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문연 Jun 11. 2024

진정한 맛집은 빈그릇에서

지난 번 헌혈하고 받은 상품권을 쓰기 위해 순대국집에 갔다. 사실은 고기가 땡겨서 혼밥하러 갔다. 고기가 땡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정말 몸이 격렬?하게 단백질을 원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뼈해장국을 먹고 싶었으나 지류 상품권을 받지 않아 순대국집으로 최종 결정했다. 순대국을 좋아해서 동네 순대국집은 거의 다 먹어봤는데 예전에는 맛집이었다가 다시 방문했을 때 뭔가 달라진 집은 더 이상 잘 안 가게 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선 사랑도, 사람도 변하는데 순대국집도 물가 상승에 따라 (소비자 입장에선 안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최애 순대국집은 어떨지 궁금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2019년)도 8,000원으로 다른 순대국집에 비해 가격대가 좀 있는 편이었는데 그 동안의 물가 상승으로 11,000원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부동의 맛집엔 손님이 바글바글. 조금만 늦었으면 웨이팅에 걸릴 뻔 했다. 순대국 하나 주세요- 요즘은 식성에 따라 순대만/고기만 을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게다 노년층이 많은 순대국집은 비계와 껍데기, 머릿고기 등 살코기 외 부산물이 많다면 이 집은 살코기가 80% 이상이다. 껍데기와 오소리감투를 좋아하는 나는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비계가 많은 순대국보다는 훨씬 더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좋긴 하다. 밑반찬이 깔린다. 양파, 쌈장, 깍두기, 겉절이 김치. 공기밥의 양이 적어 더 달라고 했더니 부족하면 더 준단다. 자기네 집 고기양이 많아서 공기밥을 남길까봐 적게 주는 것이니 일단 먹어보고 부족하면 이야기하란다. 단골은 아니지만 방문 경력자로서(5번째 방문) 분명히 더 달라고 할 것 같았지만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강력한 눈빛에 일단 한 발 물러났다. 뽀얀국물은 아주 담백하고 고소했다. 숟가락에 가득 담아 한 입에 쏙. 앗 뜨거! 가게 안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가 도로 꺼냈다는 걸 알아채진 않았겠지? 추접스러움을 감당하지 말고 호호 불어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먹으니 아주 맛있다. 이 집은 겉절이 김치도 맛있어서 밥이 아주 술술 넘어간다. 한 공기를 클리어하고 당연하게도 밥을 ‘조금만’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두 공기까지 클리어하니 옆 자리 손님들이 가고 없었다. 맛있게 먹어 빈 그릇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혼밥을 하고 맛집 인증은 사진으로 한다. 먹기 전의 음식사진과 빈 그릇 사진. 그게 바로 진정한 맛집 블로거(물론 난 맛집 블로거는 아니지만)의 증신!! 내가 생각하는 맛집 철학은 빈 그릇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예쁜 것만 찍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빈 그릇은 확인하고 싶지 않은, 보여줄 수 없는 진실이 아닐까 한다. 진실을 가리고 싶을 수록 구구절절히 포장하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법. 하지만 그런 맛집 블로그가 먹히는(요즘은 먹는 것만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니까!) 현실. 맛집 블로거도 아닌데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순대국 잘 먹고 글은 삼천포로 빠져 버렸네. 여튼,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돼지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