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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Sep 03. 2020

[히말라야트레킹]ABC 턱밑까지 왔다

2017 히말라야트레킹 이야기(3) 시누와와 데우랄리

*2017년 히말라야트레킹 당시 기록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2017 히말라야트레킹이야기 (2)


DAY 4

Chuile > Chomrong > Sinuwa


오늘은 숙소에서 일출을 보았다. 숙소의 마당이 마차푸차레가 딱 보이는 명당이었다. 끝이 두개로 갈라진 산꼭대기 때문에 '물고기 꼬리(Fish's Tail)'라는 이름이 붙여진 '마차푸차레'는 그 독특하고 멋진 모습이 유독 인상적이다.

촉촉함이 내려앉은 마당에 레이저같은 태양이 발사! 곧 뽀송뽀송해질 것이다. 햇살의 풍요로움에 흐뭇해지는 네팔의 아침이다.


물고기 꼬리를 닮은 마차푸차레, 추일레 숙소 마당에서의 일출
강아지도 구경하는 산장 풍경. 롯지 4남매의 막내가 울고 있다. 귀여워...

이 롯지에 주인네 아이들로 보이는 4남매가 있는데, 모두 하나같이 기특하고 귀엽다. 맏이인 장녀는 카운터를 맡아 척척 어른의 역할을 하고, 둘째로 보이는 남자애는 식당 서빙 담당이다. 셋째는 막내동생을 챙기는 전담이고, 막내는 간식 먹고 우는게 일이다. 아이들을 만나면 주려고 볼펜을 가져왔는데, 몰래 한박스를 서빙보는 남자아이에게 줬다. 공부도 열심히 하렴!!


점점 위로 갈수록 롯지 수가 줄어드는데, 우리의 능력자 디펜드라가 이 초-하이시즌에 내일과 모레, 각각 데우랄리와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의 롯지를 이미 예약 완료했단다. 와우.

그런데 바로 오늘 묵어야 할 시누와에는 단체 트레커때문에 빈방이 없다고 난감해했다. 방이 없으면 다이닝룸이나 식당에서 재워준다고 하는 이야길 들어서, 꼭 방이 아니어도 잘수 있음 괜찮다고 하고 계획대로 시누와까지 가기로 했다. 결국 극적으로 방을 구할수 있었고, 우린 이 시즌에 모든 일정을 방에서 잔 몇 안되는 트레커 팀이었다. 디펜드라 완전 에이스갑...

변화무쌍 네팔길

여튼 부지런히 시누와까지 가야했다. 여지없이 일곱시반 출발.  

보통 디펜드라는, 아니 네팔사람들은 조금 오르막은 그냥 ‘평지’로 부른다(일명 네팔 평지). 그런데 오늘 촘롱과 시누와 오르는 길은 분명히 ‘오르막’이라고 했겠다. 그렇다. 오늘은 그냥 빡센 날인 것이다.

체념하고 출발을 하긴 했지만, 대체 왜 네팔 사람들은 능선을 따라 등고선처럼 길을 내지 않고 계곡까지 쫘악 내려갔다가 다시 쫘악 오르도록 길을 만들어놓은 걸까??? 바로 건너편 중턱 마을이 목적지인데 저~~~~~~기 맨 아래 계곡까지 갔다 올라와야 한다니, 억울하다. 만만한 디펜드라에게 농담반 진담반 징징거렸더니, 이 착한 청년이 하는 말이 “미안합니다...”. 아차...디펜드라가 무슨 죄야...

흑흑. 저질체력 누나들을 만난 댓가가 너무 크다.


흔한 네팔길 풍경.jpg
다들 잘논다.

힘든 길엔 괴로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네팔 사람들이 그렇듯, 네팔길도 전형적 츤데레다.

이런 날 일수록 멋진 풍경, 사람들, 재미거리, 맛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

네팔 마을엔 아이들이 노는 그네가 하나쯤 있는데, 촘롱 가는 길의 한 마을에는 그네의 진화버전- 런던아이 부럽지 않은 핸드메이드 관람차가 있다. 산이 파노라마로 보이는 절벽위에.

이 호사로운 관람차에 당장 직접 타봤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심장이 쫄깃, 기분은 최고다. 이거, 돈을 받아도 될 것 같은데요? 그 앞에 학교에 기부할 수 있는 상자가 있어 조금의 돈을 넣었다.

그네 앞에는 언제나 네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다들 왜이렇게 미모가.... 한 꼬마의 눈이 너무 이뻐서 사진을 찍어 보여줬더니 한참을 좋아한다.

네팔표 관람차와 그앞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촘롱에 드디어 도착이다. 디펜드라는 기진맥진한 우릴 끌고 한국음식을 잘한다는 롯지식당으로 갔다. 이 구역 롯지의 메뉴판에서 라면은 많이 봤지만, 이 집엔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짜파게티, 오징어짬뽕까지 있다.

과장님네는 여기 음식이 입맛에 안맞아 잘 못드셨는데, 일치감치 자리를 잡고 상기된 얼굴로 김치찌개와 오징어짬뽕을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도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뭐죠? 이 맛은? 여기 한국인가요? 게눈 감추듯 순-삭. 아니, 다 누가 먹었어?!?

촘롱에서 점심. 여기 한국이야? 겁나 맛있네...

이제 본격적으로 ABC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체크포인트도 있고 표지판도 보인다. ABC에서 하산할때 다시 촘롱으로 와서 다른 길로 간다고 한다. 촘롱은 이 구역 교통의 요지다.

그래서 마을이 꽤 크다. 독일식 빵집도 있고, 라바짜 에스프레소를 파는 곳도 있다! 와우~!!

여기 시골사람 읍내에서 좀 놀다 가면 안되나요? 하지만, 앞에 설명한대로- 촘롱에서 시누와로 가려면 아래 계곡 끝까지 내려가서 다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아....하산할때도 다시 여기로 온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그때 디펜드라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했다. “그때 걱정을 왜 해요”


ABC가 가까워졌나봐.

우린 계곡으로 내려가지만 ABC로 가는 길이고, 아래 계곡에서 촘롱으로 올라오는 트레커들은 하산하는 길이다.

그래도 우리가 아직 상태가 좋아 올라오며 헉헉거리는 사람들에게 곰세마리, 레썸삘릴리 노래로 응원을 해줬다. 아마도 며칠후 같은 모습이 될 스스로에 대한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계곡 끝까지 내려가 다리를 건너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노래는 커녕 말수가 급 줄어든다. 헉헉 숨소리만 내다가 가끔(자주) 쉬자고 승질내기. 진상이 따로 없다. 과장님네는 오늘 시누와 다음 마을인 뱀부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는데, 이미 시간도 늦고, 방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마침 시누와에 4명 방이 있다고 해서, “과장님들!! 이 시간에 어떻게 더 가요? 오늘 여기서 백숙 한마리 어때요?”라며 꼬셨더니 넘어오셨다. 이때부터 데우랄리, ABC, 다시 시누와에 올때까지 내리 4박을 과장님네와 방을 쉐어하게 된다.ㅎㅎㅎ 완전 한팀.


저 건너편까지 가야한다. 이런 다리를 지나면? 아이고 계단!
시누와에 도착!!


츤데레 쉐프의 매력에 풍덩

가까스로 시누와의 '셰르파롯지'에 도착. 곧 죽을 것 같았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정신이 살아난다. 방에서 보는 뷰도 멋지고, 돈을 내면 핫샤워까지 가능하다! 게다가 우린 백숙을 먹기로 했다. 완전 힐링 데이!

트레킹 이후 처음으로 핫샤워를 한 뽀송뽀송한 몸으로 다이닝룸에 내려와 신나는 주문 타임! 닭을 통째로 푹 삶아낸 4,000루피짜리 백숙과, 내눈을 의심하게 만든 ‘삶은 양배추 쌈밥’을 시켰다.

트레킹을 걸으며 가끔 보이는 이 곳 닭은 유난히 크고 근육질을 자랑한다. 토종닭 백숙이 일반 백숙보다 비싼 이유다. 백숙을 주문하면 따로 죽을 끓어주는데, 내일 아침으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해주는 센스...와우.

거기에 삶은 양배추 쌈밥이라니...! 낮에 촘롱 김치찌개도 밥이 날려서 못먹겠다 하셨던 과장님께서도 엄지척. 이 분들을 붙잡은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한국요리를 이렇게 잘하다니. 디펜드라가 이집 쉐프를 소개해줬는데, 상상과는 달리 빨간 티셔츠에 파란 모자를 얹은 다부진 몸을 가진 젊은 청년이다. 우리가 맛있다며 치켜세워주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쿨하게 돌아섰다. 메뉴판을 절도있게 정리하는 모습이나, 문에 기댄 몸의 각도가 심상찮다. 90년대 순정만화 반항아 남주인공이 겹친다.(기억나니 푸르매..?) 손끝 하나하나 기름기가 흐른다. 네팔 츤데레의 최고봉을 여기서 만나는 구나...! 그의 매력에 취하며 시누와에서의 밤이 지난다.


백숙과 양배추밥을 히말라야에서 먹고 있을줄이야.
츤데레쉐프 짱! 저멀리 우리가 지나온 촘롱이 별처럼 보인다.


DAY 5

Sinuwa > Deurali


시누와는 아래 마을과 윗 마을이 있는데 우리는 아래 시누와에 묵었다. 7시 반에 출발해, 위쪽 시누와-뱀부-도반-데우랄리까지, 우리 속도로 8~9시간이 걸리는 강행군이다. 데우랄리에서 자고 다음날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까지 간다. 헐! 벌써...?

어느새 마차푸차레가 성큼 와 있다. '성역'처럼 밖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는 '안나푸르나'도 내일이면 볼 수 있다.

츤데레 셰프의 백숙 죽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했다.

롯지에서 보이는 마차푸차레. 백숙죽 먹고 출발!

네팔의 미스터리. 왜 늘 아침을 그렇게 든든하게 먹는데 이리도 금방 허기가 찾아오는가?

오르막 30분만에 허기짐이 찾아왔고, 뱀부 쯤 와서 힘을 내려고 스프라이트를 사먹었다. 며칠 전엔 같은 값에 500ml 페트병을 줬는데 여긴 작은 캔을 준다. 고지대로 오긴 온 모양이다. 스프라이트 약빨은 딱 5분 지속되었다.

오늘밤부터 고산병을 걱정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시골 동네길과 다르게 길도 확실히 터프해졌다. 물이 흘러 길이 끊어진 구간도 있고 정글같은 곳도 지났다. 진짜 오지로 들어가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는 마차푸차레
꽃받침밖에 모르는 바보

오늘도 오전은 점심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오후엔 저녁을 먹겠다는 의지로 걷는다. 이름처럼 대나무숲이 즐비한 뱀부를 지나, 점심을 먹을 도반에 도착했다. 등산화를 벗고 잠시 발에 햇빛을 쐬인다.

볶음밥 위에 계란후라이 투척 신공을 터득했다. 아...처음부터 이렇게 먹었어야 했는데, 후회막급이다.

함께 시킨 네팔식 치즈감자도 살짝 매콤한 양념에 치즈가 후하게 뿌려져있어 대만족. 정말 이 트레일에 롯지의 쉐프들은 다들 실력이 대단하다. 매끼 감동하는 트레커 1인.

점심먹으러 들른 도반.


모두에게 즐겁지만은 않은 길

사실 어제 시누와에서 방을 구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한국 단체 트레커팀 때문이었다. 유명한 해X여행사의 단체팀이었는데, 20명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시끄러울까 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그들을 위한 다이닝룸이 따로 있었다. 신기하게도 쿠커가 동행하고 직접 한식으로 밥을 해먹으며 이동한다고 한다. 그들의 방문앞에 엄청 큰 빨간 카고백이 여러개 놓여져 있었는데 그런가보다 했다.

내몸 가누기 힘든 오르막에 지쳤을 오후 즈음에, 땀이 범벅된 짐꾼들이 우리를 지나쳤다. 놀라운 건, 어제 봤던 그 큰 빨간가방을 3개씩이나 묶어 머리로 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쪼리를 신고서. 아마도 30~40키로는 족히 넘을 그 짐은, 짐꾼의 몸 크기보다 커보였다. 그들 뒤로 커다란 플라스틱 항아리를 이고 가는 짐꾼이 있었는데, 낯익은 냄새가 난다. 바로 그 팀이 먹을 김치를 옮기고 있단다. 그들은 모든 음식재료와 심지어 그릇, 수저까지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게다가, 트레커가 롯지에 도착하기 전에 도착해 밥 준비를 해두고, 밥을 먹고 난 후엔 설거지를 해서 모든 짐을 가지고 다음 롯지로 이동해야 한단다. 게다가 대부분 롯지에서 김치찌개나 라면을 팔고 있다. 저런 방식이 더 싸게 먹혀서- 단지 그 이유일 것이라 짐작한다.

여행이 한편으론 잔혹하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순간이 많지는 않다. 나 역시 짐을 남에게 지게 하고 여행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따져보면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이 저들의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생계가 걸린 일에 섣부른 동정심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선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따라 발걸음이 더 무겁다.

한국인 트레커 짐을 들고 가는 짐꾼들. 김치를 직접 들어봤는데 난 들리지도 않음.


한걸음 한걸음 올라 드디어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오늘도 4시가 훌쩍 넘었다.

데우랄리는 3,240m로, 이제 마의 3천고지를 넘었다. 저녁이 되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싸늘함이 엄습한다.

오늘부터 고산병을 조심해야 한다. 계속 고민하다 고산병약 반알을 먹기로 했다.

롯지도 이제 진짜 산장같다. 침대(나무박스?) 4개로 꽉찬 어둑한 골방에 짐을 풀었다. 이것도 못구한 많은 트레커들은 다이닝룸에서 자야한다. 이렇게 다이닝룸에 트레커가 가득찼는데, 원래 다이닝룸에서 자던 가이드나 포터들은 어디서 자냐고 디펜드라에게 물어보니 뒤쪽에 숙소가 있단다. 잠깐 보여줬는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비닐하우스다. 이 곳에서 20명 넘는 가이드포터가 모여 잔다고 했다.

다이닝룸에 트레커들이 꽉꽉 찼다. 피자는 맛있네

마음도 숙소도 추웠지만, 저녁으로 먹은 피자는 왜이리 맛있는 거임? 이놈의 입맛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더 살아난다.

고산병 예방을 핑계로 핫레몬을 계속 리필해 먹고 일치감치 잠에 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ABC로 간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안나푸르나 #ABC #시누와 #데우랄리


2017 히말라야트레킹 이야기

(1) 내가 히말라야를 간다고?

(2) 불타는 설산을 보러, 푼힐

(3) ABC 턱밑까지 왔다

(4) 드디어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5) 오스트레일리안'힐링'캠프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여행기 1편

*2012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1편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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