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빵 Nov 29. 2024

문구점 속 아이들.

: 그 순수함에 관하여.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 따랐다.


나 역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았고 다가가는 게 스스럼없었다.

그래서 무인이어도 가끔 아이들과 마주칠 때면 꼭 알은체를 하거나 서비스를 주려했지만,

아이들은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하거나 도망치듯 사라졌다.   

 

요즘엔 낯선 사람들이 주는 걸 먹지 말라던가, 낯선 사람들과 말 섞지 않는다던가…

그런 교육을 많이 받은 세대라 반응이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교육적 반응 말고, 아이들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때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되바라지게 놀다가도 용돈을 얻기 위해 부모님께 전화할 땐 청학동 저리 가라로

아주 공손해진다던가, 키오스크 오류 앞에선 급격히 날 선 화풀이를 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랬다.  

    

뒤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어도 내가 주인인걸 모르는 경우,


‘여긴 왜 이런 걸 안 갖다 두냐’, ‘여기 망했나?’ ‘*나 게을러서 안 갔다 둔 거 아냐?’ 등등


나나 가게를 폄하할 땐 제법 씁쓸해지곤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데 가끔은 충격적으로 욕을 들을 때도 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아이스크림통 위에 하나씩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모습을 cctv로 보게 되었다.

잠깐도 아니고 그 위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한참 하는 아이들이 여럿이라, 카메라를 통해 직접 말을 걸었다. (키오스크 위에 설치된 소형카메라는 직접 말할 수 있는 마이크 기능이 있었다.)    

  

“얘들아, 아이스크림 통 위에 앉으면 안 돼. 내려와”      


그러자 그중 한 명이 카메라에 대고 ‘알았다고 이 ㅆ*아!’ 하더니 바로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죄송합니다.’

하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나가는데 화보다 충격이 앞섰다. 내가 AI도 아니고, 분명히 사람이 말을 했다는 걸 알았음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어이가 없었다.      


한 번은 초등 3학년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초 1 정도 되는 여동생과 같이 물건을 사러 온 적 있는데,

가게 안에 ‘발광하는 별모양 인형’을 여동생이 건드리자, 말 그대로 발광하는 모습에 기겁을 한 것이다.

그때 초3 남자아이가 갑자기 흥분하며 “꺼져. 이 ***야!” 하며 장난감에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꼬마야, 너 어디서 그런 험한 말을 배웠니!’ 하며 혼을 냈던 적도 있다.      


아이들은 선도 악도 순수 그 자체라 대단한 의도를 가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서 더 훈육에 기여를 해야하는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이외에도 아이돌 굿즈를 되팔겠다고 딜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나, 일부러 키오스크에 동전을 두 개씩 넣고 오류가 나자 잔돈이 덜 나왔다며 돈을 요구하는 아이가 있지 않나, 사지도 않을 물건을 험하게 만지고 던지고 터트리거나 고장 내는 기본이요. 작은 흠결하나 참지 못하고 교환을 요청하질 않나….


처음 한 두 번은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쌓이면 아이들에 대한 순수한 신뢰가 깨지고 의심의 불부터 켜게 된다.      





가끔 안쓰럽다 느껴지는 아이들도 있는데,

개업초기 약간 어눌한 말투에 침도 흘리는 모습의 중 2 정도 되는 남학생이 왔었다.   

   

 그 친구는 포켓몬 카드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는데, 우리 가게에 카드 종류가 많다며 혼잣말을 많이 했다.


마침 포켓몬카드 공부에 열을 올렸던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도움을 받았는데 과거 부모님이 문구점을 하셨던 경험을 설파하며, 우리 가게에 어떤 카드가 더 필요한지, 가격대는 어떤지, 물건 진열은 잘 보이는지 다양한 관점을 시사하며 의외로 야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중학생이 학원도 안 가고 낮 3시 전후 나타나는 게 신기해서 물어보니 부모님이 멀리 피자가게를 하셔서 집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묻지 않은 부분까지 참견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들도 들어주는 등 간단한 가게 일을 도와주는 그 아이 모습을 보고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포켓몬카드를 서비스로 주곤 했다.  

    

 또 문구점 물건을 험하게 만지며 여러 번 들락날락 거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다 가도 한참은 문구점에서 진을 치길래 어디 학원 다니냐, 어디에 사냐 이것저것 물었더니 학원 가기 전까지 할 일이 없다고 말하며 서성였다. 만지던 물건은 ‘살거니?’라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하긴 하지만, 돈이 모자란 지 계산은 못하고 정처 없이 헤매는 느낌이 들어 마주칠 때마다 소소한 관심을 보여주곤 했다.


반대로 기특하고 고마운 아이들도 많았는데.


키오스크 오류가 나서 현금계산이 안될 때 꼭 전화해서 돈을 어디 뒀다 이야기해 주거나, 바코드 등록이 안된 물건들은 같은 가격대 다른 걸로 찍고 물건을 가져가면서 리뷰수첩에 내용을 적어놓고 가는 아이들이거나... 어느 날은 물건이 쏟아져 있는 걸 카메라로 발견하고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주워달라고 마이크로 부탁하려는데 알아서 먼저 정리해 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또, (아직 용돈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매번 구경만 하지만 문구점에 오면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거나.. 자기 물건보다 동생 줄 선물을 신중하게 고르는 아이들을 볼 때면 흐뭇해지곤 한다.      


무인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 꼬마도둑인 줄 알면서도 선뜻 신고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들은 아이들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깨고 싶지 않아 더욱 신고하진 못하셨던 것 같다.      


시대가 변하고, 소통방식도 변했지만 문구점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들려야 하는 사랑방 같다.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휴식처가 되었으면 좋겠고, 용돈을 모으는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되어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를 겪고, 학업의 압박, 게임이나 미디어 중독 등 여러 스트레스를 가진 아이들에게 존재자체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하게된다.  






*모든 내용은 작가의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견해이니, 이점 참고부탁 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