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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venture Jan 25. 2016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의 탄생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그 여섯 번째 이야기

커버 이미지 : 지진으로 파괴된 파탄 더르바르(Patan Durbar) (출처 : CARITAS INTERNATIONALIS)


'사막마라톤에 도전해서 네팔 지진 후원금을 마련해볼까?'라는 작은 아이디어가 진짜 프로젝트가 되었다.


알프스의 대자연 속에 몸을 맡겼던 약 한 달 동안, 어떤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은 과거 네팔 히말라야(Himalaya)의 추억들이었다. 내 인생에서 감히 '모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첫 도전이자, 동시에 실패였던 에베레스트(Everest) 트레킹. 고산병으로 인생 최악의 고통을 안겨주었던 칼라파타르(Kala Patthar). 나에게 있어 '산을 걷고 오르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이 히말라야에 있었던 탓에, 네팔과는 사뭇 다른 유럽 알프스에서도 2010년의 그 풍경들을 떠올리고 있던 것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눈 녹은 물로 질척이는 오르막길을 걸을 때면, 야크 똥으로 엉망이 되어 있던 히말라야의 트레일이 생각났다. 프랑스 가이드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던 구테 산장(Refuge du Goûter)의 실내에서는, 2010년 다이(daai)와 함께 앉아  말없이 에베레스트를 감상하던 네팔의 허름하고 추운 롯지(lodge)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봉주르(Bonjour)'나 '그뤼에치(Grüezi)'를 외치는 알프스 사람들과 '너머스떼(नमस्ते)'라고 합장하던 히말라야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그 미소가 닮아있었다. 신기하게도 알프스에 있으면서 히말라야가 그리웠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히말라야의 나라이자 내가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네팔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 스물넷 청춘이 사랑했던 '제 2의 고향'을 무너뜨린 지진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2015년 4월, 진도 7.8의 지진이 네팔을 덮쳤다. / Bhaktapur, Nepal (2015) (http://www.nytimes.com)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충격을 받았다. 회사에서 또다시 전쟁 같은 한 주를 보내고 축 늘어져 있던 토요일 오후였다.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속보가 뜨는데, 처음에는 그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뉴스를 보자마자 예전 단원 동료들과 연락하고, 네팔 친구 비카스(Bikash)와 형님들에게 국제전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네팔에 처음 갔을 때 수도 없이 들었던 지진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유라시아판과 인도판 사이 지진대에 위치한 까닭에, 네팔은 오랫동안 주기적인 대지진의 위협에 시달려왔다. 2010년 아이티 정도의 지진이 카트만두를 강타한다면 수십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미국 모 대학의 연구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카트만두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네팔 특유의 허술하고 오래된 건물들을 보면서, 지진이 일어난다면 충분히 그 정도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동료 단원들과 모일 때면 지진이 꼭 대화 소재로 나왔고, 집에서는 지진이 났을 상황을 가정해서 대피로와 대피장소를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지진은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비카스를 포함한 네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면서 부디 모두들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다행히도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네팔 사람 중에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일처럼 느껴질 리도 없었다. 퇴사 고민으로 한창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지진 뉴스에 귀 기울였다. 충격과 걱정, 슬픔. 무엇보다 당장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가장 싫었다.

사진 출처는 모두 http://www.nytimes.com


그래서일까.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7월 초, 알프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생각했던 화두는 바로 '네팔 지진'이었다. 그리고 퇴사하고 생긴 몇 달간의 여유를 이용해, 네팔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귀국 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재 지진 피해 및 복구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고, 국내외 정부·국제기구·NGO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원현황과 효과 등을 찾아보았다. 내가 가진 경력과 재능을 활용해 네팔을 도울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예전 봉사단원으로 네팔에 처음 가던 그때처럼 두근거렸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 없이 짧은 봉사단 및 공공기관 근무 경력만 있는 내가 무엇을 할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다. 그나마 눈 여겨 본 것은 소셜펀딩(social funding) 방식의 모금활동이었는데, 내가 유명인사도 아니고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후원받을 수 있을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직접 만들어 사람들에게 팔만한 아이템이나 기술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먼저 무언가 하겠다는 의미로 프로젝트의 이름부터 지었다. 그것은 바로 <달밭 프로젝트>. '달밭(dalbhat)'은 네팔식 백반으로 네팔인들이 매일 먹는 대표적인 현지식의 이름이다. 네팔에 사는 동안 이 음식을 너무 좋아해 '달밭킬러'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던 나였기에, 네팔과 나의 '연결고리'로서 달밭을 프로젝트의 가제(假題)로 삼았던 것이다. 

참고 : 제 1편. 네팔과의 첫 인연 : '달밭킬러'가 된 해외봉사단원

나의 소울푸드, 네팔 전통 백반 '달밭' (https://www.facebook.com/thatscoop) 


그러나 <달밭 프로젝트>는 2주 넘게 작명 외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여러 소셜펀딩 사례를 통해, 모금을 잘 하려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살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내는데 그쳤을 뿐이다. 벽에 가로 막힌 나는 잠깐 네팔을 내려놓고, 여유를 이용해 알프스 사진들을 분류하고 여행 일지도 다시 정리했다. 다시 봐도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던 엄청난 모험이었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미소를 짓다니, 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산을 하면서 몽블랑 등반 비용을 제외한 트레킹 예산도 계산해보았는데, 놀랍게도 숙박과 식비를 모두 합쳐 하루 평균 25유로에 불과했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로 알려져있는 스위스에서 말이다. 물론 매일같이 산 속을 두 다리로만 걸어 다니고 텐트에서 자면서 음식을 직접 해 먹었으니까 가능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런 여행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혹은 사서 하는 고생)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친구나 지인들에게 알프스 여행기를 들려줄 때마다, 모두들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그들이 말하길, '에펠탑 야경'이나 '중세풍 도시', '낭만적인 카페'가 먼저 떠오르는 서유럽까지 가서 산을 오르고 캠핑과 트레킹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또 만약 알프스에 가더라도 산악열차나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다녀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한 달 동안 비박을 하며 수백 킬로미터를 걷고 심지어 몽블랑 등반까지 도전한 것이 참 대단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 직접 해보라고 했더니, 다들 손사래를 친다. 그런 '쌩고생'은 한 사람한테 이야기만 들어도 재밌다나. 


7월이 끝나가던 어느 날, 친구들과 헤어지고 귀가하는 지하철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 사람들이 이런 흔하지 않은 도전에 흥미는 물론, 대리만족까지 느끼는구나.' 그리고 거기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모두가 관심 있어 할만한 '모험'에 도전하고, 그것을 소셜펀딩으로 연계해보는 것은 어떨까?


집에 돌아와서 책상을 한참 뒤진 끝에 나의 '버킷리스트'를 찾아냈다. 2014년 새해를 맞아 심심풀이로 작성했던 '인생의 도전' 리스트였다. 하고 싶은 도전과 그 기간이 나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도전들은 언제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물음표(?) 표시를 해두었다. 물음표가 표시된 항목 중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에베레스트 정상(8,848m) 등반'이었다. 네팔에서 칼라파타르 트레킹에 실패하고 카트만두에 돌아올 때부터 가슴에 품은 목표였다. 처음에는 '네팔'을 위한 도전이니 네팔에 있는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이건 불가능한 아이디어임이 분명했다. 현실적으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은 물론이고, 전문적인 고산등반이란 게 내가 몇 개월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신 적은 비용이 드는 6,000m대 등반을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지진 반 년도 안 되어 네팔을 '모험'으로서 방문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로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서 17명의 소중한 목숨이 사라진 게 불과 3달 전이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다음 항목인 '사막마라톤 도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구상 가장 극한의 땅인 4대 사막(고비, 사하라,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남극)에서, 외부의 지원 없이 250km를 완주해야 하는 서바이벌 울트라마라톤. 나는 2012년 교환학생을 마치고 들린 사하라(Sahara)에서 이 곳을 달리는 마라톤이 있다는 것을 접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운동으로서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대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오랫동안 마음속 버킷리스트에 담아왔던 것이다. 문제는 아직 사막마라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 하지만 반대로 이 점이 소셜펀딩에 있어 오히려 흥미를 더 끌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최사인 '4 Deserts'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다음 대회인 '아타카마 크로싱(Atacama Crossing)'이 10월에 열릴 예정이었다. 조금 촉박하지만 2달 정도면 시간적으로도 딱 맞았다. “극한의 사막마라톤에 도전하고, 후원금을 모아 네팔에 기부하자!” 바로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리는 청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4 Deserts 사의 '아타카마 크로싱(Atacama Crossing)' 섹션


2015년 7월 말, 나는 주위 친구들에게 먼저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리는 <달밭 프로젝트>의 콘셉트를 소개했다. 현실성이 있는지, 설득력은 있는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응은 살짝 엇갈렸다. 많은 친구들이 흥미롭다고 평가했지만, 일부는 네팔 지진과 남미 사막마라톤 간의 연계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점이었지만 막상 부정적인 의견을 들으니 살짝 풀이 죽은 것도 사실이다. 그때 몇몇 친구들이 프로젝트로 함께 기획해보자며 나서 주었다. 바로 회사 다닐 때 함께 꿈을 나누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입사 동기들이었다. 알프스에서부터 네팔 지진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공유해왔던 용사 SW 물론, 강한 기획력과 열정은 물론 민간부문에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SJ 누나, 나와 같은 해외봉사단 출신이자 경영학도로 프로젝트 운영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SM, 그리고 톡톡 튀는 멋진 아이디어로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 HS가 그들이었다. 더운 여름날 저녁, 우리는 <달밭 프로젝트> 팀의 역사적인 첫 회의를 가졌고, 동기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소개와 고민을 들은 후 다양한 의견 및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SW는 네팔 지진과 남미 사막마라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바로 '비제이(Vijay/나의 네팔 이름)'라고 하며, 네팔에서 봉사단원 활동을 했고 누구보다 네팔을 사랑하는 나의 이야기를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SJ 누나와 HS는 기본적으로 네팔을 위한 도전을 하는 주체가 바로 나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떤 도전을 하는지는 부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지진'과 '사막마라톤' 사이의 연계성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SM은 개인이 후원금을 모으지 말고 모금 플랫폼을 갖춘 NGO나 사회적 기업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행히 4명 모두 '개인의 도전을 통한 소셜펀딩으로 개도국 재난 피해를 지원하자'는 나의 아이디어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달밭 프로젝트>는 단 한 번의 미팅만에 꽤나 구체적인 목적과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동기들과의 회의 다음 날, 나는 <달밭 프로젝트>를 가까운 네팔 동생 '수잔 샤키야(Sujan Shakya)'에게 소개했다. 유학생 출신으로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나라에 얼굴을 알린 수잔은 사실 내가 2011년부터 알고 지낸 동생이었다. <비정상회담>에 네팔 대표로 출연해 모국을 열심히 알렸고 <내친구의집은어디인가>을 통해 지진 피해 모금운동에도 앞장섰던 그는, 나의 설명을 듣자마자 주저 없이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네팔 방문 캠페인인 <#I AM IN NEPAL NOW(지금 네팔에 있습니다)>을 언급하며, <#I'M GOING TO NEPAL(나는 네팔에 갈 것입니다)>을 프로젝트의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을 제안했다. 후원금을 꼭 모아서 제 2의 고향 네팔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는 의미였다. 동시에 지진으로 주요 산업인 관광이 큰 타격이 받아 어려움에 처한 네팔의 상황을 전하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다시 네팔을 찾을 수 있도록 홍보도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수잔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I'M GOING TO NEPAL>을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프로젝트의 기획은 물론, 홍보에 있어 큰 도움을 준 네팔 동생 수잔(Sujan)


이렇게 명확한 목적을 갖추게 된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는 능력 있는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점차 발전해나갔다. 다음으로 우리 팀이 고민한 것은 기부처를 미리 구하는 것이었다. 사실 후원금을 모으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앞서 돈을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 정하는 것도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다. 그래서 네팔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단체 중에서, 추후 후원금을 믿고 전달할 기부처를 먼저 결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각자 생업이 있는 우리가 네팔에서 직접 사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부는 검증된 공식적인 단체를 통해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SM의 제안을 반영한 결과였다. 동시에 선정된 단체가 모금과 관리, 후원금 기부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 프로젝트의 '파트너(partner) 겸 스폰서(sponsor)'가 될 수 있게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를 위해 우리는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기로 했고, 회사에서 관련 업무 경험이 풍부한 SJ 누나의 총괄 아래 며칠 만에 그럴듯한 제안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15년 8월, 우리는 완성된 제안서를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만한 국내 사회적 기업 및 NGO 등에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비록 동기들과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열심히 작성하긴 했지만, 사실 과연 진짜 하겠다고 하는 단체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래서 관심 있는 단체가 없으면 우리끼리라도 소셜펀딩을 진행하고, 기부를 어디에 어떻게 할지는 추후에 다시 논의해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제안서를 뿌린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놀랄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공정무역 아름다운커피’가 프로젝트 파트너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아름다운커피는 네팔을 포함한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공정무역(fair trade) 사업을 펼치고 있는 재단법인으로, 특히 다양한 공정무역 커피로 잘 알려진 사회적 기업이었다. (http://www.beautifulcoffee.org/)


얼마 후 나는 아름다운커피와 첫 미팅을 가졌고, 그곳 간사님들과 프로젝트 협력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름다운커피는 약 10년 전부터 네팔에서 커피로 유명한 신두팔촉(Shindupalchok) 및 굴미(Gulmi) 지역의 커피 협동조합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정무역 커피를 생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4월 대지진으로 인해 신두팔촉 산간지대에 주로 위치한 커피 생산농가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아, 영세한 규모의 현지 농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작물 및 시설 피해로 커피 생산이 중단되어 소득이 없어진 농가들의 경제난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아름다운커피 측은 나의 프로젝트로 조성되는 후원금을 지진 피해 농가에 지원함으로써 농민들의 겨울나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 날 우리는 아름다운커피의 자체 인프라를 활용해 나의 사막마라톤을 응원하는 후원금을 모으고, 모인 금액을 신두팔촉의 지진 피해 농가에 기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또 후원자에게는 후원에 대한 리워드(reward)로 네팔 공정무역 커피('히말라야의 선물' 등)를 제공함으로써, 품질 좋은 네팔 커피도 홍보하기로 했다. 단순 후원금 기부가 아니라 공정무역 제품 홍보를 통해 현지 네팔인들의 지속 가능한 삶의 기반에 기여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과 목표에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2015년 8월,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공정무역 아름다운커피' 사람들과 나(가운데)


아름다운커피의 합류로 프로젝트는 점점 그럴듯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슬로건인 <#I'M GOING TO NEPAL>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멋진 로고로 변신했고, 추후 내가 경기복에 이 로고와 아름다운커피 로고를 달고 뛸 수 있도록 패치 제작이 이루어졌다. 후원자들이 후원을 할 수 있는 사이트도 9월 초에 오픈할 예정이었다. 아름다운커피 간사님들은 SNS 홍보를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imgoing2nepal)부터, 나의 프로젝트를 알릴 다양한 홍보물까지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I'M GOING TO NEPAL>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의 커버 이미지
아름다운커피에서 만들어주신 <#I'M GOING TO NEPAL> 홍보물 (배경사진은 2012년 사하라 사막)


하나씩 착착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보니, 정말 네팔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를 제안서로 담아낸 동기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고마움을 담아 동기들에게 수고했다는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그들의 답장에 피식 웃으면서도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용준아, 이제 사막마라톤 2달도 안 남았네. 훈련은 열심히 하고 있지? 


맞다. 이 모든 것들의 전제는 내가 250km 사막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현관으로 나가 러닝화를 신기 시작했다.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7)>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연재 순서

프롤로그 : 용사의 탄생

제 1편. 네팔과의 첫 인연 : '달밭킬러'가 된 해외봉사단원

제 2편. 히말라야 트레킹 도전기 : 에베레스트와 고추장아찌

제 3편. 헤어짐의 '너머스떼(नमस्ते)'

제 4편. 2015년, '퇴사'라는 모험

제 5편. 백수에서 '용사'로 : 극한의 알프스

 6편.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의 탄생

 7편. 사막마라톤 훈련기 : 양재천에서 천왕봉까지

 8편.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리는 청년'이 되기 위해

 9편. 사막마라톤 전초전 : 바람의 땅 남미 파타고니아

 10편.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도전기 : 죽음의 계곡

 11편.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도전기 : 악마의 발톱

제 12편.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도전기 : 소금달의 별빛

제 13편. 사막마라톤 그 후 : 다시 '너머스떼(नमस्ते)'

에필로그 : 끝나지 않은 레이스





 <용사의 탄생>의 '서브 연재물'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시리즈 2010년도 해외봉사단원으로 네팔에서 활동했던 제가, 2015년 직장 퇴사 후 네팔 지진 피해 지원 후원금 마련을 위해 칠레 아타카마 사막마라톤에 도전한 소셜펀딩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지난 이야기들을 구경해보세요.   

https://www.facebook.com/imgoing2nepal


 2015년 8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과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의 진솔한 이야기를 유튜브 영상으로 먼저 확인해보세요.     https://youtu.be/ntiof25ZOrM

#I'M GOING TO NEPAL [아름다운 청년X아름다운커피]'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의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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