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아니 그동안 한강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늘" 무엇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체감한다. 이유 없이 감행된 폭력에 의해 사그라든 목숨과 생명과 혼이 이리도 빽빽한데 채색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음이 억울하여 소리 없이 분노한다.
한강은 여러 책들을 통해 외면된 공허를 불꽃으로 채색하는 역할을 하고, 그것을 읽은 독자의 마음에는 어떠한 마음들이 불거진다. 희미하고 혼미했던 시야가 문득 희번해진다. 외면해 왔던 폭력을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내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목격자가 된다.
한강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가장 약자의 편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목격하고 감당하고 짊어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개머리판에 맞거나 총알에 관통되거나 전기톱에 잘리거나, 의도하거나 혹은 의도하지 않은 이별과 작별들에 매도되어도 "살아날 구멍"은 강력하다.
구멍이 텅 빈 결정들이 나뭇가지를 부러트릴 만큼 밀도가 높은 눈이 되는 것처럼. 피리같이 구멍 난 뼈로도 당당히 횃대에 곧이 서있는 새들처럼. 뜨거운 용암을 견뎌내느라 까맣게 타서 구멍이 나고서도 커다란 섬으로 버텨내는 현무암처럼. 화로에 산소가 통하지 않으면 불이 꺼지기에 반드시 바람이 통할 구멍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혼들이 기백이 되어 승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구멍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것을 감히 독자라는 입장에서 체화할 수 있게 해 준 한강 작가님에게 존경과 감탄을 보낸다.
나는 이 책에서 끈질기게 안부를 묻는 것이 사랑임을 배웠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극한 사랑의 책'임을 실감한다.
2021년부터 미뤄왔던 책이지만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도저히 책장을 넘기지 않고서는 멈출 수 없었다. 한강의 시대에 살고 한강의 글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내게 다정한 책>으로 주 2회 서평을 연재한 지도 벌써 10 회차네요!
일주일 동안 서평 2회, 에세이를 1회 연재한다는 게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끼면서 매일 연재하시는 분들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서평은 이제 11화부터 주 1회, 수요일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ㅠㅠ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