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살어리랏다
발코니에서는 저 멀리 산이 보이고 집 밖을 나서면 바다가 코앞이다. 내가 머무는 곳은 나트랑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어서 관광객이 적고 조용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러시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 한국말이 들리기도 한다. 테리가 어렸을 때의 나트랑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어부나 농부인 작은 마을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 중국, 유럽, 한국 관광객 순으로 모여들면서 관광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해변가를 중심으로 고층 빌딩이 즐비한 중소도시가 되었다. 그래도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잃지 않은 것 같다.
아직 펼치지 못한 마루야마 겐지의 책 <산 자에게>를 들고 모래 위에 누웠다. 한 달 전에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손에 잡자마자 단숨에 끝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천천히 읽기로 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작가의 유년기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나간다.
기온은 높다 해도 여전히 겨울이라서 바닷물은 차고 모래는 시원했다. 평소 물가에는 잘 가지 않는데 왠지 이번에는 파도를 타고 싶어지는 묘한 해변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참여하게 된 모임이 있다. 그곳에서는 각자의 정체성을 자연물로 드러낸다. 돌, 식물, 바람 중에 한참을 고민했다. 바위는 어떨까? 경외감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굳세게 땅에 박힌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자잘하게 움직이는, 흔들리지만 깨지지는 않는, 바람에 깎아지고 파도에 부유하는 돌덩어리. 어쩌면 이 동네의 랜드마크인 혼총바위는 신성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