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늦깎이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이런저런 습작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지망생’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그래도 습작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브런치에 두 개의 소설을 연재 중입니다. 둘 다 습작이라서, 널리 알릴만한 건 아닙니다. 각각 다른 문체로 쓰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되려면, 글쓰기 근육을 골고루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기사만 썼던 탓에 글쓰기 근육이 한쪽만 발달했습니다.
이곳에 연재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가 ‘알을 품은 섬’입니다. 가야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일종의 판타지 소설입니다.
왜 하필 가야 시대? 이런 의문이 생길 법 합니다.
역사에서 소재를 따온 소설, 영화, 드라마가 참 많습니다. 한때는 고구려 사극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 신라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많았습니다. 조선 역사야 뭐 말할 것도 없죠. 지금도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입니다.
그런데 가야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콘텐츠는 드물죠. 가야 시대가 낯설어서?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릴 때 국어 시간에 '구지가'를 배운 기억은 대부분 갖고 있습니다. 수로왕과 결혼한 허황옥 이야기도 대개 익숙합니다.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국 통일을 주도한 김유신이 금관가야 왕의 후손이라는 것도 기억할 겁니다. 금관가야 마지막 왕이 구해왕인데, 구해왕의 아들이 김무력, 그의 아들이 김서현입니다. 김서현의 아들이 김유신이죠. 그러니까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의 증손자입니다.
신라가 주도한 삼국 통일은 가야계 유민으로 지배 계급 내 비주류였던 김유신과 역시 비주류였던 김춘추의 동맹이 이뤄냈죠. 선덕여왕 말기, 신라 지배층의 주류였던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죠. 선덕여왕이 불교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탓에 벌어진 반란이기도 합니다. 선덕여왕이 통치의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던 거죠.
반란을 진압한 게 김유신입니다. 비주류였던 김유신이 군권을 장악하고 주류에 편입된 계기죠. 비담과 염종의 난이 없었다면, 김유신은 고만고만한 장수 중 하나로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다들 알다시피, 그 이후 김유신과 김춘추는 혼인을 통한 동맹을 맺고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죠. 김유신은 죽어서 왕에 가까운 예우를 받습니다. 김유신의 묘는 왕릉과 거의 동격이죠.
하지만 딱 여기까지입니다. 김유신의 자손들은 꾸준히 지위가 하락합니다. 가야계에 대한 신라 주류의 견제는 그토록 끈질겼던 거죠. 가야계 장수는 일종의 전문경영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오너 일족은 못 됐던 겁니다. 나중에는 김유신의 자손들이 김 씨 성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죠.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요. 어찌 됐건, 가야 역사의 흔적은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가야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 드라마, 영화는 왜 이토록 드물까. 궁금했어요.
우리 사회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강자 숭배'가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나라죠. 고구려는 영토가 넓었고, 전쟁을 잘했던 나라죠. 그런데 가야는 심지어 고대 국가를 만드는데도 실패했습니다. 어릴 때 국사 시간에도 그렇게 배웠죠. 가야는 고대 국가 만드는데 실패해서, 먼저 국가를 만든 신라에 병합됐다고요. 그래서 인기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던 거죠.
국가라는 게 뭘까. 권력이라는 게 뭘까. 권력을 한곳에 집중시킨다는 게, 그래서 강하고 일사분란한 체계를 만든다는 게 뭘까. 이런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그러다 가야 시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고대 국가를 만들기 직전까지 갔던 사회, 동시에 철기 제작 기술이 뛰어났고, 무역이 활발했던 집단. 그들은 왜 국가를 못 만들었을까, 혹은 안 만들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소설 '알을 품은 섬' 네 번째 이야기에서 잠깐 소개했던 책인데요.
<가야인의 삶과 문화>(권주현 지음, 혜안 펴냄)이라는 책의 머리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다시 옮깁니다.
"가야는 작은 나라였다. 넓은 영토, 강력한 지배, 화려한 문화, 탁월한 영도력 등 우리가 은연중 역사적 미덕으로 삼고 있는 요소들과는 거리가 멀다.
(…) 가야는 그 작았던 실체만큼이나 만만한 존재이기도 해서,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감염시키기도 했다. 신라 중대에 이미 불교적 색채로 가야 일부분을 채색하였으며, 8세기 초 일본에서는 천황 주권 아래 가야를 재편해버렸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임나일본부설'로 식민사학의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심지어 1980년대 말에는 기독교와 가야와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황당한 견해까지 등장하였다.
(…) 가야사를 무리하게 강조하는 이면에는 은연중 힘의 논리에 대한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으며 작고 약한 실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깔려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크고 강건한 것만이 미덕이 아니다.
(…) 가야는 저들 나름대로 완벽한 체제를 갖춘 공동체였다. 다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적 감각과 그에 부응하는 힘을 기르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독특한 물질문명과 가치관, 내부 운영 질서, 부정할 수 없는 자체 오류와 모순까지 차분하게 관찰하면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에게 넘어온 지 오래지만, 여전히 영웅주의·패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우리 역사 속 작은 실체로 존재했던 가야의 본모습을 조용하게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여덟 번째 이야기 : 왕이 제 자식 죽인 자를 접대한 까닭
열 번째 이야기 : "우리 자식들 대신 그들을 묻읍시다"
소설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