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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Nov 05. 2018

[뚜르드몽블랑]위로, 위로 오르는 사람들

2018 뚜르드몽블랑(TMB) 일주(1)샤모니에서 레꽁타민몽주아

언니, 왜 몽블랑에 오고 싶었어?


뚜르드몽블랑(Tour de MontBlanc). 약자로 TMB. 여긴 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곳은 아니었다. 심지어 몽블랑은 만년필 이름으로, 뚜르드몽블랑은 선수들이 자전거로 도는 곳인 줄만 알았다. TMB는 작년 네팔 트레킹을 함께한 동지 언니의 오랜 꿈이라 했다. 언니는 어렸을 때 등산모임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 곳 언니오빠들이 다들 그렇게 TMB를 가고싶어하더라며, 어느새 자신도 가고 싶더란다. 등산덕후들의 워너비라, 좋은 곳이긴 한가보네 하고 따라왔다. 하, 그런데 장난이 아니다. TMB 3일째 되던 날, 동행 언니에게 던진 내 질문의 본심은 이것이었다.
"언니, 이렇게 힘든 곳에 대체 왜 오고 싶었던 거야?"

뚜르드몽블랑이란, 유럽의 지붕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을 오르는 것은 아니고) 산군을 중심으로 해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열흘여간 한바퀴 일주하는 160~200km의 고전적인 트레킹 코스이다. 이 TMB의 중심에 몽블랑(4,810m)이 있다. 몽블랑은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에 불과하지만, 근대 등반의 시작을 장식한 곳이다. 전쟁을 하러 가거나 사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꼭대기에 오를 목적으로 사람이 산에 오른 것은 1786년 샤모니의 자크 발마(Jaque Balmat)와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Michel Gabriel Paccard)의 몽블랑 등반이 최초다. 그들은 어째서 난데없이 산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었을까? 그들을 따라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산에 오를 목적으로 목숨을 걸고 있다. 한계에 대한 도전, 산위에서만이 볼 수있는 멋진 풍경... 단지 그런 것들 때문인가?
이 질문은 이번 여행 내내 되뇌는 질문이었다. 힘든 고비마다 속으로 물었다. 나는 왜 여기 온 걸까? 대체 왜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는 걸까?

몽블랑을 최초등반한 자크 발마(Jaque Balmat)와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Michel Gabriel Paccard) 동상. 샤모니의 상징이다.


일년전 충동적으로 제네바행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내내 준비를 해야했다. 네팔 트레킹에서와 같은 가이드는 꿈도 못꿀 유럽 물가에, 한국어 정보는 충분치 않았다. 어쩌다 보이는 한글 후기엔 네팔 트레킹보다 난이도가 높다고 했다. 설상가상 우리가 가는 추석 즈음은 이미 트레킹 시즌이 끝나 문을 여는 산장이 얼마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캠핑을 할까?’ 호기롭게 나섰다가 20킬로 짐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포기.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띄엄띄엄 10월 초까지 운영하는 산장을 겨우 찾아 일정을 개척했다. 가장 관건은 짐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최대한 가벼우면서 점심으로 먹을 생존 식량까지 가져갈수 있을까 고민하며 배낭을 싸고 또 쌌다. 최선을 다해 줄인 7kg 배낭은 믿을수 없을만큼 묵직했고, 나는 떠나기도 전에 잔뜩 쫄아버렸다.
“이걸 메고 열흘을 걷는다고?”


작년 (포터가 배낭 들어다주는)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한번 해봤다는 어줍잖은 자신감에 일을 벌였구나, 싶었다. 그런데, 왠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뚜르드몽블랑이라는 유명세가 맘에 든건지, 포기하면 지는 것 같은 한국인 특유의 똥고집 때문인건지, 준비하면서 볼 수 밖에 없는 TMB의 사진들에 기대감이 커진 탓인건지 모르겠다. 걱정과 기대가 반복되는 시간이 지나 드디어 출발할 날이 왔다.

줄이고 줄인 우리의 배낭ㅠㅠ

한국시간 낮 12시쯤 출발한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경유해 스위스의 제네바에 밤 9시가 넘어 떨어졌고, 예약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 샤모니에 도착한 건 밤 12시였다. 이동시간은 20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시차를 빼고 보면 12시간만에 4개 나라를 거친 것이다. 햐, 새삼 지구가 작구나 놀랍기도 하고 이 무슨 고생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방금 도착했다고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우린 첫날 코스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 내일까지만 운영하는 케이블카를 타야했다. 이거 못타면 걸어서 올라가야해!!

비수기라는 운명의 장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날 첫날의 아침이 밝았다. 10일간 매고 걸을 배낭을 들쳐맸다. 이 무게감. 마치 이 트레킹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내 두려움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아, 겁나 무겁네.


TMB 일주를 하는 사람들은 샤모니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레우쉬(Les Houches)에서 벨뷔(Bellevue)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트레킹을 시작한다. 다행히 마지막 케이블카는 문제없이 운행했다.  
케이블카 덕에 다른 날보다는 수월했지만, 400미터, 200미터 두개 고개를 오르고 500미터를 격하게 두번 내려가야 한다. 계속 지도를 눌러보고 눌러본다. 혹시 고도가 잘못됐을까 하는 헛된 기대...

 레우쉬(Les Houches)의 벨뷔(Bellevue)행 케이블카

그렇게 등뒤의 배낭의 무게와 오늘 묵을 숙소가 있는 레콩타민몽주아(Les Contamines-Montjoie)까지 갈수 있을지에만 신경이 곤두서서 걸어가던 순간, 눈앞에 빙하가 갑자기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만년설 산맥이 '아까부터 있었어요'하고 서있다. 헐.

어디를 둘러봐도 빙하와 설산이 위용을 뽐낸다.

이 비현실적 광경은 열흘내내 이어졌다. 아침부터 날씨도 화창하다. 와. 갑자기 뿌연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아, 그러고보니 나 이걸 즐기러 왔지.


첫번째 오르막인 트리코고개(Col de Tricot)를 오르는데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벼운 가방을 매고 오르막을 막 뛰어올라간다. 수시로 쉬어가며 고개를 겨우 오르자 갑자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트리코고개에서 만난 셰퍼트 친구
트리코고개 건너편은 또다른 절경이다

정상을 잠깐 즐긴 후 격한 내리막을 한시간 동안 내려가면 미아지산장(Refuge du Miage)이 있다. 산장은 운영을 안하지만 식당은 성황 중이다. 가족단위로 친구들끼리 야외에서 푸짐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행히도 예약이 차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맥주 한잔에 만족해야 했지만 즐거워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시즌이 끝나 TMB를 일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주말에 하이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암벽등반하러 오는 사람, 뛰어서 오르는 사람, MTB자전거를 탄 사람 다양했다. 아이들과 함께 오기도 하고, 특히 강아지를 데리고 하이킹을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강아지들이 꽤나 높은 고개도 곧잘 따라 오르는 걸 보니 한두번 함께 한게 아니다.

미아지산장 가는길. 알프스 달력같은 모습이다.
주말 소풍온 사람들을 한참 구경했다.
주인과 놀다가 계곡에 뛰어든 골든리트리버의 행복한 표정.

1년간 미지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뚜르드몽블랑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내가 짓눌려있던 것일까? 이들은 마치 동네 산에 오듯 이렇게 가볍게 즐기고 있는데.(실제로 동네 산일수도 있다!) 등 뒤 배낭의 무게에 신경쓰기엔 내 앞에 펼쳐진 모습이 너무 멋있잖아. 짐이 무겁긴 하지만 슬슬 적응이 되어갈 것이었다.

트뤽산장 오르는 길에서 본 미아지계곡
트뤽산장 가는길의 파노라마

대체 왜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가. 그 질문의 답은 TMB를 다녀온지 몇주가 흐른 지금도 논리적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첫날, 그 미아지산장에서 본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막연히 이해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것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왜?’라고 물을수는 없을 것이다. 힘든 건 어느새 지나가 잊어버릴 것이고- 눈앞의 CG같은 풍경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땀을 흘리는 좋은 기분만 남아 다시 찾게 되버리는 그런 것. 그런 도전들이 모여 취미가 되고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저 사람들처럼.

그렇게 첫날의 두려움을 약간 떨쳐냈다. 이제 첫날이다. 즐길 일만 남았다.


#TMB첫날 #샤모니_레콩타민몽주아 #날씨끝내줌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트레킹 이야기

TMB01 위로, 위로 오르는 사람들

TMB02 힐링데이인줄 알았는데 

TMB03 니 체력을 니가 알라 

TMB04 내가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남매 

TMB05 몽블랑도 식후경 

TMB06 도시녀를 위한 TMB의 배려 

TMB07 TMB의 화양연화, 바로 오늘

TMB08 페레고개를 넘어 스위스로

TMB09 알고보니 찐클라이막스

TMB10 꿈같은 열흘, 다시 샤모니로

TMB도전 직장인을 위한 여행정보 총정리


*2017 히말라야트레킹 여행기 1편

*2012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1편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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