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4) 본옴므산장에서 레샤피우
본옴므산장에서 맞은 네번째 아침은 심하게 화창했다. 간밤에 앓으며 흐트러진 정신과 함께 짐을 대충 챙겨 나와 등산화를 주섬주섬 신고 있는데, 단발머리 동양 여자애와 잘 생긴 골든리트리버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어라, 어제 못본 사람인데? 산장에 저런 개도 있었나?’
“한국 분이세요?”
나와 언니가 얘기하는 걸 들었나 보다. 첫날 혼자 온 남자분을 본 후로 한국인은 처음이라 무척 반갑다. 마침 그 골든리트리버가 이 친구 앞에서 어리광을 부린다. 어? 이 개는..
“저랑 같이 온 장군이라고 해요”
“네?"
이십대 중반의 이 귀여운 단발머리 친구는 한국에서부터 반려견 아니, ‘남동생 장군이’를 데리고 TMB 일주와 유럽여행을 하러 왔다고 했다. 어제 8시에야 산장에 도착해서 우리가 못본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뻗어버렸던 어제 그 공포의 오르막 코스를 반려견을 이끌고 왔다는 셈이다. 게다가 -텐트를 비롯한 각종 야영도구에 장군이의 열흘치 사료까지 채운- 거의 20kg의 (내 것의 4배쯤 되는) 저 배낭을 메고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하면서 해맑게 씩 웃는다. 하, 이 친구 장난아니네.
이 친구와 장군이의 체력만 놀라운 건 아니었다. 유럽에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반려견을 데리고 온 이 친구도, 그 긴 비행을 견디고 여기까지 온 장군이도-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다.
“저,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장군이 혼자 나오는 사진만 잔뜩이고 둘이 같이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고 했다. 그럼, 그럼요! 얼마든지요!
눈부신 햇살과 함께 탁트인 본옴므산장의 뷰 앞에서 이 남매의 뛰어노는 장면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다. 내 평생 이렇게 행복한 강아지의 표정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 친구의 눈에도 꿀이 떨어진다.
‘사랑이군...사랑이야!’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산장을 나섰다. 이날은 본옴므산장에서 거의 직하강하여 2시간쯤 내려가면 있는 레샤피우라는 마을의 작은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시리게 맑은 날씨를 즐기면서 쉬엄쉬엄 내려갔다.
점심도 되지 않아 도착한 호텔은 본옴므산장에 비하면 별다섯개 수준! 방도 깔끔한데다 주인 가족이 무척 친절하다.
미뤄둔 빨래를 해서 기분좋게 햇빛에 널어놓고, 동네 딱 하 나 있는 자그마한 슈퍼에서 빵과 치즈, 과일을 사다가 그 앞 야외 테이블에 점심상을 차렸다. 맥주까지 한잔하려는 참에 장군이 남매가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넉넉히 사둔 빵과 치즈를 셋이서 나눠먹는 사이 장군이는 따뜻한 햇빛에 일광욕을 했다.
장군이 누나는 고3시절, 장군이와 산책하는 시간이 큰 위로가 되었단다. 입시가 끝나면 좋은 곳에 가서 장군이가 맘껏 걷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 후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국내를 누비며 여행을 다녔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에 도전한 것이 여기라고 했다. 장군이는 제주도를 왔다갔다 하며 비행기 생명칸에서 혼자 몇시간을 참으면 좋은 곳을 간다는 걸 알아차렸단다.(장군이만큼 큰 견종의 반려동물은 비행석에 탈수는 없고, 켄넬에 넣은 채로 조종석 아래 생명칸에 타야 한다. 한번에 3~4마리를 태울 수 있단다.) 체력이 좋고 온순한데다 명석한 장군이는 여행 메이트로 더할나위 없다고 했다.
“제가 너무 팔불출인가요? 헤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가 남매는 일어났다. 우리가 묵는 호텔이 좋다고 꼬드겨 보았지만, 다음날을 위해 조금 더 가서 텐트를 치고 자겠단다. 잠깐의 작별인사를 했으나, 그 후로 이 남매와 우리는 TMB 내내 마주쳤고 함께 걸었다.
멋진 몽블랑의 풍경 앞에, 털이 풍성한 꼬리를 흔들대며 리듬감있게 걷던 장군이와 제 키보다 큰 빨간 배낭을 메고 야무지게 걷는 장군이 누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남매의 모습은 그렇게 내 카메라 앨범에 매일매일 담겼다.
#TMB넷째날 #본옴므산장_레샤피우마을 #이남매매력있네 #이번여행_핵인싸
*장군이 남매는 인스타에서 꽤나 유명하다. 더욱 사랑스러운 사진들을 볼수 있다.
Instagram: @peach2gold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트레킹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