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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Nov 27. 2018

[뚜르드몽블랑]힐링데이인줄 알았는데

2018 뚜르드몽블랑(TMB) 일주(2)레콩타민몽주아에서 뜨렐라떼뜨

첫날, TMB에서 제법 큰 마을인 레콩타민몽주아( Les Contamines-Montjoie)의 작은 호텔에서 묵었다. 하지만 다들 여름 성수기 장사를 끝내고 휴가를 간 모양인지 전체 마을에 문을 연 가게는 작은 빵집 한군데 뿐이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로 멘탈과 몸을 회복하고자 했지만, 호텔방에서 전투식량으로 챙겨간 알파미와 깻잎반찬으로 저녁을 떼워야했다. (가방 무게를 빨리 덜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그래도 편히 몸 뉘일수 있는 아늑하고 깨끗한 방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8시쯤 떡실신..아니, 잠에 들었다.

숙소의 정원에서 달콤한 휴식...

첫날을 지내고 나서, 비수기에 가게가 언제 열지 모른다는 것과 아침에 방에서 아침을 해먹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조식이 있다면 좀 비싸더라도 무조건 먹자고 언니와 합의했다. 그렇게 처음 먹는 14유로의 프랑스 조식은 다양한 빵과 치즈, 잼, 요거트, 고소한 커피맛까지 너무나 완벽했다. 으와, 정말 내가 프랑스에 왔구나!!!

넘나 완벽했던 첫 프랑스식 조식!

아침부터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은- 아침식사의 훌륭한 덕분일수도 있지만- 사실 오늘 걷는 일정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보통 TMB 일주를 하면 둘째날 발머산장(Refuge de la Balme)이나 본옴므산장(Cross shelter Bonhomme)까지 가서 묵는다. 하지만 발머산장은 문을 닫았고, 본옴므산장은 꽤 먼 거리라 자신이 없어, 변형루트인 뜨렐라떼뜨(Tre la Tete)빙하의 산장을 잡아두었다. 레콩타민몽주아에서 3~4시간 거리라 도착후 점심을 먹고 쉬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호텔의 매니저에게 뜨렐라떼뜨에 간다고 하니 대번에 ‘Oh, beautiful!’이란다. 기대 만빵!


마을에서 뜨렐라떼뜨로 이어지는 산길의 입구가 나타났는데,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처럼 생겼다! 발을 들이면서부터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그야말로 뷰티풀한 숲길이다. 빽빽하게 터널처럼 들어찬 이름모를 나무들, 그 사이사이 낀 이끼들과 작은 꽃들과 귀여운 버섯들이 감각있는 플로리스트의 솜씨처럼 적재적소에 위치해있다. 게다가 날씨가 좀 흐렸는데 오히려 수분이 가득한 공기가 이 길의 아트웍에 완성도를 더한다. 저 나무 뒤에서는 엘프라도 나올 기세다. 언니와 이 예쁜 숲길에 감탄하며 걸으니 오르막이 힘든지도 모를 정도다. 어제는 그렇게 광활한 파노라마를 보여주더니 오늘은 이런 아기자기한 숲길이라니. TMB 루트의 아카데미급 연출자가 있는 건가?


뜨렐라떼뜨로 가는 숲길 입구. 숲길을 잠시 감상해보자
우리 치미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천천히 오르니 오늘 묵을 뜨렐라떼뜨 산장이 안개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안개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산장의 위치나 각도가 심상치 않다. 다음날 아침에야 이 산장 앞의 탁 트인 풍경을 볼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와 또 한번 감탄사를 내뱉았다.

“oh, beautiful!”

도착날과 다음날의 풍경 갭차이

점심을 대충 먹고 기분좋게 늘어졌다. 겨우 이튿날부터 방학모드라니, 너무했나? 하지만 그 다음날이 나에겐 TMB 통틀어 제일 힘든 날이었다. 언니에겐 첫날이 그랬다고 했다. 둘째 날의 휴식은 본능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TMB는 본능과 자연의 순리대로 흐른다.


그렇게 환상적일 줄로만 알았던 그날 저녁에 반전이 일어난다. 사건은 쉬는 김에 뜨렐라떼뜨 빙하나 다녀올까 하는 제안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괘씸한 제안을 누가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아마...나...) 산장에서 한 30분 거리라 해서 가벼운 산책처럼 나섰는데, 생각보다 길도 험하고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중간쯤 갔다가 돌아왔다. 산장의 방에 열쇠가 없어 지갑이나 중요한 걸 챙겨갔는데, 돌아온 후 한참 지나 언니의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여행 초반이라 환전해온 유로와 스위스프랑은 상당한 금액이었다. 방과 산장 근처를 다 뒤졌지만 없었다. 유력한 곳은 빙하 가는 길에 우리가 걸터앉은 바위. 언니는 거기서 유일하게 지갑이 들었던 호주머니의 지퍼를 열었다고 했다. 이미 어두워졌고 그 길을 다녀오기엔 위험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걱정과 공포로 거의 뜬눈으로 지새야 했다.

저기 어딘가 있을까?

분명 그 바위에 지갑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새벽 해도 뜨기 전에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뛰다시피 올라간 어제 그 바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과 걸었던 길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말을 잃었다. 어제 오늘 빙하로 가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기에 의심할 사람도 없었다. 그 묵직한 지갑이 간밤에 강한 바람에 빙하 아래로 떨어진 걸까? 근처를 돌아다니던 양떼 중 한 녀석이 잘근잘근 씹어먹어 버렸나?

지갑 어디갔니?
네가 가져갔니?

여행 내내- 아니 아직도 그 지갑의 행방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언니는 반나절 정도 우울해하다가 ‘겁나 비싼 여행이 되버렸군!’ 툴툴털고 여행에 집중했지만, 한동안 속으로 꽤나 속상해했을 것이다.

그렇게 휴가답게 ‘힐링’할 줄 알았던 둘째 날은 돌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남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가 트렐라떼뜨 빙하로 달려가는 건 아니겠지?


#TMB둘째날 #레콩타민몽주아_뜨렐라떼뜨 #쉬는날 #공포의지갑사건

둘째날 루트.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트레킹 이야기

TMB01 위로, 위로 오르는 사람들

TMB02 힐링데이인줄 알았는데 

TMB03 니 체력을 니가 알라 

TMB04 내가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남매 

TMB05 몽블랑도 식후경 

TMB06 도시녀를 위한 TMB의 배려 

TMB07 TMB의 화양연화, 바로 오늘

TMB08 페레고개를 넘어 스위스로

TMB09 알고보니 찐클라이막스

TMB10 꿈같은 열흘, 다시 샤모니로

TMB도전 직장인을 위한 여행정보 총정리


*2017 히말라야트레킹 여행기 1편

*2012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1편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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