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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Aug 27. 2024

가장 친한 동기의 퇴사 소식

2019.02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하얀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의 초침은 참 부지런히 정각대로 움직인다. 분침과 초침이 겹쳤다 다시 멀어지고, 또다시 긴 분침 위로 짧은 초침이 착 포개지고. 한참을 멍하니 모로 반듯이 누워 초침의 이동을 시켜본다. 시(時)를 센다.*


무슨 정신으로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연재 중인 <공황장애 환자의 신입사원 생존기>는 전적으로 내 일기에 의존하는데, 이 기간은 기록물도 상당히 빈약하다.


'우울. 우울의 끝. 우울하다.'


온통 '우울'이란 단어로 범벅이 된 페이지만이 남아있다. '우울해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함.'이란 기록의 나열을 보자 갑자기 뚜렷하게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얀 벽, 파란 이불만이 깔린 텅 빈 방. 그리고 또각 거리며 바지런히 움직이는 시계. 이불 위에 시체처럼 늘어져 손가락 한마디 움직이지 않는 나. 나는 뚫어져라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다. 보일러를 틀었음에도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겨울의 찬 공기가 폐 속으로 훅 펀치를 날린다. 콜록콜록. 잠시 콜록댄 후 찬기운에 놀란 마음이 가라앉자 다시 모로 누워 시계만 본다. 


이주에 한 번 병원을 갔고, 약을 탔고, 열심히 복용했다. 그러나 우울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졌다. 공황이 찾아오는 간격도 짧아졌는데, 회사에서 메일을 쓰다가 혹은 회의 도중에 갑자기 숨이 콱 막혀 올 때면 두근 대는 심장을 두 손으로 꽉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의 반들반들한 타일을 잡고 기대선다. 유튜브에서 본 호흡법을 떠올리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그 보다 더 깊이 내뱉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어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게 최선이었다. 






2019.02.11(월)


가장 친한 동기언니가 퇴사를 한다는 소식을 사수를 통해 전해 들었다. 쿵. 말 그대로 심장이 쿵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럴 순 없었다.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있는데, 언니마저 회사를 떠나면 내게는 마지막 버팀목 마저 부러져버린 거다.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파르르 눈가가 떨렸다. 차갑게 식은 손가락 끝을 반대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가 흐르지 않고 멈출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니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만두지 말라고 말려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 언니한테 퇴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정말 언니를 위한 걸까. 단지 나를 위해, 회사에 남아 있는 내가 언니가 없으면 힘드니 좀만 더 참아달라고 하는 거잖아. 사실은 그런 거잖아. 내 이기심에 힘든 언니보고 좀 더 버티라고 하는 거잖아.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가 늘어날 때마다 눈은 더 심하게 파르르 떨려왔다. 






2019.02.18(월)


언니 사수와 내 사수, 언니와 나. 넷이서 밥을 먹었다. 처음 모이는 이 조합은 언니의 퇴사 때문에 결성됐다. 눈앞에는 맛있는 고기가 놓여있는데,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육사시미의 붉고 윤기 나는 저 살점이 찐득한 점액이 되어 내 혈관을 막아 버릴 것 같아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애써 웃고 맞장구를 치고 말도 조금은 했다. 전혀 기쁘지 않았으나 언니를 씁쓸하게 보내줄 순 없었다. 언니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고, 고독하고, 우울하고, 그렇게 힘들게 퇴사를 결심했으리라. 


처음 먹어보는 천엽은 생긴 것만큼 질기지도 고약한 맛이 나지도 않았으나 내 입안에서는 삼켜지지 않은 채 질겅질겅 계속 혀 아래에서만 맴돌았다.






2019.02.21(목)


퇴근 후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기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30분이 되고 입구를 지나 빨간색 통근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뭐지. 왜 다들 안 오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우르르 여자 동기들이 모두 현관에서 달려 나온다. 그리고 버스를 지나쳐 멈춰서는 차 한 대. 여자동기들 중 유일하게 차가 있는 동기 언니의 차다. 한 번에 쏟아져 나온 동기들은 또 한 번 더 우르르 동기 언니의 차에 올라타고는 휙 하고 사라졌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잔잔한 바람만 휘 하고 불었다. 인사 한마디 없었다.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그렇게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눈물을 흘리며 자책을 시작했다. 모두 내 잘못 같았다. 내가 동기들과 친해지지 못한 이유. 분명 처음엔 같이 어울렸는데, 어느새 나만 멀어져 버린 이유. 친한 동기언니에게만 마음을 열다 보니 나머지와는 벽이 생긴 걸까. 내 성격이 모난 걸까. 자책을 한참 한 후에는 원망이 찾아왔다. 서운했다. 아무리 내게 결격사유가 있다고 해도 좀 챙겨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 나만 빼놓고, 나는 아는 체도 안한채 다 같은 차를 타고 휙 하고 가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제는 친한 동기언니마저 없는데. 나는 홀로 어떻게 이 상황을 버텨내야 할까. 


성인이 되면 인간관계 따위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내내 친구관계로 많은 고민을 하고 상처를 받아왔기에 성인이 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바뀐 건 없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인간관계는 힘들다. 아니면 내가 아직 어른이 안 된 건가.




* 우울과 공황이 깊어지는 단계의 얘기입니다. 그래서 글이 좀 무겁습니다. 하지만 극복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서사이므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점차 꿋꿋이 노력해서 정신과, 육체, 그리고 삶의 정상(常)을 되찾아 가는 모습이 나온답니다!



* 우울에 잠식당해 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시기에 썼던 시입니다.



<시를 세다>


사(時)는 나를 버렸지만 시()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였다.


애초에 온전치 못했던 씨앗이었던 탓일까

생명에 대한 갈망은 길 잃은 사막 위에 북두칠성처럼 간절했지만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時)의 한계는

너의 태생도 본성도 자학도 예찬도 부질없는 메아리라고 단단히 훈계한다


가시를 돋아냈다

장미처럼 애써 들키지 않게 상처를 숨기려고 

가시 끝엔 펜촉을 쥐었다

가시 속 진물로 번진 우둘투둘한 줄기에 나만의 세상을 새긴다

그곳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같은 유토피아, 그 이상의 피난처

펜 촉을 날카롭게 갈수록, 깊어지는 각인, 페이는 살, 드러나는 뼈,

죽이도록 좋은 고통, 마비, 마약


(중략)


고개 숙인 해와 함께 남은 시(時)를 센다

죽음을 직감한 찰나 온몸이 마그마처럼 녹아내렸지만

유일하게 내 삶을 증명해 줄 시(詩)는 깊게 인이 박이어, 사리가 되어 흙속에 묻힌다

시(時)가 된 시(詩)는 나를 소멸시켰지만, 나를 영생의 존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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