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이렇게 기쁠 수가!!!!!
퇴사를 결심했던 가장 친한 동기언니가 (<공황장애 환자의 신입사원 생존기 21화> 참조) 주변의 설득 끝에 마음을 바꿨다! 퇴사가 아닌 휴직으로!!!!!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기쁨의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 안도감이었다. 첫째는 언니가 회사를 떠나지 않아 혼자가 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었고, 두 번째는 언니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의 표정보다 휴직으로 결론을 내린 지금의 표정이 훨씬 가벼워 보여 언니가 좀 더 본인의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선택을 했다는 안도감이었다.
임원과의 상담까지 마친 끝에 언니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간의 휴직. 이제 곧 언니가 떠날 거지만 두 달만 지나면 언니가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두 달간의 기간 동안 진심으로 언니가 다시 안정감과 활력으로 가득 채워져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우리는 카페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희미한 미소가 둘의 얼굴에서 새어 나온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수많은 감정을 담은 오묘한 미소다. 작년 말부터 둘 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서로가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만큼 우울이란 힘이 센 전파력을 갖고 있어 서로를 더욱 낙담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간의 고통을, 슬픔을, 지독한 견딤을 알기에 우리는 그저 담담히 서로를 쳐다봤다. 눈에 살짝 물기가 맺혔지만 얼른 고개를 돌려 소매로 쓱 닦아냈다.
"언니. 우리 진짜 다시 시작해 봐요. 힘든 순간이 계속 있을 거고 금방 우울증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이겨내 봐요."
"그래.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너도 잘 지내고. 우리 그런 의미에서 극복 스터디를 해볼까?"
'극복 스터디'??? 이게 우리 극복 스터디의 시작이었다.
인간관계와 업무에서 비롯된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두 명의 동기가 뭉친다. 서로의 우울을 보듬고 다시 삶의 의지와 활력을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다짐과 계획을 세우고 그간의 노력과 개선사항들을 공유한다.
언니와의 '극복 스터디'는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날 웃게 해 줬다. 누군가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걸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언니가 퇴사가 아닌 휴직을 결심했다는 것. 이건 나에게도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큰 결심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내가 시작한 '극복 프로젝트'는 뭐냐고? 다음과 같다.
1. 상담 주 1회 다니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심각함을 느껴 상담 센터를 찾아봤으나, 시간당 비용이 5만 원~10만 원 정도로 경제적 부담이 심했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가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냈다. 다름 아닌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첫 방문을 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남자친구와 함께였지만 많이 긴장되고 떨리고 괜히 내가 죄인이라도 된 듯이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내가 참새가 되어 방앗간처럼 드나들어야 할 곳이다. 상담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다니리라!
2. 영어스터디
언니와 나의 우울증이 심해지기 전에 영어스터디 모임을 가입했다. 이 당시에도 새로운 자극과 도전으로 감정 변화를 극복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건데, 축 처지는 우울감에 스터디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언니도 퇴사하지 않는데 내게 희망이 생겼다. 다시 열정의 불씨를 태워보자!
* 그 당시의 저는 영어스터디를 했지만, 사실 우울증이 심한 분들께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일단 아침 제시간에 일어나고, 물 한 컵 가득 들이키고 동네 산책부터 시작해 보세요. 뭔가 압박감을 주는 거대한 어떤 것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3. 운동
내가 지금도 가장 신뢰하는 말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이다. 고난의 시기를 넘기며 이 말의 참뜻을 뼈저리게 몸소 느꼈다. 지금도 나는 우울할 때면 옥상을 올라가든, 주차장을 가든, 골목길을 걷든, 밖에 나가서 햇빛을 쬔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몸 구석구석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면서 에너지가 샘솟는다.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기대. 뭔가 바꿔 볼 수 있겠다는 희망찬 다짐. 나는 그래서 글을 쓰다 막힐 때도 꼭 햇빛을 찾는다.
이 당시 나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정신적 우울감 --> 무기력 --> 끼니 거름 / 불면증 --> 신체 능력 및 건강 저하 --> 정신적 우울감 증가'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체를 먼저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언니가 회사를 두 달간 떠나고 나는 나만의 '우울증 극복 프로젝트'를 유지했다. 물론 방해꾼과 장애물이 없지 않았다. 사수와의 다툼도 있었고, 괴롭히는 직장 상사들도 많았으며, 여전히 동기들에게 소외감을 느꼈다(룸메가 이 당시 외톨이인 나를 챙겨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갑상선 수치도 많이 증가해서 약물 복용 용량을 늘렸다. 그럴수록 이를 꽉 물고 운동을 나가고 상담을 갔다. 당장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좌절에 빠지기도 했고 회사에서 하루종일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난 포기할 수 없다. 나를 지지해 줄 가족, 남자친구, 그리고 다시 돌아올 동기 언니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