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품은 섬, 열한 번째
“죽은 왕은 썩은 피를 타고 난 자요.”
캄캄한 산속. 흉터로 얼룩진 얼굴을 온통 검게 칠한 사내가 눈만 반짝이며 말했다. 사내는 알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이 없다. 낮에는 그렇다. 하지만 밤에는 이름이 있다. 이 나라엔 거북이 바위가 있는 낮은 산이 있고, 그 맞은편에 거북이 바위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이 있다. 달빛이 없는, 어두운 밤이면 사내는 이 산에 오른다. 산 중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기다리면, 다른 무리가 하나둘 모여든다. 모두 알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얼굴이 온통 흉터투성인데, 눈동자만 빼고 검댕으로 문질렀다. 이렇게 모인 이들끼리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사내는 쇠나라고 불렸다. 어차피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이 산에 모인 무리는 계절마다 이름을 바꿔 불렀다.
쇠나의 말이 이어졌다.
“죽은 왕은 뱀의 부족. 그들의 조상은 원래 알에서 난 자였소. 이 나라의 여섯 부족을 상징하는 동물 가운데 오로지 뱀만이 알을 낳소. 게다가 나머지 다섯 동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았소. 그러나 뱀은 인간과 같이 살 수 없는 동물이오. 다섯 부족이 뱀의 부족을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데는 다 까닭이 있소.
알에서 난 자가 사람의 자식과 교합하여 생겨난 게 뱀의 부족, 바로 사가요. 그들의 피는 탁하고, 썩은 내가 나오. 그들은 원래 우리와 같은 종족이었으나, 우리와 같은 운명을 따르기를 거역했소. 이 땅에서 뜨거운 불길에 달궈지고 망치로 두들겨지는 시련을 겪어내는 대신, 사람의 자식들과 몸을 섞어버린 거요. 그들은 한줌의 밥을 얻고자 피를 더럽혔소. 사람의 자식들에게 몸을 굽히고 발가락을 핥으며 세월을 보낸 끝에 다섯 부족과 함께 거북이 바위에 오른 거요.”
얼굴을 검게 칠한 무리가 모인 산엔 참나무가 빽빽했는데, 여섯 부족의 사람들, 바로 사람의 자식들은 이곳에 얼씬 하지 않았다. 알에서 난 자들이 이곳에서 나무를 베 숯을 구웠다. 이곳 참나무로 만든 숯으로 불을 떼면 불길이 세고 오래 갔다. 숯 무더기는 쇠터로 옮겨졌고, 쇠를 품은 돌이 여기서 녹여져 넓고 길쭉한 쇳덩어리가 됐다. 쇠를 품은 돌을 캐내는 일, 그걸 녹여서 쇳덩어리로 만드는 일은 모두 알에서 난 자들의 몫이다.
대신, 쇳덩어리를 다시 녹이고 두들겨 무기나 연장을 만드는 일은 여섯 부족의 몫이었다. 여섯 부족 사람들은 검은 색을 싫어했다. 그래서 숯을 만지는 일은 모두 알에서 난 자들이 도맡았다.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여덟 번째 이야기 : 왕이 제 자식 죽인 자를 접대한 까닭
열번 째 이야기 : "우리 자식들 대신 그들을 묻읍시다"
소설 '내 남자친구는 북한 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