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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느까 Oct 06. 2024

10화. 1008호 띵똥 할아버지

좌충우돌 세 아이 육아기

내가 어릴 때부터 아빠는 심심하면 내 머리맡에 책을 던져 놓았습니다.


책이 싫었지만 나는 매일 폰 게임을 하기 위해서라도 아빠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데, 어떤 책은 첫 줄도 넘기기 전에 잠이 왔으나 또 어떤 책은 첫 장부터 재미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오늘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책 중에 《901호 띵똥 아저씨》가 생각났는데요.


왜냐하면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 사시는 '띵똥 할아버지'가 직접 우리 집에 찾아온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901호 띵똥 아저씨》를 보면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아파트 층간소음 관련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거기에는 어른들의 술수 또는 층간소음 대처력에 관한 일화가 많이 나온답니다.


주인공이 포함된 아이들의 아빠는 901호 아저씨가 소리가 시끄럽다며 찾아오자 '무슨 말이냐?' 지금 아이들 다 나가고 없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였고, 그 말을 숨어서 듣던 1001호 아이들은 공포에 떤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집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우리 집은 11층이고, 제 밑에 남자 여자 동생이 각 한 명씩 있답니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셋인 다자녀 가정인 것이지요.


우리 아빠는 늘 아파트 '위층'은 원죄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아무리 조심해 봐야 위층은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만족을 줄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빠는 위층 아줌마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할아버지를 만나면 죄인처럼 허리와 머리를 꺾어대기 바빴습니다.


언젠가 막냇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10층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났는데요.


여느 날처럼 아빠가 또 굽신거리며 "아이들이 쿵쿵거려서 많이 힘드시죠"라고 하자 의외로 할아버지는 "뭘요, 애들이 뛰기 예사지요."라고 호호 할아버지처럼 웃으셨지만, 할머니는 엘리베이터가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숨기려고 해야 숨길 수도 없던 만삭의 엄마 배를 처음 보셨기 때문이었지요.


그 동생이 태어나고 자라 벌써 초등학교 2학년 생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은 진짜 유령 발자국처럼 미끄러져 다니는 아빠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걸을 때 쿵쿵하고 약간의 소리라도 내는데요.


남동생한테 아무리 발뒤꿈치를 들고 다니라고 해 봐야 '소 귀에 경 읽기'임을 아는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처럼《901호 띵똥 아저씨》책을 막내에게 읽어주며 "우리 집 아래에 1008호 띵똥 할아버지가 사시는데, 계속 그렇게 뛰어다니면 띵똥 할아버지 올라오신다"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그래 봐야 우리가 누굽니까.


우리는 새 나라의 어린이, 바로 이 땅의 희망 아닙니까.


게다가 오늘은 어린이날 이브입니다.


쿵쿵 쿵쿵!


그때, 누군가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는 벌써 혼비백산했는지 공포에 떨며 아빠를 찾습니다.


아빠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현관을 열었는데…,


맙소사! 1008호 띵똥 할아버지가 올라오셨습니다.


아빠는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하며 "애, 애들이…, 마, 많이 시끄럽게…, 하, 하지요"라고 말까지 버벅거렸고, 1008호 할아버지는 우리 집 월패드가 고장인지 안 되더라며 1층 공동현관문까지 내려가 보기도 했다며 살짝 책망하는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의 방문 목적은 바로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전달이었습니다.


막내둥이가 귀여운데 내일이 어린이날 아니냐시며….


아빠는 괜스레 울컥하는 듯 보였고, '띵똥' 할아버지가 내려가시자 말자 우리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어쩔 줄 몰라 방방 뛰었습니다.


아빠는 우리나라에 이런 아래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어디 방송국에 전화라도 해 볼까 했습니다.


그도 그럴 듯이 나도 진짜 놀랐습니다.


세상에 어떤 아래층 사람이 어린이날이라고 위층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다 사다 줄까요.


오늘 먹은 아이스크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아빠가 월패드를 꺼놓는 바람에 비록 '띵똥' 소리는 못 들었지만 어쨌든 띵동 할아버지,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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