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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소

아빠의 일상 속 풍경을 엿보다.

by 꽃하늘

2024년 12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껏 들뜬 어느 날, 반가운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 직감했다. 좋은 소식이 아님을.


“아빠가 의식이 없어. 지금 구급차 타고 병원 가고 있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지금은 아빠도 나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예전과 달리 아빠는 이제 조금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어른이 되셨다.

어린 시절, 약했던 나를 지켜내어 세상에 당당히 나아갈 힘을 주셨던 분. 이제는 내가 그 은혜를 돌려드릴 차례다.

그렇게 아빠의 일상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입원 중 아빠께선 참 밖에 볼일도 많으신 분이었다.

이것도 하셔야 하고 저것도 정리해야 했다.

그중 제일 이해가 안 되던 건 “머리를 다듬어야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 아빠가 회복되어 가는구나.’ 하고 이해하다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반복해서 말씀하시니 문득 생각했다.

중년 남자의 자존심은 머리카락일지도 모른다고.


“아빠, 퇴원하는 날 미용실부터 모시고 갈게요. 조금만 참아.”

그렇게 약속했다.


퇴원하는 날, 아빠가 말씀하셨다.

“OO이용소.”

“이용소요? 어릴 때에만 남아 있는 장소인 줄 알았는데 아직 있어요?”


그곳에 아빠를 모셔다 드리고 밖에서 기다렸다. 머리숱이 많은 것도 아닌데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셨다. 점점 그 공간이 더 궁금해졌다.

한 시간쯤 지나 문이 열리고 아빠가 나오셨다. 단정해진 머리, 깔끔한 얼굴 위에 스킨 냄새까지 겹치니 순간 젊은 날의 아빠와 마주한 듯했다.

안쪽에는 염색하는 아저씨, 신문 보는 아저씨, 차례를 기다리는 아저씨, 그리고 묵묵히 가위를 움직이는 원장님이 계셨다.


아빠에게 이용소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다듬는 곳이 아니다.

회전등이 빙글빙글 도는 그곳은 젊은 날부터 늘 드나들던 자리이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머리를 맡기고 신문을 읽던 기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소리, 동네 어른들과 나누던 짧은 대화가 고스란히 쌓여 있는 곳.

아빠에게 이용소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삶의 일부이자 작은 쉼터다.


오늘은 달달한 믹스커피 한 봉지를 사서 이용실 원장님께 드리고 나왔다.

아빠가 익숙한 의자에 앉아 청년 시절의 자신을 잠시 떠올리고, 지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 오랜 자리를 지켜주시는 원장님도 오래도록건강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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