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리더
팀원부터 팀장, 대표까지. 직책이 높아질수록 역할에서 명확히 달라지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업무 지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이에요.
요청받은 업무 하기 vs. 업무 지시하기. 여러분들은 둘 중에서 어떤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나요? 업무 지시를 "OO님~ 내일까지 마케팅 트렌드 조사 좀 해줘~"라고 말하는 정도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멋모르는 신입사원 때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상사들은 직원들한테 말로만 일을 시키면 되니까 편하게 일하는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조직 리더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회사 차원에서는 정해진 일을 잘 해내는 역할도 필요하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요. 그만큼 잘하기는 더 어렵고요.
업무 지시가 더 어려운 이유는 '업무의 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누가, 언제까지, 무슨 업무를 할지 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어떤 결과물을 기대하는지, 결과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해당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하고자 하는지와 같은 기대 수준과 활용 목적도 함께 알려줘야 해요. 조금 더 나아가면 다른 업무와의 우선순위를 비교하고, 업무 추진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에 대한 기준까지도 제공해야 하고요. 직원들과 자주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직원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업무 지시 맥락과 배경을 설명하는 일도 빠질 수 없겠네요.
혹자는 리더가 이렇게 세세하게 업무의 틀을 짜는 게 맞냐고 물을 수 있어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말이죠. 세부 사항은 업무를 맡을 직원이 짜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나는 리더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이 있다면 한 마디 충고를 해주고 싶어요. 그런 안이한 태도를 가진 리더들 때문에 조직과 직원들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이에요.
리더가 업무의 틀을 잘 만들어 주면 직원들이 업무에 낭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사소한 부분에서 퀄리티를 높이느라 불필요한 시간 쓰는 걸 예방할 수 있고, 기대와 다른 결과물을 가져와서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는 상황도 방지할 수 있고요. 또한 리더의 검토와 결정을 기다리느라 직원들이 대기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가장 바람직하게는 애초에 어디에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결과물을 만드느라 직원들의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될 수도 있겠네요. 조직과 직원들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리더라면 "이딴 걸 보고서라고 가져왔어?"라며 종이를 흩날리기 전에, 자신이 어떤 결과물을 기대하는 지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더가 업무 지시에 10분만 고민해도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1시간은 줄일 수 있을 거예요. 해당 업무에 관련된 직원이 5명이라고 치면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 업무 시간을 5시간 줄이게 되는 셈이죠. 물론 리더의 시간 기회비용이 다른 직원들보다는 더 높아요. 그렇지만 리더가 10분을 투자해서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5시간 아니 단 1시간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조직의 자원 효율성은 더 높아지게 될 거예요. 본인 업무 시간 줄이기 위해서 직원들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본인 업무 시간 들여서 회사 전체의 업무 시간을 줄어들게 만드는 일이 바로 리더의 바람직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리더도 업무를 지시하면서 업무의 틀을 완벽하게 수립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과 역량도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상황이라면 업무 지시를 할 때에 더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어요. 현재까지 정리된 부분과 아직 판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요. 혹은 직원이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위임을 한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광고 예산을 집행하는 업무를 지시한다고 했을 때 "이번 달에는 광고 예산이 100만 원 집행하려고 해요. 클릭수를 가장 높이는 게 목표예요. 어떤 콘텐츠에 얼마를 집행할지는 OO님에게 맡길게요."라는 식으로요.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어요. 리더가 정작 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거예요. 이런 리더들은 주로 상사가 시키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요.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모두 경험한 바를 비교하면 대기업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나름 MZ세대인 저는 상사로부터 모호한 업무 지시를 받으면 상사한테 찾아가서 물었어요. "이걸 왜 해요?" "사장님이 원하는 건 뭐래요?"라고요. 그럴 때마다 상사들도 속 시원하게 답변을 잘 못하더라고요. 오히려 본인도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면서 "위에서 시키는 걸 어떻게 해. 우리는 까라면 까야지"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 상사들의 답답함도 이해는 갔어요. 제 상사들도 본인 상사한테 "이걸 왜 해요?"라고 물었다면, 그걸 일일이 알려줘야 하냐며 엄청 깨졌을 것이 뻔했거든요. 특히 계약직 임원들이나 진급을 앞두고 있는 상사들은 그런 상황에서 더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보다 더 안 좋은 경우도 있죠. 본인이 최종 의사결정자임에도 정작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예요. 보통 사장님들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아요. 문제는 그것들이 두리뭉실하고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는 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마음은 급하니 무작정 직원들에게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 백화점에 본인 브랜드를 납품을 하고 싶어 하는 사장님이 다짜고짜 직원에게 일본 진출 전략을 세워오라는 식이에요. 그러면 직원은 당황하겠죠. 밑도 끝도 없이 이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될 거예요. 직원이 용기를 내서 사장님에게 "어떤 백화점을 원하시는 거예요?" "기간은요?" "예산은요?" 물으며 업무의 틀을 사장님 대신 채워갈 수 있으면 참 다행일 거예요. 그렇지만 어떤 사장님들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당신이 고민해서 가져와야지!"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돈은 돈대로 쓰게 되기 쉬워요.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무한야근의 늪에 빠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네요.
리더라면 업무 지시를 하기에 앞서서 업무의 틀을 짜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래야 직원들의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지 않고, 회사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업무의 틀을 정교하게 짜기 위해서는 회사의 우선순위는 물론이고, 리더 본인의 권한과 책임, 유관 부서와의 업무 관계, 직원들의 업무 상황 등 본인이 지시하는 업무에 관한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 본인이 어떤 결과물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지만 회사 입장에서 중요한 일임은 분명해요.
회사에 왔으면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일을 하자고요. 후딱후딱 끝내고 일찍 퇴근해서 삶을 누려야지요.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룬 회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게 제 꿈이에요. 이렇게 하나하나 바꿔가다 보면 가능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