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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Feb 13. 2016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 <1>

나, 있잖아. 간첩이랑 잤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부담스러워서 내가 말을 못하겠잖아. 


언제부터였냐고?      


한 5년 됐나.      


처음엔 몰랐지. 그 순박하게 생긴 놈이 조선노동당 서열 32위 간첩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만난 지 1년 되는 날이었나. 


아, 아니다. 처음 같이 잔 지 1년째였나. 갑자기 헷갈리네.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찌됐건 그날, 놈이 무슨 수첩을 꺼내는 거야.     


노동당 당원증이라는데,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지. 


사실, 난 놈이 그날 프러포즈 하려는 줄 알았어. 수첩 안에 반지를 숨겼나 했지. 열어보니 반지는 무슨. 아무 것도 없더라고.      


‘나, 피곤해. 장난치지 마.’     


소용없더라고. 놈은 계속 들이대는 거야. 그 누런 수첩을.      


내가 북한 사람을 만나 봤을 리 없잖아. 탈북자 말고 말이지. 그 수첩이 진짜 당원증인지 알 게 뭐야.       


‘네가 간첩이라는 증거 있어? 그 수첩 말고, 진짜 증거.’     


놈이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더군. 아, 미안. 그때까지 우린 둘 다 옷을 벗고 있었지. 왜냐고? 그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책상으로 가더니, 놈이 맨 날 품고 다니는 책, 성경을 갖고 오는 거야.     


성경을 딱 펼치니까, 간첩 맞더라고. 간첩 맞아. 한숨이 푹 나왔지. 성경이 어떻게 돼 있기에, 궁금하지.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할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잖아. 다른 걸 더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아.      


내가 간첩이랑 잤다는데, 대체 나는 어떤 여자일까. 싱싱한 20대일까, 아니면 중년 아줌마일까. 다리는 늘씬할까, 얼굴은 어떨까. 가슴은 클까. 남자들은 다 그렇지 뭐. 그런 게 제일 궁금하잖아. 그래서 아니다 싶으면, 이 글을 그만 읽겠지.      


다리는 짜리몽땅하고, 가슴은 납작하고, 얼굴은 쭈글쭈글한 아줌마가 주인공이라면, 노동당 서열 32위, 아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하고 잤다고 해도 관심 없을 거잖아. 그치, 맞잖아.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거야. 만화를 그리거나, 영화로 만들면, 내가 너무 일찍 드러나거든. 난 그게 싫어. 천천히, 감질나게, 그렇게 살살 끌어가고 싶어. 사실, 내가 간첩과 사귄 것도 그런 식이었지. 밀었다 당겼다, 죄었다, 풀었다. 그렇게 낚은 놈이, 알고 보니 간첩이어서 좀 황당했지만 말이야.      


아직도 궁금하겠지. 그 간첩이라는 놈, 돈은 많아? 대학은 어디 나왔어? 군대는 제대로 다녀왔나? 키는 커? 멀쩡한 놈이면, 왜 간첩질을 할까.     


제일 궁금한 거. 그런데 당신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간첩하고 잔 여자가 무사할 것 같아. 그런 이야기를 막 떠벌여도 되는 거야?     


ㅎㅎ, 그래, 꼭 이렇게 써보고 싶었어. 채팅할 때처럼 말이야. ㅎㅎ 아니면 ㅋ. 이렇게 말이지. 


난 괜찮아. 실은 난 금수저거든. 대한민국 대표 금수저. 우리 아빠는 엄청나게 힘이 센 분이지. 내가 간첩하고 잤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될 일은 없어. 


대신 그 간첩 놈은 좀 고생을 하겠지.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말이야. 대한민국 대표 금수저하고 잔 놈이라면, 그 정도 고생 할 각오는 해야 하는 거잖아. 명색이 간첩이면 더욱 그렇지, 그러니까 목숨 걸고 넘어온 거잖아.

      

간첩이랑 언제 처음 만났느냐고? 간첩인 줄 알면서도, 왜 계속 만나느냐고? 워워 진정해.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이야기하자고. 




당연히 소설입니다.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말이지요. 일단 이 글을 쓰는 저는 여자가 아닌 남자고요. 직업은 기자입니다. 기사를 쓰면, '기자야 소설 쓰냐'라는 댓글이 달리죠. '그래, 소설 쓴다.' 이렇게 마음 먹고, 습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간첩 시리즈 역시 말 그대로 습작이고요. 언제 완성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카카오 브런치를 시작하고서, 벌여 놓은 일이 많습니다. '알을 품은 섬'이라는 소설도 연재 중인데요. 그 역시 마무리하려면 한참 남았죠. 하나를 끝내고, 다른 걸 시작해야 하는데, 제가 버릇이 영 나쁘게 들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저것 하곤 하죠.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여섯 번째 이야기 : "그 활로 나를 쏘거라"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여덟 번째 이야기 : 왕이 제 자식 죽인 자를 접대한 까닭

아홉 번째 이야기 : "죽은 왕은 알에서 태어났소"

열 번째 이야기 : "우리 자식들 대신 그들을 묻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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