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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Apr 23. 2016

'먹고사니즘'에 대하여

묵자, 엔지니어 철학자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꼭 이야기로 지어보고 싶은 주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묵자의 사상입니다. 어떤 이는 묵자를 가리켜 '고대의 좌파'라고 하더군요. 또 누군가는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라고 했고요. 


다 맞는 말입니다. 일하는 사람, 생산하는 사람의 철학이 바로 묵가 사상입니다. 실제로도 묵가 집단은 기술자+무사 집단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묵'이라는 글자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요. 죄수에게 하는 문신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건축 기술자들이 쓰는 먹줄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죠. 어찌됐건, 고대의 좌파라는 표현은 맞는 것 같아요. 


원래 자려고 했는데, 방금 맹자에 관한 글을 올리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묵자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맹자는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논객입니다. 주류 학설에 시비를 겁니다. 그 논리가 매우 정연해서 일단은 설득력이 있죠.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는 맹자를 떠올리면, 진중권 교수가 생각나는데요. 진중권의 글은 매우 논리적이고 날카롭죠. 하지만 진중권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주류는 아니잖아요. 맹자의 위상도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맹자가 공격했던 학설 가운데 하나 묵자 사상입니다. 맹자가 말했죠. “양주(楊朱)와 묵적의 학설이 하늘 아래 가득하여 천하의 학설이 양주에게 쏠리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여기서 묵적이 바로 묵자입니다. 


양주와 묵적은 딱 반대 성향인데요. 양주가 우파라면, 묵적은 좌파입니다.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였고, 묵적은 극단적인 이타주의였죠. 맹자는 둘 다 비판하고요. 


그런데 이런 접근은 딱 맹자의 방식일 뿐입니다. 일종의 허수아비 논법이죠. 상대의 주장을 너무 거칠게 요약해서 비판하는 겁니다. 양주와 묵적이 모두 실제로는 극우, 극좌가 아니었을 거라는 거죠. 하지만 그들을 각각 극우와 극좌로 몰아가는 게 맹자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앞에서 쓴 글에서 맹자가 한 "矢人函人(시인함인)"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직업 선택할 때 잘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화살 만드는 사람(시인)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봐 걱정할 거라는 거죠. 그러니까 화살 만드는 기술자로 오래 지내면, 인성도 나빠질 거란 겁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갑옷 만드는 기술자가 되라는 거죠.


묵가의 관점에선 이런 이야기는 그냥 한가한 소리입니다. 화살 만드는 기술자가 자기가 원해서 그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죠. 어쩌다 보니, 윗사람이 시키니까, 먹고살려고 하는 겁니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죠. 


묵자는 그걸 딱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배 고픈 자 먹지 못한다. 추운 자 입지 못한다. 고단한 자 쉬지 못한다."


이 세 가지 문제를 푸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나머지는 그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배 고픈 자를 먹이고, 추운 자를 입히며, 고단한 자를 쉬게 하는데, 화살 만들기가 필요하면 그걸 해야죠. 


하지만 맹자가 보기에, 이런 주장이 지닌 위험도 분명히 있습니다. '먹고사니즘'이 지닌 위험이죠. 맹자는 기술 익히기에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화살 만드는 일을 오래 하다보면, 사람이 다치길 바라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죠. 맹자와 묵자의 대결, 소설로 꼭 다뤄보고 싶습니다. 


제가 습작 중인 <알을 품은 섬>에서 알에서 난 자들이 묵자 사상, 소년 기불이 맹자 사상을 각각 구현하는 걸로 구상을 했는데요. 이야기 전개가 쉽지 않네요. 어찌 됐건 포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이리저리 궁리해봐야죠.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여섯 번째 이야기 : "그 활로 나를 쏘거라"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여덟 번째 이야기 : 왕이 제 자식 죽인 자를 접대한 까닭

아홉 번째 이야기 : "죽은 왕은 알에서 태어났소"

열번째 이야기 : "우리 자식들 대신 그들을 묻읍시다"

열한 번째 이야기 : "죽은 왕은 썩은 피를 타고 났소"



소설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


<1>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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