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너는 어떤 사람이었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으니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더 쉬운 건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거다. 나 말고 당신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처음 작가를 꿈꿨을 때, 처음에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그다음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소설을 쓰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려면 나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게 싫다. 나는 시인도, 드라마 작가도 소설가도 되지 못했고 단순히 그것들이 되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일이.
혹은 내가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이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좋은 사람의 정의 같은 건 모른 채 대답을 할 수도 있겠다. 그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는 나는 모르고 타인은 알 수 있을 그런 거다.
얼마 전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는 피자를 좋아했다. 그전엔 나프탈렌을 닮은 박하사탕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95년을 사셨지만. 손녀인 내가 47세가 될때까지 사셨지만. 결국 뒤돌아보면.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