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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Nov 15. 2024

무언의 굶주림-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2024.11.15.


점점 더 몰아치는 눈보라는

한낮에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해가 지면서 사방은

암흑의 한가운데로 빠져들었다.

바람은 울부짖으며 허공을 할퀴고

눈발은 부리나케 대지를 두들겨 댔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도,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

K는 후회했다.

"무리했어. 무슨 오기로... "

주문 같은 웅얼거림이 흘러내렸다.


K는 B 산에서 하루 캠핑을 하고 싶었다.

일기 예보와 야영 코스를 보름 동안 연구했다.

최적의 날로 잡은 날은 최악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악천후가 들이닥쳤고

장비도 너무 최소한으로 챙겼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살아서 하산할 수 있을까.


"산다는 건 먹고 자고 싸고... 그러면서

  죽음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지."

K는 또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누가 듣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K는 생각의 흐름에 빠지다가 졸음이 밀려왔다.

눈꺼풀이 눈더미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안 돼! K는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야지."

K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을 내뱉었다.

조금만 더 가면 미리 알아본 공간이 나올 거야.

비바람을 막아주고 얼어붙은 몸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는 곳, 동굴이다.

작년에 한 등산객이 발견했다고 한다.

열 사람쯤 누울 수 있는 공간인데

K는 봄에 여길 한 번 다녀왔었다.

은은한 아늑함이 배어 있는 곳,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왜 그랬을까.


아무튼, 이제 날씨가 좀 잦아들었다.

눈은 발목까지 차올랐다.

기억을 더듬어 앙상한 나무를 붙잡고

K는 한 걸음씩 내디뎠다.

바위 뒤 모퉁이를 지나

드디어 그곳에 다다랐다.

입구에는 안내판이 있고

통제구역 표시가 되어 있었지만

K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동굴 1박 체험이 설렜다.

어릴 때부터 동굴을 좋아했고

어른이 되면 세계를 누비는

탐험가를 꿈꾸곤 했지.

지금은 비록 주말에만

탐험 흉내를 내는 직장인이지만.

어쨌든 K는 마음이 좀 놓였다.

동굴에 들어가 잠자리를 마련하고

몸을 눕혔다. 다행이네.

아, 배가 고프다. 무언의 굶주림,

집에 있었으면 편히 쉬고 있을 텐데.

하긴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지.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눈송이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K는 눈을 감았다.

여기가 집이라고 느끼면서.


무언의 굶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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