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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Sep 24. 2021

#14. 식물도 사람도 가지치기가 필요해

가을에는 테라스 텃밭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 식물도 사람도 가지치기가 필요해

가을에는 테라스 텃밭 계획을 다시 세워야한다. 


 심겨진 김에 대충 자라나는 식물들 (심지도 않았는데 자라기도 한다)


어느새 가을이다. 봄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모종과 씨앗을 사고, 마구잡이로 테라스에 심고 뿌렸다.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라는 기대를 안고 방울 토마토 모종도 심고, 그냥 토마토 모종도 심었다.


벌레가 잘 꼬이지 않으면서 요긴하게 먹을 수 있는 홍고추 청고추도 보색대비로 심고, 마르쉐에서 호기심에 산 공심채와 샐러리도 그냥 심어봤다. (어떻게 요리하는지도 모르면서) 


언제나 나의 로망 속에 있는 바질도 심었다. (바질페스토도 만들고 파스타위에 생 바질을 얹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모히토를 위한 애플민트도 빠질 수 없지!!! 로즈마리도 왠지 있어야 할 것 같아!! 

망원시장에서 800원 주고 사온 파 한단의 뿌리도 괜히 여기저기 흙에 꽂아본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테라스 텃밭은 그냥 심겨진 짐에 큰다! 라는 마음으로 이것 저것 작물들이 자라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성실하게 자라주는 고추들. 그리고 파도 알아서 쑥쑥 컸다.
어떻게 먹어야할까 고민하는새에도 잘 자라준 샐러리들. 집에서 키우니 먹을 수 있는 부분은 작다. 
바질과 페퍼민트 로즈마리가 알아서 자라고 있는 허브존. 어디든 먹을 곳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물을 준다.
바질과 공심채가 뒤섞여 제멋대로 함께 자라고 있다. 공심채볶음을 해보았으나 너무 강하게 키운걸까? 질겼다. 

작년에 이어 나는 또 도시계획 없이 여기 저기 아파트 짓고, 상가 임대하고, 의미없는 조형물 배치하는 마구잡이식 도시 발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심고, 죽였다 살렸다를 반복했다. 

식용 작물로 샀으나 사실 어떻게 먹을지 엄두가 잘 안 나는 공심채와 샐러리가 그랬고, 언젠간 (바질페스토를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꽃대만 따주는 바질이 그랬다. (바질은 꽃이 피면 더 안 자란다고 해서, 바질잎은 따지 않은 채 바질 꽃대만  따고 있다.)



물을 안주면 시들어 버리는 식물들. 그래도 다시 물을 주면 살아난다. 대견해

며칠 무관심하면 죽여줘~하고 바질이 시들어버린다. 그래도 다시 물주면 살아나서 다행이야.
원래 토마토가 자라던 자리. 심지도 않은 레몬밤이 잠식해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필 틈없이 물을 안주면 죽어가다가 물을 주면 다시 일어나는 식물들이 대견했다.


심지어 작년에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줬던 레몬밤은 올해 심지도 않았는데 화분 곳곳에서 자란다. 

아마 작년에 있던 씨앗이 흙 어딘가 남아있었겟지. 심지어 토마토 열매 단 두개를 끝으로 사라져버린 토마토 모종 자리를 레몬밤이 다 차지해버렸다. 가지치기라도 할까 하다가 그냥 손을 떼버렸다.


식물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


요즘 내가 간간히 하는 것은 노랗게 변한 잎파리 떼기, 고추나 토마토 등의 가지치기(라고 쓰고 잎파리 대충 떼기라고 읽는다. 그냥 열매 안 난 쪽에 잎파리를 대충 뗀다), 바질 꽃대 따기 등이다.


흙과 양분은 정해져 있으니 그 안에서 자리 싸움을 하면서 열매가 더 자라거나 못 자라거나, 식물이 더 크거나 못 크거나 하기 때문이다. 


죽지 않을만큼만 물을 주고, 너무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경쟁자와 탈락자를 치워주면서 키우고 있다.


가을이 온다. 10월에는 어떤 가능성을 키워볼까


지난 여름, 종로에 가서 여러 씨앗들을 사왔다. 9월에 심을 수 있다는 캣잎과 고양이도 좋아하고 사람몸에도 좋은 밀싹, 비타민채, 순무 등등


길을 걷다가 꽃을 보면 꽃도 키우고 싶다. 

하지만 이미 테라스 화분이 만실이다. 무엇부터 없앨까? 요즘은 그런 고민을 한다.

폼폼이라는 이름으로 멋대로 부르고 있었지만 이름은 천일홍. 나도 심어볼까 싶다.


한 두 번 잘라서 요리해먹은 공심채와 샐러리는 이미 질길 것 같아서 다 뽑아버리고 싶은데, 왠지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 새로운 것들을 심어보고 싶기도 하다.


사람도 식물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다 잘 키울 수는 없어. 모두 열매 맺을 수는 없어.

지금 가장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식물을 키워야겠다.


그동안 나의 무관심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준 식물들도 고마워.


덧)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계획한 작은집풀풀생활 12개에 글은 일년이 걸려 다 썼다.

그 이후는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걸 가끔 쓰곤 했는데, 최근에는 다른 관심사와 현생에 밀려 안 쓰다가 그래도 매일 테라스에서 나를 반겨주는 풀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쓰게 되었다. 금방 질리는 성격탓에 식태기일까 하다가도, 길에서 마주하는 나무와 풀들 꽃들에 대한 관심과 무언가 심어볼까 하는 기대가 남은 것으로 보아, 아직은 더 키우고 심고 물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심어놓고 자라기만 하던 풀들 대신 남은 가을엔 새로운 풀의 가능성도 발견해보고 싶다. 




예고) #15. 고양이를 위해 키우는 식물, 캣그라스

널 위해서라면 열심히 키울 수 있어. 평생 풀 안 떨어지게 해줄께!

마르쉐에서 우연히 마주한 밀싹.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말만 듣고 샀는데...

그 날 이후 나는 밀싹 농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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