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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n 11. 2021

#10. 어떻게 벌레까지 사랑하겠어. 풀 사랑한거야~

벌레와의 싸움,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10. 벌레와의 싸움,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상추를 키우면 반은 갉아먹던 벌레들. 그것까진 괜찮았는데..화분을 옮기다 마주한 바선생..

식물 생활을 다 엎고 싶은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개방된 옥상에서 식용 작물을 키우는 것을 벌레를 초대하는 일임을 그 때는 몰랐고, 옥상 텃밭에서 자라던 방울 토마토와 고추들을 보며,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음을 깨달았다.




옥상텃밭을 가꾸면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실감했다.


유기농으로 키운 상추를 아침에 따먹고, 싱그러운 풀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내가 직접 키우는 꽃을 키우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막상 키워보니 전체 흙갈이를 하거나, 매일 물을 주는 일 등 노동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농약없이 키우면 벌레가 다 파먹어서 내가 먹을 건 없다는 것도.


농약이나 노동은 괜찮았다. 그 친구를 화단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고추 애플민트, 작두콩, 캐모마일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던 옥상텃밭. 화분 밑에서 벌레가 튀어나올까 무서워하면서 키웠다.


처음 벌레를 마주친 것은 어느 더운 날, 캐모마일이 너무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햇빛이 덜 받는 위치로 화분을 옮기려고 했을 때였다. 큰 화분을 낑낑대면서 옮기는데 큰 바선생 하나가 후다닥 도망갔다.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매일 일어나서 아침마다 화단을 들여다보던 나였는데, 화분 밑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분 근처에 가기도 무서워졌다.


하지만 한참 자라고 있던 방울토마토, 상추 등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오킬을 사서 열심히 뿌리기 시작했다. 비오킬은 동물에게도 무해하다고 알려진 살충제인데, 화분 주변에 분사해주면 벌레 생기는 걸 방지해준다고 해서 열심히 뿌렸다.


그리고 효과가 높다고 소문난 맥스포스겔도 테라스 곳곳에 뿌려두기 시작했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도 열심히 비오킬과 에프킬라를 뿌려댔다.


이제는 안 나오겠지? 라고 방심했던 어느 날...


계단을 오르다 테라스 입구와 우리집 현관문 앞에 다잉 메시지처럼 죽어있는 바선생 시체 2구를 발견했다.

으아악! 소리를 질렀지만, 차가운 현대 사회에서 나를 도와줄 이웃은 아무도 없었다.

산채로 발견된 것이 아닌, 시체라 다행인 걸까?


하지만 거대한 크기에 시체 2구를 어떻게 치울지 눈 앞이 깜깜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문을 열고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문을 열고 현관문 밖을 나오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한 숨을 크게 쉬고 한 숨엔 에프킬라 한 손에 두꺼운 휴지 뭉치를 들고 마음을 가다듬고, 겨우 시체를 치웠다.


식용 작물을 옥상에 키우는 것을 벌레를 초대하는 일임을 그 땐 미쳐 알지 못했지


옥상텃밭에 상추를 키우기로 결심한 겨울, 전 주인이 버리고 간 화분에 흙을 갈아야 할까? 궁금해서 옥상텃밭 상추 흙 등을 쳐본 적이 있다. 그 때 오래된 흙을 쓰면 바선생이 생긴다는 포스팅을 보게 됐고, 옥상텃밭 벌레라고 검색해보니 바선생에 대한 글들이 나왔다.


그래서 무서운 마음에 계단 없는 4층임에도 불구하고, 흙을 다 갖다 버렸다. 그리고 새 흙으로 채우고 열심히 키웠건만.. 결국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현관문을 나서 테라스로 가는 일이 무섭게 느껴졌다. 벌레를 마주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화분 밑을 들여다 보기도 무서워 허공에 대고 열심히 비오킬을 뿌려댔다.


그래서 올해는 상추 등 식용작물은 안 키우려고 했지만, 그래도 아쉬워서 상추 모종 3개와 고수, 샐러리 등을 심었다. 최대한 벌레가 싫어하는 고추, 애플민트 등을 심긴했지만.


그리고 얼마 전  또 테라스 입구에서 죽어가는 바선생과 마주쳤다.

이번에도 다행히 봄부터 맥스포스겔을 열심히 발라두고, 틈틈이 비오킬을 뿌린 덕에 산 채로 마주치진 않았다. 식물을 키우지 않더라도 여름에는 벌레가 생길 수 있으니, 방역을 하면서 식물을 키우기로 했다. 그래도 벌레를 만나고도 태연하게 잘 죽여서 버리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벌레까지 사랑하겠어. 그냥 식물을 사랑하는 거지



(예고) 벌레가 싫어하는 허브를 키우면 좀 나아질까?

벌레 맛집이 된 상추, 치커리를 뽑고 키우기 시작한 애플민트, 레몬밤, 바질 등

방치 하는 사이 자라는 허브들. 언젠가 씨를 뿌린 깻잎이 자랐길래 넓은 상자 텃밭에 옮겨주었더니 무서운 기세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날 집주인할머니랑 이야기하다 깻잎이 아닌 것을 발견. 왜 꽃이 피었지???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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