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갈라진 십자가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식사 전의 기도가 들렸다.
아흔이 넘으신 조모님께서 읊으셨던
그 기도의 끝자락에는 아-멘 하고 끝나는 순서가 있었다.
종교가 없었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는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며
함께 아-멘 하고 소리를 냈다.
이불속에는 따뜻하고 저 밖은 너무 추워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결박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를 밖으로 이끄는 건
이불속에 갇혀버린 그 사랑이었다.
산화된 심장은 결국 조금씩 녹이 슬었다.
산소가 있던 탓인가.
결국 그렇게 나를 숨 쉬게 했던 것들이
나를 갉아먹었다.
사랑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사랑은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라,
사랑은 반드시 안쓰러운 것이라,
사랑은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을 알면서도
다시 내게 호흡을 욱여넣을 것을 알기에
무구한 그 아이를 다시 바라본다.
몇 번을 돌려본 영화의 대사처럼
다시 읊조리는 그 단어에는 무슨 힘이 있을까 하겠냐만,
나는 다시 내뱉었다.
피다 버린 담배꽁초처럼 그 작은 미련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삶을 그저 덧없는 것이라 칭할 수 없었다.
그렇게 버렸던 미련을 아쉬워하며
그 거대한 눈앞의 사랑을 놓쳐 버렸다.
새벽, 창문에 반사된 십자가를 본다.
붉게 물들어 버린 그 십자가는
무엇을 그리도 밝히고 싶었는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었다.
돌아선 청춘의 민낯이 나를 본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안에는 무엇이 있어야 했을까.
비어 버린 나의 청춘에
조금 미련한 사랑을 넣는다.