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이 전부다!
회사를 다닌 기간이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대기업 인하우스 컨설팅 조직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덕분에 신입사원 때부터 그룹 사장단의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간단한데 막상 그 문제를 파고들면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조직 구조의 실체를 마주하곤 했지요. 쉽지 않은 만큼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회사라는 조직을 두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푸는 방법들에 익숙해졌습니다. 특정한 사람, 부서, 기능 입장이 아니라 조직의 모든 걸 책임지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조직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지요. 그렇게 대기업에서 7년간 경험을 쌓고 나서 상장 준비를 하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어요. 이후 3년 동안 전략기획본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CEO를 도와 정말 로켓이 날아가듯이 사업과 조직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경험도 했습니다.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 시기였어요. 지난 10년간 제 커리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최고경영자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한 조직 규모와 여러 산업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최고경영자가 마주한 복잡적인 고민을 풀어주는 일, 그 일을 해 왔네요.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올해 마케팅 회사를 창업했어요. 누가 봐도 불황인 시기임에도 창업에 도전한 이유는 단순해요. 스스로 최고경영자가 되어서 사업과 조직을 키워나가고 싶었거든요. 10년 동안 연습했으면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 선배 경영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경영과 사람에 대한 제 나름의 철학도 정리가 되더라고요. 경제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리기보다는 1년이라도 빨리 최고경영자로서 경험을 쌓는 일이 장기적으로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을 했어요. 돌이켜보면 어떤 문제든지 늘 아쉬운 건 시간이더라고요.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앞으로 제 커리어와 전문 분야는 한동안 유지될 것 같아요. 바로 전문경영인이자 의사결정 전문가. 10년 정도 내공을 쌓다 보면 그 뒤에는 새로운 시선으로 제 커리어를 바라볼 수 있겠죠.
이제 이 글의 주제로 넘어와서, 회사라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은 효율성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생각하면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판단은 1) 가지고 있는 자원과 시간을 활용해서 얼마나 더 높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혹은 2) 목표로 하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적은 자원과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가? 둘 중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효율성'에 목매고 계신 분이 한 분 계시죠. 테슬라 CEO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방향에는 상당히 공감을 해요. 다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세부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평가하거나 의견을 내기에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라, 그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눈여겨보고만 있는 중이에요.
효율성에 집중하려는 이유는 시간의 기회비용 때문이에요. 만약 제가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을 더 적은 시간 안에 마칠 수 있다면, 남은 시간은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중요한 곳에 쓸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낼 수도 있고,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요. 뭐 제가 원한다면 회사 일을 더 할 수도 있겠죠. 여유 시간이 있다는 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무엇을 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회사에서 해야 할 일에 파묻혀 하루 온종일 시간을 써야 한다면 별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될 거예요. 일이 정말 많아서 일시적으로 그런 상황에 놓일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쓸데없는 일로 시간 낭비가 발생해서 결국 제 여유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저만 그러겠어요? 대부분 직장인들이 같은 생각을 할 거라 생각해요.
회사에서 불필요하게 시간을 쓰는 일이 참 많아요. 사소하게 볼 일은 아니예요. 그만큼 누군가의 여유 시간이, 삶의 자유와 낙이, 희생된다는 말이니까요. 점심시간마다 우르르 몰려가서 원치 않는 식사부터 시작해서, 업무 시간에 사내 동호회 활동을 하거나, 문서 관리가 안 되어서 일일이 사람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취합해야 한다거나, 어느 날 대표 한 마디에 오랫동안 준비하던 일이 뒤집히기도 하고요. 말 나온 김에 좀 더 적어보면 긴급한 문제 생겼다고 다짜고짜 회의부터 소집하거나, 개인감정 때문에 동료들끼리 서로 협조를 안 해서 두 번 일하게 되거나, 중간 리더들이 사소한 결정도 못해서 시간이 지연된다거나... 정말 끝도 없네요. 으악. 의리 야근 같은 생각하기 싫은 경험까지 떠오르네요. 여하튼 제가 경험한 회사들은 나름 성공적인 조직이었음에도 시간 낭비가 많다고 느껴졌어요.
처음부터 회사 안에서 이런 비효율이 눈에 들어온 건 아니었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한 시라도 빨리 퇴근해서 아이를 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출근할 때마다 "야근 절대 불가!!"를 다짐하며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다 보니까 만들어진 관점이었어요. 그 뒤로 제가 일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출근길부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날 하루 벌어질 일에 대해서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어요. 하루에 회의가 4-5개는 기본이었는데, 출근하기 전에 이미 뭘 논의할지, 뭘 결정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누가 참여해야 하는지 등 사전에 미리 회의 진행 흐름을 예상하고 결론도 생각해 두는 거죠. 그렇게 되면 1시간 잡힌 회의라도 15분 이상 넘길 일이 잘 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저부터 시간 낭비를 줄이는 습관이 쌓이면서 별일 없으면 칼퇴! 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랬더니 오히려 주변에서는 '일잘러'의 표본처럼 보였나 봐요. (제 입으로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덕분에 근무 시간은 점점 자유로워졌고, 성과 평가는 잘 나오고, 고속 승진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주변 동료들도 저와 일하는 걸 선호했던 것 같고요. 그저 아이가 빨리 보고 싶었을 뿐인데, 회사에서 더 인정받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지더라고요. 이때 깨달았죠.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업무 효율성이 전부라는 것을요.
아쉽지만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저만 효율적으로 일해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건 결국 거대한 구조와 시스템의 일부이자, 주변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놓여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연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알을 낳을 자리를 찾아간다지만, 낮은 확률로 산란에 성공하더라도 결국 죽게 되잖아요. 맥락을 거슬러 가는 일은 그만큼 지치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난관을 헤치며 꾸역꾸역 겨우 하나씩 이뤄내기보다는, 제가 구상하는 일들을 일사천리로 시도해 보고 그 결과를 눈으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한번에 완성할 수 있는 일은 아닐테니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걸 시도해 봐야죠.
운이 좋게도 이제는 제가 주인인 회사를 만들어 가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조직을 만들어 보려고요. 일종의 경영 실험이 될 것 같아요. (야호!) 회사 전체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표방하면서, 경쟁 회사를 넘어 성공하기!! 그 실험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가 바로 '효율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경쟁 회사보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쓸지 보다는, 우선 얼마나 조직적으로 시간 낭비를 줄이느냐로 접근해 보려고요. 이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된다면 앞으로 전문경영인 커리어도 잘 쌓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직 차원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뤄주는 전문경영인! 맡은 조직마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치솟는 전문경영인! 구성원보다 가족들이 더 애정하는 회사를 만드는 전문경영인! 생각만 해도 뿌듯하네요.
앞으로 연재할 《도전! 전문경영인이 되어 보자》는 창업자로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조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아보려고 해요. 부제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조직 만들기' 정도가 되겠네요. 크게 4부로 나눠서 연재를 생각하고 있어요. 1부는 회사에서 시간 낭비를 만드는 원인을 짚어보고, 2부는 그런 시간 낭비를 줄이는 회사 차원의 방법들을 담아보려 해요. 3부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알아야 할 의사결정 기법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 인터뷰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연재를 하면서 저처럼 일도 가정도 포기하기 싫은 능력자 직장인들과 자주 소통하고 싶어요! 참고로 제가 이 연재를 하는 이유는 이미 전문가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오히려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려는 목적이 더 큽니다.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따스한 관심과 응원 부탁해요. 데헷-☆
그럼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