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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Sep 04. 2020

[히말라야트레킹]드디어,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2017 히말라야트레킹 이야기(4)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2017년 히말라야트레킹 당시 기록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2017 히말라야트레킹이야기 (3)


DAY 6

Deurali > Machhapuchhre Base Camp > Annapurna Base Camp


아침에 맑다가 흐려지는 날씨 패턴은 고산일수록 더 명확해졌다. 오늘은 데우랄리에서 마차푸차레베이스캠프(MBC)까지 2~3시간, MBC에서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까지 2~3시간 가면 된다고 해서, 좀 천천히 움직여 보나 했는데- MBC에 열시전에는 도착해야 맑은 하늘의 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11시쯤 구름이 끼면서 급속도로 추워지기 때문에, 해가 있을때 최대한 많이 가야 한다. 여지없이 7시쯤 출발이다.

어쨌건 오늘은 ABC에 도착한다. 대박.

스멀스멀 보이는 찐설산의 기운. 가는 길에 꽃밭이 펼쳐졌다.
여긴 스위스인가?

오후의 데우랄리는 안개끼고 스산하기만 했는데, 빛이 비추니 다른 세상이다. 데우랄리에서 MBC로 커다란 계곡을 따라 가는데, 마치 알프스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아름답다. 며칠 전까지 꽃이 잔뜩 피어 있었던 것 같은 들판에 예쁜 꽃이 몇몇 남아있다. 여기서 꽃받침 사진을 빼놓을 수는 없지. 그렇게 즐거운 발걸음으로 마차푸차레베이스캠프에 10시에 도착했다.

꽃밭에선 꽃받침이지
물고기꼬리가 너무 가까워!

ABC에 자리가 부족해 MBC에서 묵고 일출때 ABC에 갔다오는 경우가 더 많다는데, 우리는 능력좋은 가이드덕에 ABC에 묵게 되었다.

MBC에서 한껏 가까이 보이는 마차푸차레를 느긋히 감상하기로 했다. 산이 롯지를 완전 감싸는 형국인데,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의 조화에 탄성이 절로 난다. 풍경을 즐기며 간식으로 먹은 삶은 계란이 또 꿀맛이다. 야들야들 딱 적당히 익은 신선한 반숙란! 풍경맛집에 계란맛집이네!

만나면 좋은 친구~ MBC~


여유롭게 MBC를 즐기고 싶은데 갑자기 계곡에서 구름이 쫘악 몰려온다. 출발할 때가 되었다.

MBC에서 부리는 여유. 물고기꼬리가 잘렸네...
저 뒤 너머에 ABC가 있다. 계란뒤로 보이는 희미한 마차푸차레.
뭉게뭉게 구름이 순식간에 주변을 채운다. 떠날 때가 왔다.

순식간에 냉기를 품은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주변을 감싸버린다. 걷고 있어 춥지는 않은데, 멈추면 안될 것 같다. 4,000미터를 넘으니 숨이 차고, 손이 저리다. 다리에 뭘 매단 것처럼 무겁다. 몸의 속도는 너무 더디고, 덩달아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한시간 같이 느껴지는 오르막을 올랐더니 고작 10분이 지났다. 한걸음 한걸음 세면서 나아갔다.

세상에!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 보인다. 저멀리 ABC입구가 세워져있다. 입구가 손에 닿은 건 눈에 들어오고서도 한참을 지나서였다. 으아아. 나 눈물 좀 흘려도 될까?  이 문을 부둥켜 안고싶다.

해맑아 보이지만 죽을맛이었음...
나는 존재한다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한때 등산이라면 기겁했던 나같은 사람이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라니.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하고부터, 오늘 아침까지, 한순간도 확신할 수 없었다. 중간에 꼭 포기할 것만 같았다. 포기해도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내가 여기 와있다. 늘 포기하고 타협하며 살아온 인생에서 뭔가 하나 정도는 이루어낸 느낌? 그래, 그거면 됐다.


허기가 배에서 뇌까지 치고 올라온다. 이런 순간엔, 내 소울 푸드, 라면을 먹어야 한다. ABC에서 라면이라니, 이것이야말로 플렉스! 그런데, 라면이 원래 맛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맛있었나? 탄수화물과 짠 국물이 삽시간에 내몸의 일부가 된다. 라면 한그릇에 3시간 반동안 추위에 시달린 몸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우리 짐을 들고 먼저 가서 기다린 비스무허리. 캠프안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
ABC에서 만난 인생라면. 핫레몬 빅팟 하나요!

늦은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주변이 보인다. 살짝살짝 구름 사이로 설산이 보여 기대감을 높인다. 롯지의 뒷편으로는 박영석대장을 포함한, 이곳에서 산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기리는 비석들이 있다. 목숨을 걸고 설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여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들의 흔적이 눈앞에 실존하고 있다. 나도 여기까지 온 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들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온 건 아닐까? 단지 ‘히말라야’이기 때문에.

박영석대장의 비석에 가서 묵념을 하고, 언니는 가져온 소주를 놔두었다. 매일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들 덕에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박영석대장의 비석과 안나푸르나.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통을 끌어안고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ABC일출을 볼 것이다.


DAY 07

Annapurna Base Camp > Sinuwa


내 인생 별이 가장 가까웠던 순간

고산증세인지, 긴장을 한 탓인지- ABC에서의 밤, 잠을 설쳤다. 화장실 때문에 세번, 별보려고 두번 밖에 나갔다. 자정쯤에 밝은 보름달에 설산이 환하게 보이는 환상적인 장면을 한참을 보다가 들어왔다. 2시쯤 나갔더니 온통 안개라 불안해 하며 잠에 들었고, 4시쯤 일행중 한명이 별이 완전 많다고 해서 우루루 다같이 밖에 나갔다.

은하수가 보이는 별하늘 아래 설산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내가 이렇게 높이 올라왔으니 그만큼 별도 가까이 보이는 걸까? 주변이 밝아오면서 아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5시반 정도에 나가서 일출을 보기로 했다.

해가 뜨기 직전, 여명으로 하늘 색깔이 독특하다

일치감치 사진찍기 좋은 자리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있다. 그 사이를 삐집고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설산은 일출 준비를 끝냈다는 듯이 한껏 기세등등하다. 거대한 안나푸르나남봉이 무섭게 눈앞에 있고, 360도로 안나푸르나산군이 펼쳐져있다.

일출전 여명으로도 산의 존재감은 위압적이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만세, 꽃받침, 점프....

산은 귀엽다는 듯 우릴 보고 있다. 슬슬 하늘이 다 밝았고, 안나푸르나 남봉 끝에서부터 붉은 빛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장관이 시작된다. 푼힐에서는 붉게 물드는 정도로 보였다면, 여기선 정말 눈앞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빠알갛다.

화내듯 불타오르던 설산은 이내 평정심을 찾은듯 하얗게 바뀌었다. 정말 눈부신 하얀색이다. 반대편 마차푸차레는 해가 떠오를 방향이라 빛을 못받았다. 파란빛이 감도는 마차푸차레가 하얗게 빛나는 안나푸르나 남봉과 비교가 된다. 냉정과 열정사이?

박영석대장 비석 앞에 있던 과장님네와 함께 조우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아침식사를 주문한 여섯시반. 산 위로 해가 떠오르는 건 일곱시가 넘을 예정이란다.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냉정과 열정사이.

스프링롤과 삶은 계란으로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해가 솟아오르는 장면을 보기위해 다시 나왔다.

그때 막 헬리콥터가 날아와 관광객들이 내린다. 헬리콥터는 30분 정도 머무르고 다시 포카라로 내려간다고 한다. 헬리콥터 관광팀이 줄줄이 계속 온다.

날아서 온 사람들보다 6일 걸어서 온 내가 감동이 족히 열배는 되지 않을까?(괜히 비교)

그런데- 걸어서 오기 어려운 겨울시즌에 헬기를 타고 와서 눈을 밟아보면 완전 대박이겠다는 상상을 했다. 버킷리스트를 조심스레 하나 추가한다.


그렇게 헬기를 구경하다, 갑자기 마차푸차레 옆으로 레이저 광선같은 빛이 터져나온다. 하늘과 가까워서 그런가, 태양도 더 눈부시다. 선글라스 없이 나왔는데, 실명하는 거 아니야? 건너편 산을 빨갛게 불태운지 한시간 후에야 태양이 솟아오르는 건, 산들이 서로 경쟁하듯 높은 탓이다.

해가 떠오르니 내내 서늘했던 ABC에도 그늘이 사라지고 훈훈함이 감돈다. 조명이 켜지듯 주변이 선명해졌다.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 꿈 속은 아니겠지? 일단 사진으로 남기고 보자!

태양광선이 터져나온다
ABC에서 건진 인생샷
합성 아니에요!

내려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 이틀전 머문 시누와의 셰르파 롯지에 다시 묵을 예정이라 8~9시간을 내려가야 한다. 하루 더 묵었으면 했지만 성수기라 어쩔수 없다. 아쉬운 마음에 괜히 늑장을 부리는데, 디펜드라가 재촉을 한다. 일기장에 끄적거린 흔적을 롯지 구석에 붙여놓고, ABC를 나왔다.

나 여기 있었어. ABC, 안녕!


ABC에서 MBC가는 길, 어젠 분명 냉기품은 안개로 가득차 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다. 너무 예뻐서 두리번 거리니 디펜드라가 빨리 가자고 한다. 힝....풍경 맛집 MBC도 후다닥 지나치며 죽을똥 살똥 올라왔던 계곡을 X2 속도로 내려간다.

나의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안녕, ABC!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한복입은 여행자
내려가는 길이 너무 예뻤다!


디펜드라! 시누와에 약속있지?

계속 재촉하는 디펜드라에게 시누와에서 여친이 기다리고 있냐며 우리 못가니까 전화해서 취소하라고 언니가 놀려댔다. 디펜드라는 웃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중에 지도를 체크해보니 오늘 걸은 거리가 18km나 되었고, 고도 기준 1,000m 이상을 한번에 내려가는 것이었다. 거기다 피로도 누적되어 트레킹 열흘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MBC, 데우랄리, 데우랄리, 도반, 도반, 뱀부, 뱀부, 뱀부.... 가도가도 시누와는 나오지 않는다.

너무 힘든데 사진은 찍는다. 저 다리 드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그나마 남아있던 영혼과 체력을 ABC에 두고 온게 틀림없다. 비실비실 셰르파 롯지에 도착한 건 어둑어둑해진 5시 반이었다. 총 걸은 시간은 10시간.

한번 묵었다고 익숙해진 셰르파 롯지에서 핫샤워를 하고 츤데레 셰프의 수준급 요리로 저녁식사를 하니,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사람이 된 것 같다. 시누와 셰르파 롯지는 힐링입니다.  

오늘도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안나푸르나 #ABC #MBC #시누와


2017 히말라야트레킹 이야기

(1) 내가 히말라야를 간다고?

(2) 불타는 설산을 보러, 푼힐

(3) ABC 턱밑까지 왔다

(4) 드디어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5) 오스트레일리안'힐링'캠프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여행기 1편

*2012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1편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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