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뚜르드몽블랑일주(10) 포르클라즈고개에서 샤모니
드디어, 마지막 날. 실화냐.
살짝 멍~한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이렇게 짐싸고 떠나는 것도 마지막이라니. 싸온 먹거리를 다 먹어치워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에 묘한 기분이 든다. 오늘 걸으면 이제 안걸어도 되는 거야…? 설레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크다. 휴가가 곧 끝나는 구나ㅠㅠ
아침식사와 미리 주문한 푸짐한 샌드위치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어제 그렇게 비-바람-눈의 쓰리콤보를 펼쳐졌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다.
호텔이 포르클라즈 고개 바로 아래 자리해 있는데 거기서 더 내려가면 르프티라는 목장마을이 나온다. 여기의 캠핑장에서 어제 장군이네가 묵었는데, 어제 날씨가 안좋다보니 고생을 좀 한 것같다. 남매와 발머고개에서 만나서 우리 샌드위치를 나눠먹기로 했다. 발머고개까지 꽤 오르막이었는데, 30분만에 뛰어올라가는 기록 수립! 그래도 장군이네는 추운 산장에서 꽤 기다림…;;
오르막 숲은 푸릇푸릇했는데, 해발 2,191m의 발머산장은 어제 내린 눈이 녹지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신기하네…어제 흐린 날의 눈풍경과 다르게 파아란 하늘아래 하얀 눈밭이 눈부시다.
산장은 운영을 하지 않고 내부 수리를 하던 중이라, 다행히 우릴 기다리던 장군이네가 건물 안에서 추위를 피할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샤모니로 돌아가지만 장군이네는 락블랑 호수에서 1박을 더 한 후 내일 트레킹을 마친다. 샌드위치도 나눠먹고 우리에게 남아있던 즉석가열연료와 간식들을 나눠줄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락블랑(Lac Blanc)은 몽블랑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라, 보통 TMB를 돌면 마지막날 락블랑에서 1박 후 샤모니로 가는 게 정석인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락블랑산장이 문을 닫아서 텐트가 없는 우리는 일단 샤모니로 돌아가 1일 코스로 가야하는 상황. 오기 전에는 그렇게 계획을 짜놓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은 볼만큼 봤고- 단지 호수를 보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의지는 1도 없었기에 깔끔히 포기. 이럴 땐 언니와 나, 너무 잘맞아.ㅎㅎ
여튼 발머산장에서 우리는 TMB 마지막 오르막을 졸업하고, 이제 마지막 내리막을 내려간다.
저멀리 산으로 둘러싸인 샤모니를 보며 내려가는 게 얼마나 가뿐한지, 느릿느릿 즐기며 걸어간다.
아래 마을 라뚜르La Tour까지 내려가 버스를 타고 샤모니로 간다. 락블랑으로 가는 장군이네와 작별인사를 했다. 첫날 샤모니호텔에서 챙겨준 버스카드를 보여줬더니 버스가 공짜! 개꿀… 기분좋게 샤모니로 돌아왔다.
시내중심 잡아둔 깔끔한 호텔에 도착해 말끔히 샤워를 하고 코인빨래방에서 열흘간 묵은 빨래를 한꺼번에 돌리니 속이 다 시원하다. 트레커의 도시 샤모니의 아기자기한 시내를 돌아다니며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기념품도 쇼핑하고, 레스토랑에서 거한 코스요리로 우리만의 마무리 파티를 했다. 다음날 장군이 남매와 2차 파티도 했지.ㅎㅎ
그렇게 열흘동안의 Tour de Mont Blanc
트레킹을 무사히 끝냈다.
엄청난 체력소모와 시즌 오프와 분실사고 등 다양한 우여곡절을 넘기고 무탈히 열흘일정을 마무리 했다는 것 하나로도 기적같은 일인데- 몽블랑은 정말 내가 가본 그 어디보다 끝판왕 풍경을 자랑했다. 어딘가 요들송이 나올 것 같은 알프스 달력 파노라마 사진은 기본, 아기자기 숲, 쥬라기 산맥, 마법의 눈꽃까지- 한마디로 ‘뭘 좋아할지 몰라 이것저것 다 준비했어’ 이런 느낌.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몽블랑님.
정말, 꿈같은 열흘이었다. 그리고 수고했어, 나도.
#TMB열번째날 #포르클라즈고개_샤모니 #스위스 #프랑스 #해피엔딩 #꿈같은열흘
뒤늦은 여행기, 에필로그
진짜 끝났다.
게으르게도 2년이 지나서야 TMB 여행기를 마무리했다.ㅠㅠ
이 무기력함을 코로나탓으로 돌리려 해도 너무 늦어 소용이 없다. 그래도 앓던 이를 뺀 느낌!
사실, 열흘 트레킹을 막 끝냈을땐, 매일매일 내 체력을 넘어서는 그 빡셈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한동안 걷기여행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이제 오랫동안 갈수없게 된 채 글을 쓰다보니 하나하나 그립고 아쉽기만 하다.
그저 별생각없이 걷는 여행이 하고 싶은 나날이다. 마스크없이.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트레킹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