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몸 담았던 N(게임사)에는 경영지원본부가 있는 층 사무실 앞에 테라스가 있었다. 일을 하다 잠시 밖에 나가 바람도 쐬고 커피도 한잔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저녁에 편의점 맥주를 사와 한잔하기도 했으니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충분했던 장소로 기억된다.
테라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들은 팀장들과 본부장이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테라스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제 본 TV 드라마 이야기, 뉴스, 영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아침을 즐겁게 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심지어 대박 웃긴 이야기로 박장대소를 하고 나서 한참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즐겁게 일했던 좋은 기억이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이 자연스러운 모임을 모닝미팅이라고 했다. 사실 메인은 재미있는 잡담과 차 한 잔이었고 업무 이야기는 정말 잠시였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한 30초에서 1분 정도 이야기할까? 솔직히 일 이야기하려고 테라스에 나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사람들하고 커피 한잔하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때 의사결정자인 본부장과 제일 케미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주 이야기하다 보니 어쩌면 정식 보고는 형식이었고 모닝미팅 때 중요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보고되고 그 자리에서 큰 틀의 의사결정이 되었다. 잘 되고 있는 문제, 어려운 문제, 의사 결정해줘야 하는 것들.. 등 많은 이슈들을 짧게 요약해서 공유하고 의견들을 서로 나누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상사가 알고 있고 결과를 함께 도출하고 의견을 함께 한다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보고서나 메일로 의사결정을 받을 때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핵심 내용만 있어도 이미 이해도가 높아진 상사의 의사결정 시간은 빨라지고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상사와 소통하는 방법 중 엘리베이터 스피치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짧고 굵은 업무 소통이라는 의미에서 모닝미팅과 맥락을 같이한다. 엘리베이터 스피치는 엘리베이터를 상사와 함께 탄 10초, 20초 안에 내가 하고 있는 일, 결론, 이슈 등을 의사결정자와 짧고 강력하게 공유하고 나를 어필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직장 상사와 많은 순간을 함께 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잘 하려면 어떻게하든 평소 내 일에 대해 상사와 자주 이야기 해야한다. 상사와 자주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엘리베이터 이동 순간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어쩌면 상사가 궁금한 사항을 먼저 물어볼 수도 있다. 그나마 명쾌하게 대답을 못하면 그 시간은 오히려 내 이미지를 갉아먹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와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아 질 것이다.
포인트는 평소 일 할 때 상사를 궁금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궁금해진다는 것은 이미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어보기 전에 먼저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새로운 이슈와 문제를 말하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좋다. 반드시 일을 완벽하게 만들어 보고서 안에 정성스럽게 담아 상사에게 가져갈 필요는 없다. 시쳇말로 완료보고 전에 미리미리 기름을 치라는 것이다. 뻑뻑해지지 않게 말이다. 상사의 이해 수준을 높여 수용도를 높여주라는 것이다. 짧은 소통(small speech)을 자주 할 수 있어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결론을 공유하고 나를 임팩트 있게 어필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 즉,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 이것이 엘리베이터 스피치의 본질이다.
내가 상사와 평소에 근접해 있지 않다면 엘리베이터 스피치는 생뚱맞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말을 잘하고 않고의 문제, 스킬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내가 주도적인가에 대한 문제다
결국 엘리베이터 스피치와 같은 small speech의 핵심은 '상사가 내 일을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 것
즉, 일에대한 주도성을 갖는것이다
태준열 (taejy@achvmanaging.com)
리더십 코치/컨설턴트
25년 동안 음반회사, IT 대기업, 반도체 중견기업, 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인사, 조직개발 업무를 경험하였으며 15년 동안 인사팀장/조직 개발실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리더십 개발기관 Achieve. Lab의 대표이며 팀장 리더십, 성과관리 등 강의와 팀장 코칭, 리더십 개발 컨설팅, 조직개발 활동 등을 활발히 이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날 대표님이 팀장 한번 맡아보라고 말했다><Synergy Trigger><존버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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