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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지휘자처럼

지속 가능한 강사가 되고 싶다면

by 이소요

대기업 출신의 한 선배 강사는 8시간을 강의하고, 신입사원 월급의 2배 이상을 받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신입 교육 담당자가 자기도 강사를 할 수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왔다고 했다. 두 달을 꼬박 일해야 받는 돈을 8시간 만에 번다고 생각하면,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매력적인 직업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딱히 힘든 점도 없어 보인다. 시종일관 웃으며 말하는 모습만 보고 누군가는 편해 보인다고도 말했다. 모를 때에는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서너 시간 말만 하고 돈을 받는 직업처럼 보였다.




혹자는 지휘자를 보고 이런 질문을 한다. 무대 위에서 팔만 휘젓는데 없어도 되는 거 아니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휘봉은 거들뿐, 지휘봉을 들기까지 치열한 악보 분석과 해석, 음악적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장한나가 말러 교향곡 5번의 지휘를 맡아 준비하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말러의 일기장까지 찾아 읽으며, 작곡가의 시선으로 악보 위 음표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리허설을 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악보 분석만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강의도 그렇다. 마이크를 잡고 물 흐르듯 술술 말이 나오는 이면에는 맹렬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숨어 있다. 도입부에서 어떻게 아이스브레이킹을 해야 교육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어느 시점에 어떤 활동을 넣어야 교육 주제에 맞는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다. 고민-연구-설계-수정의 무한 반복의 시간을 거쳐야 무대 위에서 완성된 결과물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농담까지 설계할 만큼 준비를 탄탄히 했어도 변수는 늘 있다. 강의는 현장에서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비자발적으로 참여한 교육생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때에는 일방적인 전달로 끝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강사는 이 불협화음을 협화음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티 나지 않게! 지휘자가 눈빛, 표정, 몸짓 등으로만 실시간 소통하며 음악을 완성해 나가듯 말이다.


정답은 없지만 이때 나는 교안에 없는 스폿을 꺼내든다. 스폿이란 주의를 집중시키고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짧은 활동 또는 기법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무턱대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적절한 타이밍을 노린다. 활동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강의 주제와 관통되는 메시지를 깨닫게 할 때, 교육생의 태도가 달라진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은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처럼 지휘자가 나서서 박수를 만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음악이 완성된 공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돌린다. 음악이 만들어지도록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강의가 끝나면 강사도 박수를 받는다. 이 박수는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인생 강의’는 강사 혼자서 절대 만들 수 없다. 강사의 지휘에 박자를 맞추고, 호흡에 귀 기울 여준 교육생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때에만 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강사가 되고 싶은가. 지휘자처럼 강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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