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7]
일요일 아침 집을 청소하고 밥을 해 먹고 나니 어느덧 12시였다. 샤워를 하고 나서 고민에 빠진다.
“오늘은 뭘 할까, 뭘 하면 또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블로그에 상해 여행을 검색하던 중 외각에 있는 주가각이라는 여행지를 발견했다.(주가각: 상해 대표 수향 마을) 지하철로 왕복 3시간 거리였지만 3시간이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새로운 곳에 가서 경험할 생각에 오히려 설레기도 했다. 여행의 중독 돼버린 것일까. 하늘과의 교감이 오늘은 통하지 않은 건지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깐만, 내가 비 내릴 때 여행한 적이 있었나?”
보통 비가 오면 여행을 피하기 마련인데 문득 비가 올 때 하는 여행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곧바로 어제 구매한 아담한 여행 가방을 메고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10호선 롱바이신춘에서 롱시역으로 10호선 롱시역에서 홍차우기차역으로 간 뒤 17호선으로 환승해 주가각역에서 내려 약 20분을 걸어가면 도착한다.
중국인도 없는 10호선 열쇠고리를 보유한 10호선 고인물(?)이자 상해 지하철 박물관을 다녀온 1인으로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주가각역에서 하차한 뒤 택시를 타고 관광지까지 향하지만(택시비 약 10원 정도), 2km 남짓한 짧은 거리이기도 하고 이곳의 로컬 분위기를 맛보고 싶어 동네 탐방을 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동네 구경을 하며 천천히 가다 보니 어느새 주가각 여행센터가 나왔는데 상해 대표적인 관광지 중에 한 곳인지 규모가 꽤 컸다.
동네에서는 사람 구경이 어려웠는데 여기로 다 몰렸나 보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꽤나 많았다. 경험해 봤던 수향 마을 중에서는 제일 관광지화가 된 수향 마을이었다. 그만큼 "나 관광지예요"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나 그 덕분에 관광지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과 상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사람이 없으면서도 강가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9천 원이다. 솔직히 생각보다 비싸 속으로는 놀랐지만 최대한 표정을 감추며 엄근진 하게 주문했다.
길 가다가 지나친 9.9원의 아메리카노가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이곳으로 들어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사장님의 차림새가 누가 봐도 차와 커피 분야의 전문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카페나 작업장에서나 볼 수 있는 멜빵바지에 까맣고 진한 뿔테 안경과, 적당히 기른 수염이 특징이었다. 영업에 꾸밈이 중요하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냥 신뢰가 갔다. 그리고 한 입 마셔본 아메리카노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해 줬다.
이게 뭘까? 수없이 많은 아메리카노를 마셔봤는데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아메리카노에서 은은한 라테의 향이나 처음에는 잘못 나온 줄 알았다. 맛은 라테가 아니라 아메리카노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확실한 건 충분히 9천 원의 값어치를 하는 아메리카노다.
다음에 지인들에게 추천해 주려고 했는데 카페 사진을 못 찍어 너무 아쉬웠다. 그나저나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상해 주가각은 엄청 크다. 아니 넓다. 걷고 걸어도 끝이 안 보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골목이 나온다. 골목에 골목을 들어가며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내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돌고 돌다 보면 카페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 와서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마시면서 분위기에 취할 수 있다.
이렇게 알차고 보람찬 상해 주가각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밥은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처음에 갔었던 동네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볶음밥과 소고기, 양고기 꼬치! 44위안, 한국돈으로 8천 원 돈이다. 역시 외각으로 나가니 물가가 확실히 저렴했다. 본격 상해 여행은 이렇게 주가각으로 마무리가 됐다. 앞으로도 주말마다 최대한 계속 나가 보려고 한다. 혼자 다니면서 여행을 하는 게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훨씬 좋지만, 이것 또한 경험 부족이었나 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처음부터 일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그 일에 익숙해지고 나면 재미를 붙이기도 하고 그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혼자 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혼자 카페에 가서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 보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며 즐거울 때도 있고 무안할 때도 있다. 여행이라는 게 꼭 작정하고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배웠다. 생각보다 삶에 가까이 있었다. 실제 발검음을 옮기는 여행이든 작가들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려가는 독서 여행이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여행인 것 같다. 그 탐험을 통해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이 지겹기도 하다. 그래도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숙성시켜 주는 발효시켜 주는 촉매제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 좋다.
무튼 이렇게 국경절 여행은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