 붙어 납작해진 무조는 그 문으로 걸어 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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