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 11] 20200215
어찌 됐든 저찌 됐든 아주 약간 몸이 회복된 상태로 (여전히 몸은 아팠지만) 1월 13일 토요일이 되었고, 9시까지 입실을 완료하기 위해 아침 7시부터 혜화역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시험 고사장이 “퇴계인문관”이라는 곳이었는데 그 건물은 학교 언덕길 맨 꼭대기에 있었다. 고사장으로 올라가면서 깨달았다. 7년 전인 2011년 고3 때 수능을 마친 일요일 오후에 논술을 보러 갔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당시 논술을 광탈하였기 때문에 께름칙한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미신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하며 침착하게 시험을 응시했다.
얼마 전 풀어봤던 기출 문제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딱히 못 푼 문제도 없이 시간도 적당히 남았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과 함께 처음으로 봐본 편입 영어 시험이 끝났다. 마치자마자 서강대 시험을 보기 위해 혜화역에서 신촌역으로 이동했다. 사실 그때까지, 신촌역은 연대 가볼 때만 가봐서 1, 2번 출구만 이용했었다. 서강대는 6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고 ‘앱’이 가르쳐주시길래 시키는 대로 생소한 길을 쭉 따라 올라갔다. 번화가 같다고 느껴진 1, 2번 출구 쪽과는 다르게 6번 출구로 올라가는 길은 지방 도시의 번화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약간 실망했다 ㅋㅋ) 시간이 남아서 당시 학교 정문 앞에 있던 앤젤리너스커피에 들어가서 단어를 벼락치기로 외우고 입실 시간에 맞춰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강대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서강대학교 수시를 썼었고, 2015년에 전역하고 다시 입시를 준비할 때도 썼었고 심지어 2017년 늦바람으로 입시를 준비할 때도 서강대를 썼었는데 원서 3개 모두 수능 최저등급을 못 맞춰서 아예 학교에 응시하러 가질 않았었다. 편입 원서까지 포함하면 총 4번의 지원을 한 거고 대략 30만 원 넘게 서강대학교에 기부(?)한 꼴이다. 이번에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강대 편입문제의 ‘괴랄함’을 생각하니 이번에도 딱히 달라질 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입 원서를 접수 기간 시작하자마자 냈더니 한양대학교를 빼곤 수험번호가 다 1번이었다. 그래서 서강대 역시 K관의 어떤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보게 됐다. 60분 동안 40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편입 때 지원한 5개 대학 중 서강대학교 시험 문제를 제일 빨리 풀 수 있었다. 이유인즉슨,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더 붙들고 있다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건 아는 대로 풀고 어차피 못 풀 문제는 그냥 바로 찍었더니 시간이 15분가량 남았다.
해탈한 마음으로 학교 정문을 나오면서 시험에 나온, 하지만 내가 싹 다 찍은 단어를 기억나는 대로 구글에 검색해보았다. 당시 문제 중 하나가 ‘slaughterhouse’의 동의어를 고르는 문제가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선택지에 동의어로 나온 4개의 단어 중 아는 단어는 없었다. 그래서 바로 가장 괴랄하게 생긴 1번 ‘abattoir’로 찍었다. 소름 돋게도 ‘abattoir’를 검색하니 정의가 ‘slaughterhouse’라고 나왔다. 그 문제 말고도 기억나는 대로 검색한 찍었던 단어를 더 검색해보니 믿기지는 않지만, 다 맞게 찍은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직전에 풀어본 실전 모의고사의 처참한 결과 때문에 시험 전엔 전혀 예상치 않았던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와 동시에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나름 큰 시험을 두 개나 치르고 나니 이제야 몸이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날 시험 볼 한양대 기출문제를 원래는 풀어보려 했는데 이를 오늘로 미뤘던 과거의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그냥 남은 시간은 쉬는 게 낫겠다는 판단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당시 사진을 찾아보니 저녁에 파스타 해먹을 힘은 있었나 보다 ㅋㅋ)
2018년 1월 14일 주일, 교회서 나의 할 일을 마치고 청년부 예배는 재끼고 오후 시험인 한양대를 향해 출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보아하니 3편이나 더 써야 끝날 듯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