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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10. 2024

'기생수'를 품은 '연니버스'

'기생수: 더 그레이' 볼까, 말까?

기생충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벌레'(표준국어대사전)다. 숙주가 없으면 생존이 위태로운 개체들. 소설과 웹툰 등 원작이 있는 콘텐츠는 그 시작이 독립적이지 않기에 자칫 잘못하면 원작에 기생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 스스로 빛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원작 없이는 개연성과 핍진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원작의 명성에 누가 되는 드라마나 영화를 만났던 경험도 있을 거다.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더 그레이')는 어디에 설 수 있는 작품일까.

'더 그레이'는 2,500만 부 이상이 팔린 동명 만화 '기생수'가 원작이다. 원작 외에도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으로 만들어지는 등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고, 원작 및 파생된 콘텐츠와의 비교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생수'의 팬이었던 연상호 감독은 원작자에게 편지를 보내 드라마 허락을 구했고, 원작의 핵심 설정은 이어받은 채 무대를 한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공을 원작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완성된 드라마에 원작자도 만족감을 표현하는 등 원작을 영리하게 변형한 덕분에 '더 그레이'는 독자적인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여기에 연 감독은 자신이 관심을 가져왔던 것들을 탐구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더한다. '인간의 정체성'에 물음을 던졌던 원작의 주제와 함께 '더 그레이'는 인간이 구성한 '조직'을 여러 방면에서 고민하게 한다. 기생 생물에 대항하는 조직과 기생 생물들이 인간을 모방해 만든 조직, 그리고 국가 시스템까지 조명하며 이들의 목적에 관해 묻는다. 그동안 연 감독은 <부산행>, <반도>, '지옥' 등의 작품 등을 통해 위기 속에서도 인간이 구성한 조직과 그들의 폭력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기생수'라는 소재 앞에서도 이를 뚝심 있게 탐구하며, '기생수'를 연니버스(연상호 감독 유니버스) 안으로 끌어드린다.

사실, '더 그레이'는 불편한 이미지가 많은 드라마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신체가 절단되는 잔혹한 이미지들이 유쾌하지 않지만, 타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볼거리라 호기심을 갖고 보게 하는 기묘한 힘이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이미지를 전시함에도 '더 그레이'가 연니버스 내에서 유독 따뜻해 보인다는 데 있다. 잔혹한 이미지와 폭력적인 조직의 이야기 뒤엔 '인간이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존재이기에 특별하다'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있다. 원작과 비교해 기생 생물이 인간적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연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 비판받았던 신파적인 요소보다는 자연스럽고 울림이 강한 연출이었다.


'더 그레이'가 완벽한 건 아니다. 기생 생물들의 신선한 이미지들과 달리 액션이 단조롭고, 급박한 전개에 기생 생물에 관한 설정이 허술해 의문을 가지게 하는 부분도 있다(달리 말하면 분량이 짧다는 거다). 여기에 초반부 연기가 튀어 몰입되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딛고 '더 그레이'는 넷플릭스 글로벌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정수인(전소니)과 그녀의 몸에서 기생하는 하이디가 초반부 삐끗하다 점점 공존하며 강해졌듯, '기생수'와 연상호의 '더 그레이'도 회가 진행될수록 안정되고 시너지를 내며 색다른 재미를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시즌 2를 향한 기대가 이어지고 있을 만큼 성공적인 출발이기에 원작 팬들뿐 아니라, '기생수' 입문작으로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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